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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작별인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4박 5일 방한일정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직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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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8일 낮 2시 23분]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프란치스코 교황한테 편지를 전달했다. 정임출(72·부북면 위양마을), 최민자(60·가르멜수녀원), 한옥순(67·평밭마을)씨는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참석해, 준비한 편지와 선물(티셔츠)을 전달했다.

편지는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으로도 돼 있었다. 최민자씨는 "미사 때 교황님께 편지를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한국전력공사는 신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경남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송전하기 위해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공사를 벌이고 있는데, 밀양 주민들은 10년 가까이 반대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편지를 통해 "지난 10년간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저희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면서 "원전 확대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을 향하여 '이것은 옳지 않으니, 중단해야 한다'는 그 한 마디 말씀을 원합니다"라고 밝혔다.

다음은 밀양 주민들이 프란치스코 교황한테 전달한 편지 전문이다.

주민들이 교황님께 드리는 편지

밀양주민들의 사랑이자 희망이 되신 교황님께.

교황님! 저희들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에서 올해로 10년째 765kV 초고압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우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미사에 저희들을 초대해 주심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희들은 일생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이제 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는 노인들입니다. 그러나, 원전대국을 꿈꾸는 정부가 고리 지역에 운용하던 원전 4기를 10기 규모로 증설하면서 거기서 생산된 엄청난 전류를 실어나르기 위해, 상용되는 송전선으로는 세계 최대인 765kV 송전선 건설 계획을 추진하면서 저희들 노년의 평화는 깨지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일생 일구어 온 농지와 주택이 재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원전 확대를 위해 현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78년 제정된 전원개발촉진법은 토지 소유자의 동의가 없어도 강제로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저희들은 토지와 재산을 사실상 강탈당했습니다.

765kV라는 엄청난 전류가 흐르면서 그 전자파로 인해 저희들의 육신에 어떤 병이 생겨날지 두렵습니다. 그리고, 흐린 날에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엄청난 송전 소음도 견뎌야 합니다.

저희는 10년간 공사를 막는 과정에서 한국전력과 공권력에 의해 상상할 수 없는 폭력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74세 되신 두 분의 노인이 분신과 음독으로 세상을 버리는 참혹한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2013년 10월부터는 매일 3000명의 경찰병력이 들어와 주민들을 고착 감금하고 끌어내는 과정에서 170여 건의 응급 후송사고가 발생하였고,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33명의 주민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싸움의 과정에서 이 모든 폭력이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정책, 구체적으로는 원전 확대 정책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0년의 싸움 끝에 지금 밀양에서는 정부와 한국전력의 뜻대로 송전탑이 하나 둘 세워지고 있지만, 저희들이 그동안 겪었던 수치와 모멸, 마을공동체 분열의 상처는 너무나 깊어서 저희는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를 억지로 쪼개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힘을 불러내어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들고, 인류를 절멸의 공포로 몰아넣은 핵무기와 핵발전이 하나의 몸에서 뻗어나온 쌍생아임을 모르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창조질서에 대한 거역이며,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세계를 유린하는 근본적인 폭력이며,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지배하려는 거대한 교만의 산물이자, 핵발전을 통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두는 맘몬 숭배자들의 탐욕의 산물임을 또한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그 참상이 알려졌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원전 확대 정책을 거두지 않고 있으며, 결국 저희들 시골 노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교황님!

저희는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입니다. 저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저, 살던 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이제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끝내 놓을 수 없는 저희들의 소망은 원전을 멈추는 것입니다. 맘몬 숭배자들의 탐욕과 교만이 아니라, 정의와 공평이 숨쉬는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교황님! 지난 10년간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저희를 어루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원전 확대정책을 추진하는 이들을 향하여 '이것은 옳지 않으니, 중단해야 한다'는 그 한 마디 말씀을 원합니다.

10년의 투쟁과 패배, 상처 투성이의 육신으로 버티는 저희들 밀양 송전탑 반대주민들은, 주님을 기다리던 세리 자캐오의 심정으로 간절한 부탁을 올립니다.

교황님! 부디, '한 말씀만 하소서.'

2014년 8월 18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일동


태그:#밀양 송전탑,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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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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