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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로샤브로에서 신곰파로 출발
▲ 출발 툴로샤브로에서 신곰파로 출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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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새벽 5시입니다. 트레킹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숙면을 한 것 같습니다. 좋은 숙소와 적당한 음주 그리고 샤워까지 모든 조건이 좋은 덕분이겠지요. 물론 매일 밤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꿈'은 어젯밤에도 다녀갔습니다. 저는 오는 손님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에 그저 보고만 있었습니다. 꿈은 의식의 반영이라는데 세상의 어떤 인연이 저와 얽매여 있는지 저 자신도 궁금합니다.

세상에서는 산을 그리워 하지만 산에서는 세상이 그리운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바쁜 일상에서는 히말라야에서 걷던 걸음이 그리웠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사람들과의 일상과 편리한 문명의 이기가 그립습니다. 매일 밤의 꿈은 제가 세상을 얼마나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보여주는 증표겠지요.

숙면과는 달리 아침 식사를 끝내고 출발 준비를 하니 머리가 아프면서 기침과 콧물이 나옵니다. 고소 증세가 온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갑자기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감기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콧물과 목 외에는 이상이 없어 걷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어젯밤 과음과 샤워가 영향을 미친 것 같네요. 지나고서야 후회하는 어리석음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툴로샤브로  학교 모습
▲ 학교 모습 툴로샤브로 학교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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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곰파(3250m)까지 갈 예정입니다. 툴로샤브로(2219m)에서 고사인쿤드(4385m)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촐랑파티(3650m)를 경유하는 방법과 신곰파를 거쳐 촐랑파티로 가는 방법입니다. 직접 촐랑파티로 가는 것은 하루에 고도를 너무 높이는 것이기에 대부분 트레커들은 신곰파를 경유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물론 바쁠 것 없는 저도 신곰파를 선택하였습니다.

툴로샤브로 끝자락에는 소박한 학교가 있습니다. 교실 문과 창문, 책상과 걸상 등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한 학교 모습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제 직장이 학교인지라 더 애잔한 마음입니다. 학교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자 아이들의 꿈일 것 같습니다. 더 나은 조건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려 봅니다.

툴로샤브로 학교의 교실 모습
▲ 교실 모습 툴로샤브로 학교의 교실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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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타리, 비스타리'

오늘은 출발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하루에 1000m 정도 해발고도를 올려야 하니 쉽지 않은 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저의 비대한 몸은 오르막만 만나면 위축되기에 유일한 방법은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트레킹에서의 지혜는 경험을 통해 얻습니다. 포터 인드라는 제 짐을 지고서도 일정한 거리를 앞서 가면서 제가 지친 기색을 보이면 '비스타리(천천히)'를 반복합니다. 지금 저는 최대한 천천히 걷고 있는 중인데 말입니다.

포프랑에서 본 안나푸르나 모습
▲ 절경 포프랑에서 본 안나푸르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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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인쿤드, 핼람푸 지역은 랑탕 트레킹의 주 무대에서 벗어나 있어 트레커가 많이 찾지 않는 곳입니다. 특히 겨울은 비수기라 트레커를 만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저는 혼자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즐깁니다. 산을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지며 전망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서 자주 되돌아봅니다. 제 뒤편에는 안나푸르나, 가네쉬 히말라야 그리고 랑탕리룽까지 6000~8000m 설산들이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감동을 제 짧은 혀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환장하겠네!'란 말뿐입니다. 제가 시인의 감성을 가졌다면 화려한 수사로 표현하겠지만 저의 무딘 혀는 '환장하겠네!'란 멘트만 반복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절경을 지닌 포프랑 롯지
▲ 포프랑 절경을 지닌 포프랑 롯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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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3시간을 올라 포프랑(3210m)에 도착하였습니다. 포프랑은 사방이 다 트여 있어 눈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는 방향 모두가 절경입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차를 주문하고 일기를 씁니다. 혼자 걷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서양 트레커 커플은 마주 앉아 카메라 사진을 보며 담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무척 정겹습니다. 혼자 걷는 저와 커플인 그들의 감동이 서로 다르지 않겠지요.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 목적지인 신곰파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거리이며 트레일도 완만합니다. 최대한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읽고 사색을 즐겨도 시간은 여유롭기만 합니다. 서양 트레커 커플도 자리를 떠날 줄을 모릅니다. 무엇이 그들의 발걸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요?

포프랑에서 신곰파 방향
▲ 전나무 숲 포프랑에서 신곰파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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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먼저 출발하였습니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우거진 숲길은  나뭇가지 사이로 설산과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사람의 스트레스를 해소시킨다는 '피톤치드' 효과가 아니어도 해발 3000m의 고산지대 숲길을 혼자 걷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가급적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피사체를 통해 보는 세상은 오히려 제 느낌을 반감시키는 것 같습니다. 제 눈과 마음으로 히말라야를 간직하고 싶습니다.

숲과 설산의 조화
▲ 숲길 숲과 설산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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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쯤 걷자 오늘의 목적지인 신곰파가 손짓하고 있습니다. "신"은 나무를 의미하고 "곰파"는 사원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8부 능선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신곰파(3250m)는 사원과 야크치즈 공장 그리고 4개의 로지가 트레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능선 위헤서 본 신곰파 모습
▲ 신곰파 능선 위헤서 본 신곰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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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후, 마을을 산책하였습니다. 치즈 공장을 돌아보고 언덕 위에 있는 곰파(사원)로 향합니다. 곰파는 문이 닫혀 있으며 룽다와 타루초가 휘날리는 곰파 뜰에는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습니다. 능선 위를 올라보니 불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도 화마는 피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곰파의 사원 모습
▲ 곰파 모습 신곰파의 사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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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흔적
▲ 고사목 화재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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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로 세상과 소통

숙소로 돌아와 식당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망 좋은 식당에는 여행자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카펫이 깔려 있고 쿠션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카트만두에서 구입한 엽서를 꺼내 세상과 교감합니다. 세상에서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이 다 소중합니다.

엽서에 지인의 이름과 주소를 쓰니 얼굴을 마주본 듯 대화가 시작됩니다. 세상에서는 '인연'과 '악연'이 있었지만 히말라야 3000m 고지에서는 모두가 '인연'으로 느껴지며 그리워집니다. 그리운 이들에게 나쁜 필체로 사랑의 말을 전하자니 가슴 뭉클해집니다.

우리나라 대표작가 18명이 쓴 '반성'이란 책을 다 읽었습니다. 동참한 작가 모두가 잘 알려진 분이고 좋은 글이 분명한데도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감동은 언어의 화려한 수사에서 오는 것은 아니겠지요. '반성'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야기할 때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신곰파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
▲ 아이들 모습 신곰파에서 만난 아이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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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곰파에 있는 숙소는 모두 규모가 있어 보입니다. 제가 묵고 있는 '레드 판다' 호텔은 식당과 숙소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인드라의 말에 의하면 이곳 주인 대부분 카트만두에 거주하고 비수기에는 종업원들만 있다고 합니다. 오늘 투숙객은 독일에서 온 트레커 3명과 제가 전부입니다. 그 친구들은 저와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습니다. 카트만두에서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합니다.

식당 난롯가에는 트레커와 주방장 아이들이 함께 불을 쬐며 모여 있습니다.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미소 하나로 손짓 하나로 하는 아이들과의 대화는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게 합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신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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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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