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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신곰파에서 바라본 일몰은 환상적이었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자꾸 나태해지고 귀찮아지는 것이 슬며시 타성에 젖어 가는 것 같습니다. 식당 난롯가에서 오후 내내 독서와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불면의 밤은 계속 되고...

불면의 밤은 계속되었습니다. 밤 11시경부터 깨기 시작한 잠은 아침까지 자다 깨다를 반복합니다. 카메라를 꺼내 그동안 찍은 사진을 몇 번을 보았는데도 아침은 멀기만 합니다. 여명이 밝아 오자 이제 침낭에서 얼굴을 내밀기가 싫어집니다. 온기가 남아있는 침낭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히말라야를 걷는 것만큼 힘들고 어렵습니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면 따스한 햇살이 저를 반기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오늘은 신곰파(3230m)를 출발하여 힌두교의 성지인 고사인쿤드(4380m)까지 갈 예정입니다. 신곰파 뒤쪽 능선은 지리산 장터목처럼 고사목들이 천 년을 지키고 있습니다. 능선 위에 올라서면 울창한 전나무 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으며 가끔씩 숲들 사이로 설산 모습이 빛나고 있습니다. 찬란한 아침햇살과 숲의 고요함이 조화를 이루며 싱그러운 트레킹이 시작되었습니다. 

숲 사이로 설산의 모습이..
▲ 가네쉬 히말라야 모습 숲 사이로 설산의 모습이..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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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을 걸어 찰랑파티(3584m)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은 좌우가 다 설산입니다. 같아 보이면서도 달라 보이는 설산의 풍경이 사람을 감동을 줍니다. 겨울철 비수기라 3개의 로지 중 오직 하나만 열려있습니다. 로지에는 종업원 한 명이 라디오에 머리를 박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단 한 명의 트레커도 만나지 못했기에 이 젊은이는 어젯밤 3584m의 고도(孤島)에서 혼자 쓸쓸하고 외로운 밤을 보냈을 것입니다.

새로운 부처님 모습

찰랑파티가 수목한계선입니다. 이곳을 지나자 황량한 오르막길이 시작됩니다. 숲이 시야를 가리지 않기에 경관은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찰랑파티 뒤편 언덕 위에 특이한 부처님 모습이 새겨진 초르텐(불탑)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근엄한 부처님 모습만 본 저로서는 많이 당황했지만. 어떤 세상의 유혹에도 빠지지 말라는 부처님의 진언(眞言)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해발 3800m 히말라야 능선에서 바람을 타고 세상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뵌 새로운 부처님 모습
▲ 부처님 모습 히말라야에서 뵌 새로운 부처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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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900m의 라우레비나야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번 트레킹에서 가장 시야가 화려한 곳이 찰랑파티에서 이곳까지 오는 트레일인 것 같습니다.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경관 중에 하나"라고 히말라야에 전문가인 대원스님은 말씀하십니다.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가네쉬히말라야, 랑탕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연봉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축복임이 틀림없습니다. 

라우레비나야크에서 본 가네쉬 히말라야
▲ 설산 라우레비나야크에서 본 가네쉬 히말라야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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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은....

이곳도 하나의 로지만이 열려 있었습니다. 로지 주인이 오늘 목적지인 고사인쿤드에는 숙소가 모두 닫혀 있다는 슬픈 이야기를 전합니다. 차를 마시며 포터인 인드라와 상의를 하니 그도 이곳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합니다. 고사인쿤드에서 숙박을 하지 못하면 오늘 10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며 점심 먹을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108개의 호수가 어우러진 해발 4300m 고사인쿤드에서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나의 바람과 설마 로지 하나는 열려있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출발을 결정합니다.  

고사인쿤드 안내 지도
▲ 안내판 고사인쿤드 안내 지도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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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레비나야크에서 1시간을 오르니 능선 위에 초르텐(불탑)과 룽다(불경이 적힌 깃발)가 물결치고 있습니다. 능선에서 멀리 고사인쿤드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힌두교 성지인 코사인쿤드는 '시바'의 신화가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힌두교에는 창조의 신 '브라마', 유지의 신 '비쉬뉴'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가 있습니다. 이들 중, 독을 마신 시바신이 목이 타 이곳 히말라야로 날아와 삼지창을 꽂자 물이 솟아나와 그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한 곳입니다. 이곳은 힌두교의 주요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고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이 바람을 타고
▲ 초르텐과 룽다 부처님 말씀이 바람을 타고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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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현실이 되어..

오후 1시, 고사인쿤드에 도착하였습니다. 108개의 호수를 가진 해발 4300m의 고사인쿤드(물론 호수는 각자의 이름이 있고 고사인쿤드는 비슈누신이 잠든 호수의 이름임) 모습은 상상 이상입니다. 백두산 높이의 두 배가 넘는 곳에 108개의 호수가 어우러져 있다는 사실은 눈으로 봐야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발 4,300m에 있는 호수 모습
▲ 고사인쿤드 호수 모습 해발 4,300m에 있는 호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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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했었지만 숙소 모두는 잠겨 있었습니다. 설마가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요기(인두교의 수행자) 몇 명만 수행하고 있을 뿐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 배가 무척 고파 걸을 수가 없습니다. 배낭을 뒤져 보니 건빵 한 봉과 양갱 두 개가 있습니다. 몇 번씩 현지 아이들에게 주려다 혹시 하고 남겨 놓은 것인데 요긴한 한 끼 식사가 되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포터 인드라가 서둘러서 짐을 정리하고 출발 하였습니다. 부리나케 그 친구를 따라가지만 쉽게 거리를 좁힐 수가 없습니다. 걷다가 제가 보이지 않으면 기다렸다 모습이 보이면 다시 출발합니다. 자기의 의견을 무시한 저에게 화가 나서 하는 행동으로 생각이 들어 미안하면서도 화가 나기도 하지만 열심히 걷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트레킹이 끝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속도를 맞추면 오늘의 목적지인 페디(3630m)에 도착하기 힘들기에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었습니다. 교사인 저는 착한 포터 인드라에게서 인생의 진리를 배웁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어려움이 닥쳤을 때 빠른 판단력으로 트레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속 좁은 저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새로운 세상 '핼람푸 히말라야'

고사인쿤드에서 1시간을 걸어 해발 4610m의 라우레비나라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설산과 호수의 어우러짐은 사람을 몽환적으로 만듭니다. 산을 오를수록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는 히말라야의 풍광 때문에 사람들은 힘이 들어도 웃으면서 산을 걷습니다. 어느덧 랑탕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고사인쿤드를 거쳐 트레킹이 마지막인 핼람푸 히말라야만 남겨 두고 있습니다. 

해발 4,500m 라우레비나라
▲ 라우레비나라 해발 4,500m 라우레비나라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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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상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핼람푸 히말라야 새로운 세상 핼람푸 히말라야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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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내리막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곳곳에 얼음이 얼어 있어 걷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부실한 점심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쳐갑니다. 인드라도 길을 찾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등산화 속에 눈이 들어와 질척거렸으며 두 번이나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사위는 어두워가고 목적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드라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저녁 6시 무렵, 목적지인 페디(3630m)에 도착하였습니다. 무려 10시간을 걸었습니다. 라우레비나야크에서 페디까지 6시간 이상을 건빵 몇 알과 양갱 하나로 버텼습니다. 트레킹은 극기 훈련이 아니라 산을 즐기기 위함인데 저의 잘못된 판단으로 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해발 4000m의 고사인쿤드 지역을 무심하게 지나쳐 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의 목적지 페디 모습이...
▲ 페디 모습 오늘의 목적지 페디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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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트레킹에서 처음으로 철저한 준비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건빵과 양갱이 없었다면 정말 힘든 하루 되었을 것입니다. 히말라야는 나의 객기로 걸을 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늘 발생할 수 있기에 철저한 준비와 순리대로 걷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정말 긴 하루였습니다. 착한 포터 인드라에게 콜라 1병과 삶은 계란 2개로 감사의 말 전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태그:#네팔, #히말라야, #랑탕, #고산인쿤드, #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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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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