메뉴 건너뛰기

close

박명림 연세대 교수(자료사진)
 박명림 연세대 교수(자료사진)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박명림 연세대(정치학) 교수는 '헌법개혁'이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개헌'은 '하나의 헌법에서 다른 헌법으로 바뀐다'는 수평적 의미에 그치는 반면, '헌법개혁'에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87년 헌법'을 고민하게 된 계기는 '3당 합당'(1990년)이었다. 3당 합당은 그에게 "한국정당체제와 권력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진지한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후 그는 일관되게 '헌법개혁'을 주장해왔다. 조만간 저서 <헌법혁명과 민주공화주의>와 <헌법개혁과 민주주의 : 철학·제도·방향>을 펴낼 계획이다.

"선거구제 개편이 헌법개혁 반대하는 논리 되면 안 돼"

이렇게 '헌법개혁론자'인 박명림 교수는 지난 10월 27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했는데 세 분이 모두 '임기 전반은 제왕인데 후반은 식물로 전락한다'고 인정했다"라며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헌법을 개혁해야 한다는 담론은 '식물 대통령'이라는 이면을 감추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대통령 임기 전반기 동안 집권당은 대통령의 지시와 통치를 받드느라 정당으로서 역할과 의회 요소로서의 기능을 완전 상실하는 반면, 임기 후반에는 미래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대통령과 대립하느라 집권당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는 정당과 의회가 '헌법구조상' 정치와 정책의 중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중대한 함의를 보여준다"라며 "이런 상태에서 좋은 민주주의, 능력 있는 민주정부, 바람직한 정당체제 발전은 불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 헌법 하에서는 아무리 무능한 대통령 후보나 정치세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념적으로 보수, 세대적으로 장년·노년, 지역적으로 영남이면 집권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라며 "1987년 이후 6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유일한 보수후보는 이회창 단 한 명이었는데 그는 충청 출신이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교수는 87년 헌법을 '패배한 헌법'으로 규정했다. 그는 "권력교체의 열망이 하도 컸다는 이유로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는 전두환·노태우에게 너무 쉽게 헌법구조를 양보했다"라며 "현 6월항쟁 헌법에서는 '기업의 자유'까지 넣어줌으로써 '사회정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관한 한 적어도 조문상으로는 건국 아래 가장 후퇴한 헌법이다"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현행 헌법이 장기집권을 저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한데 이는 (단임이었던) 전두환 헌법조차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최악의 논리가 된다"라며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과 의회권력의 약화라는 박정희·전두환 헌법의 국가 기본구조를 그대로 갖고 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교수는 '반대통령제(준대통령제)'와 '4권분립'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반대통령제는 대통령과 국회, 행정부와 의회가 예산, 인사, 기구, 정책결정과 집행, 감사를 적절히 분배하는 제도다"라며 "대통령과 행정부가 인사, 예산편성, 집행기능을 가지면 의회는 예산법률주의와 감사권을 갖거나, 대통령이 행정부의 인사권과 행정권을 가지면 감사원, 중앙선관위, 금감원, 공정거래위 등은 '국민부'(혹은 '감독부')로 독립시켜 대통령의 권력독점을 방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헌법을 개혁하면 극한적인 진영대결이 종식되고, 대통령 무책임정치와 정당 무책임 정치는 상당 정도로 극복될 것이다"라며 "특히 당대 존재하는 최고 인물과 최고 정책들이 연대할 수 있는 연합정치가 가능해지고, 연립정부를 통해 정책의 최고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력 축소와 의회 권한 강화인데 국회의원이 특권을 내려놓지 않고 개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OECD 국가 평균(1인당 GNP의 2.08배)보다 훨씬 많은 국회의원 급료(1인당 GNP의 5.5배)를 절반 이상 삭감해야 그들의 개헌 의지를 인정받을 수 있다"라고 주문했다.

끝으로 박 교수는 "혁명이 불가능할 때에는 권력의 구성방법과 절차를 바꾸지 않고 진보가 성장하기는 어렵다"라며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제도, 특히 헌법을 보는 문제의식이 대단히 허약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존 제도로 인해 크게 손해보고 있는 진보가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것은 기존 제도로 인해 커다른 이익을 보고 있는 보수기득 세력을 크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선 선거구제 개편, 후 개헌' 주장에는 "이것을 선후의 문제나 양자택일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선거구제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헌법개혁을 반대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선거구제를 개편하더라도 권력독점을 그대로 두면 원하는 목적을 거의 달성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다음은 박명림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임기 전반은 제왕인데 후반은 식물로 전락한다"

중국 방문 중 '개헌론'을 언급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불찰이었다"며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 대표가 김학용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국회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중국 방문 중 '개헌론'을 언급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17일 오전 "불찰이었다"며 "대통령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김 대표가 김학용 대표비서실장과 함께 국회 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개헌을 고민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저는 헌법개혁을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부터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개인적으로 헌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첫 계기는 1990년 3당 합당이었다. 3당 합당을 보면서 '정당체제가 이렇게 민의와 달리 마음대로 위로부터 재편되어도 되나?', '한국정당체제와 권력구조가 일치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92년 대선 학술토론회에서 정당체제와 권력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이 헌법체제가 장기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야기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헌법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상태라서 막연한 의문 정도였다. 

이러한 막연한 의문을 확신하게 된 것은 뚜렷이 반복되는 한국 정치의 현실 때문이었다. 즉, 모든 대통령들이 개헌을 약속하거나 제안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 것이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개헌와 관련해 약속, 추진, 공약, 제안 중에 하나라도 하지 않은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모든 대통령들에게 나타난 이러한 반복은 반드시 제도 요인을 안고 있다고 보았다.

국정을 책임졌던 대통령들의 공통된 지적도 중요했다. 저는 항상 이론보다 현실, 즉 자료나 경험을 중시한다. 현실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면담했는데 세 분이 모두 동일하게 지적한 것이 있다. 현재의 헌법으로는 국가능력을 극대화하거나 민의 반영, 사회갈등 해소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개헌 없이는 주어진 임기 동안 국가역량을 결집하거나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데, 또 장기비전을 추진하거나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개혁정책을 집행하는 데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했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주문은 강도가 매우 높았다.

세 분은 모두 '임기 전반은 제왕인데 후반은 식물로 전락한다'고 인정했다. 그것은 제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측면이기도 하다. 동일헌법에서 권력의 무한행사와 권력의 공백상태가 공존한다. 임기 후반에는 일을 할 수 없는 헌법구조다. 세 분 중 한 분은 '임기 후반에는 장관, 청와대 수석을 임명하려고 해도 안 오려고 해서 굉장히 어려웠다'고 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다음 대선을 준비하느라 어떤 정당으로부터도 국정협조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제 식으로 표현하면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갈등'이다. 여당조차도 미래권력을 위해 국정에 협조하지 않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

- 왜 '개헌'이 아니라 '헌법개혁'이라는 용어를 쓰나?
"제가 그동안 개헌이라는 용어 대신 헌법개혁이라는 용어를 줄곧 사용해온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개헌은 하나의 헌법에서 다른 헌법으로 바뀐다는 수평적 의미를 담는다. 거기에는 가치가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헌법개혁은 교육개혁, 재벌개혁, 경제개혁, 정치개혁, 노동개혁, 사회개혁처럼 더 나은 미래를 향한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 인권보장, 인간적 사회, 자유, 평등, 복지, 권력분산, 능력있는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 헌법은 분명히 개혁대상이다. 문제는 우리 공동체의 의지와 역량이다."

"이렇게 강력한 권력독점을 보장하는 헌법도 드물다"
- 개헌이 필요한 핵심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통령 개인의 의사와 역량에 따라 전체 공동체가 받는 영향이 너무도 크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 가운데 이렇게 강력한 권력을 독점하는 지도자를 갖는 헌법은 드물다. 선출과정은 물론 집권 이후 국가방향과 갈등요인의 대부분이 대통령 일인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국정의 큰 방향은 물론 구체적인 사안 하나하나에서까지 한 사람의 의사와 역량이 이토록 통제받지 않은 채 전체 공동체를 거의 절대적으로 좌우하는 체제를 우리가 과연 공화주의요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특히 이 헌법 구조에서는 대통령 개인 요소에 따른 국정마비, 방향상실, 공약취소, 소통봉쇄, 갈등악화, 진영대결의 극단적인 가능성과 상황이 언제든 상존한다. 게다가 개인적 무능 요인이 더해지면 최악의 국정상황을 노정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대통령을 바꾸고, 유능한 대통령을 선출하면 제도와 헌법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가정해왔다. 하지만 악화되면 악화됐지 더 나아질 수가 없는 헌법 구조다. 이 정도로 계속 반복되는, 법칙과도 같은 현상에도 불구하고 제도요인(헌법요인)이 아닌 인간요인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학문적으로 정직하지 못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헌법체제는 그 지지 비율에 맞게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 제도는 갈등해소를 위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완전한 승자 독식 구조로 인한 독점과 배제의 극한적인 갈등과 대결비용은 이제 한국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고 있다. 물론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정상적으로 반영하는 채널을 확보해 자유와 평등, 형평의 원리를 갖는 복지체제를 건설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 헌법체제와 배분구조는 집권세력의 시혜적 조치가 아니라면 자원배분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사회 기득이익의 요구에 점점 충실하면서 정권이 반복되면 될수록 기득세력과 국민일반의 삶은 더욱 더 벌어지고 있다.

국가의 기구나 제도, 조직이 아무리 방대해도 국가의 역할, 능력, 책임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국가제도나 기구의 규모와 능력과 책임의 크기가 반비례하는 헌법구조다. 제도는 물론 역사구조적인 차원의 문제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선출과정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헌법 하에서는 아무리 무능한 대통령 후보나 정치세력이라고 하더라도 계층적 세대적 지역적으로 기득세력과 타협하거나 그들에게 순응하면 집권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념적으로 보수, 세대적으로는 장년·노년, 지역적으로 영남, 이 세 부분을 반영하는 후보라면 상대 후보를 이길 가능성이 절대적이다. 이 세 요소를 갖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대선에서 100% 당선되었다. 무서운 현실이다. 1987년 이후 6번의 대선에서 패배한 유일한 보수후보는 이회창 단 한 명이었는데 그는 충청 출신이었다."

"전두환 헌법도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가 지난 201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 나란히 앉은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희호씨 김영삼 전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가 지난 2013년 2월 25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나란히 앉아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 개헌의 이유와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현행 헌법은 역사구조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박정희, 전두환 헌법의 국가 기본구조가 거의 그대로 있다. 즉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 의회권력의 약화다. 그 구도를 거의 그대로 갖고 온 상태에서 '대통령 직선'으로만 바꾼 것이다. 전두환 헌법도 단임제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라. 만약 현행 헌법이 기여한 게 있다면 '7년 단임'을 '5년 단임'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 헌법이 권력연장을 방지했다고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것이 맞다면 전두환 헌법도 민주주의에 기여한 셈이 된다. 위험한 논리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현행 헌법이 장기집권을 방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강하다. 이는 전두환 헌법조차 민주주의에 기여했다는 최악의 논리가 된다. 직선과 단임이 마치 민주주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대통령 권력의 초집중과 의회권력 약화라는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권력의 독점을 조금 자세히 보자. 대통령과 행정부는 인사권, 예산권, 정책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감사권까지 갖고 있다. 감사원은 행정부 소속인데다 원장조차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책을 결정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곳도 대통령과 행정부인데, 이것을 감사하는 곳도 대통령 임명기관이다. 인사, 예산, 정책, 감사권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권력의 완전독점구조인 것이다. 이러니 권력의 분립과 견제가 가능할 수가 없다. 인사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견제장치로서 인사청문회가 있지만 대통령이 원하면 다 임명할 수 있다. 이 헌법은 헌법적 원리에 비추어 봤을 때 대통령 선거절차가 직선으로 바뀌고 임기만 2년 단축됐을 뿐 대통령 권력은 '전두환 헌법'에서 약화되지 않았다. 

인간의 오류 가능성 때문에 제도가 있다. 제도는 유능한 인간과 무능한 인간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헌법체제 하에서는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잘못된 정책을 펴도 수정할 수도 없고,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 대기업 감세, 자원외교는 임기 이후까지도 국민과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령은 물론 당시 집권당조차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집권당은 이름을 바꿔서 정권을 재창출했다.

현행헌법은 대통령 책임제가 아니라 '대통령 완전 무책임제'다. 동시에 '정당 완전 무책임제'다. 1987년 이후 대통령 배출 정당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대통령 임기 중 집권 시기에 100% 소멸한다.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이 대통령의 실정을 전혀 책임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다섯 대통령을 집권시킨 정당은 다 재임 중에 사라졌다. 대통령 책임제인데도 미래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대통령과 여당이 책임지지 않는다.

정당이 사라진 경우가 한두 명의 대통령에 한정된다면 인간 요인, 즉 비제도 요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0% 사라졌다면 이것은 제도 요인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어떤 경우에도 책임지지 않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통령 무책임제'이자 '정당 무책임제'다. 이것을 조장하고 보장하는 것이 현행 헌법이다.

더구나 이 헌법구조에서는 기득세력 이익을 위해 모든 정부가 단기업적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정치주기와 선거주기가 시장주기와 기업주기를 실질적으로 개혁할 장치가 너무 허약하다. 형평과 복지를 위해서는 기득세력 이익을 축소시키고 일반 서민이익을 향상시키는 균형정책을 펴야 하는데 5년 내내 기득세력과 타협하지 않으면 경제와 시장을 넘어 체제가 거의 작동할 수 없는 국가체제이기 때문이다. 임기 내 성장을 추구하다 보면 당연히 대통령은 재벌이나 기득세력, 지배적 보수담론과 정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거시개혁이 불가능한 이유다."

"'헌법만 고치면 좋아지냐?'는 질문은 합리적이지 않다"

- 그래도 지금 헌법은 지난 1987년에 여야 합의로 만들어졌고, 여기에는 당시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것 아닌가?
"맞다. 그러나 그건 지극히 부분적이다. 6월항쟁 국면과 헌법제정 국면은 확연히 분리되었다. 즉 시민적 요구가 헌법화,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분리가 일어났다. 이른바 '사회적 국면'과 '제도적 국면', '운동적 국면'과 '헌법적 국면'의 분리를 말한다. 그래서 헌법을 만들기 위한 의회의 8인정치회담은 당시 야당의 완패였다.

당시 국민들 요구와 군부 독재세력의 요구 사이에서 전자가 헌법에 관철된 것은 직선제 외에는 없었다. '단임'은 전두환-노태우의 요구였다. 야당은 오히려 '4년 중임'을 요구했다. 즉 헌법의 협상결과는 전두환·노태우 세력이 승리한 헌법이다. 국민이 쟁취한 직선제를 빼면, 단임을 고집해 민주세력의 분열과 집권연장을 노린 전두환·노태우가 완승한 것이다. 장기집권의 폐해가 너무 컸고, 권력교체의 열망이 하도 컸다는 이유로 김영삼·김대중 두 야당 지도자는 전두환·노태우에게 헌법구조를 너무 쉽게 양보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전두환 헌법도 단임 헌법이었다. 6월항쟁 당시 국민이 요구한 것은 직선제라는 권력구조의 구성절차뿐만 아니라 권력구조 자체의 민주화였다. 하지만 이 헌법은 어느 민주국가와 비교해도 대통령 개인의 권력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권력분립이 실현되지 않은 것이다."

- 과연 헌법만 문제라고 할 수 있나?
"중요한 물음이다. 어떤 분들은 질문한다. '헌법만 문제냐? 헌법만 고치면 좋아지냐?'고. 이것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물음이다. 그러나 이론적, 현실적으로는 합리적인 질문이 아니다. 누구에게 똑같이 불확실한 미래를 갖고 현실의 문제를 덮는다는 점에서는 과학적인 질문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불확실성을 제도화해서 인간오류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헌법은 여섯 번에 걸쳐 확실한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정부의 업적 수행과 관련해서는 반복적인 악화를 노정하고 있다. 한 마디로 '5년 단임' 외에 앞의 헌법들을 넘어 좋은 체제 건설에 기여한 게 거의 없다. 이렇게 이 헌법 하에서 나쁜 결과가 반복됐으면 헌법요인을 고려하는 게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당연하다.

물론 정당요인, 선거요인, 의회요인을 함께 규명하고 개혁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이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는 정당개혁, 사법개혁, 선거개혁, 국회개혁, 지방자치개혁 등 중요한 (부분) 개혁을 많이 진행해왔다. 그런데도 해당 부문의 문제점들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부분개혁들이 담을 수 없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정당개혁, 선거개혁, 의회개혁, 국회개혁, 지방자치개혁, 검찰개혁, 국정원개혁까지 용두사미가 되었거나 힘있는 민주주의로 귀결되지 않았다. 헌법개혁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개혁들의 효과가 증발한 것이다."


태그:#박명림, #개헌, #헌법개혁
댓글5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