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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표지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표지
ⓒ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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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대체로 어른을 닮으면서 커나간다. 그들이 즐겨 쓰는 말이 그렇고, 습관처럼 하는 행동이 그렇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좀 지나치다 싶게 큰 소리로 떠들며 놀 때가 많다. 녀석들은 여덟 살, 다섯 살, 세 살이다. 그러니 큰 소리 내며 노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하지만 내 입은 그 시끄러움을 참아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내뱉는다.

"시끄러워 죽겠네."

그러자 언제부턴가 첫째와 둘째 녀석이 '죽겠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했다. 한번은 첫째 녀석이 "'죽겠다'는 말은 아빠에게 배우고, '이 놈의 자식들'은 엄마에게서 배웠지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뒤부터 내가 '죽겠다', '자식'이라는 말을 조심하게 된 것은 순전히 우리 아이들에게서 배운 덕분이다.

이 책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는, 이오덕 선생님이 교직에서 내쫓김을 당한 뒤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1990년을 앞뒤로 해서 쓰였다. 지금으로부터 치면 20여 년 전의 '옛날' 일인 셈이다. 하지만 이 글들에 그려져 있는 교육 문제의 실상이나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오늘날 다시 찬찬히 들춰봐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살피는 데 더 잘 맞는 내용이 훨씬 더 많다.

가령 이오덕 선생님은 '재주꾼을 길러내는 교육은 안 된다'라는 글에서, 아이들에게서 삶을 빼앗아버린 우리 교육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재주꾼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손재주 기능공'과 '말재주꾼, 글재주꾼'들이 그것이다.

손재주 기능공은, 기계적인 훈련을 통해 길러지므로 창조 재능이 없다는 점에서, 말재주꾼과 글재주꾼은, 아이들이 삶을 빼앗긴 상황에서 머리로 꾸미고 거짓으로 흉내를 낸 말과 글만을 번드르르하게 잘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삶을 말하지 못한 채 기계적인 문제 풀이 교육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실이 이와 무엇이 다를까.

모든 학교가 '붕어빵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까닭

정말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황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교사는 교육 시스템의 상위에서 하달하는 국가교육과정과 교육정책을 최일선에서 집행하는 말단 관료에 불과할 때가 많다. 교사의 창의성과 자율성은 결코 인정되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보낸 수많은 업무 지침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교사를 우리는 과연 교육 전문가로 부를 수 있을까.

문제는 교사에게 이런 시스템을 강제하는 주체가 바로 교육 당국이라는 사실이다. 폭력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의 관련 기록을 학생부에 기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일선 교육청이나 학교와 줄다리기를 하는 교과부의 행태를 떠올려보라. 교과서 단원의 학습 목표나 평가 지침까지 세세하게 규정해 놓고선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고 수업을 하라고 을러대는 교육 당국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책에서도 이오덕 선생님은 교육 문제의 가장 큰 책임은 교육 당국이나 교육 행정가들에게 있다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행정이야말로 교육을 잘못되게 하는 밑바탕이다. 정치가 잘 안 될 때 백성 쪽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 쪽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정치를 바로잡도록 해야 희망이 있듯이, 교육도 아이들이 잘못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잘못 가르친다고 보아야 하고, 그 가르치는 사람을 움직이는 행정이 잘못한다고 보아야 옳다.(27쪽)

그런데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떤가. 교사들은 대부분 교육청이나 교육 당국의 손과 발이 되어 노예처럼 움직인다. 교사는 교장을, 교장은 교육장이나 교육감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지시만 내려주십시오' 하듯이 학교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학교가 붕어빵 수업을 하고, 붕어빵 학생을 길러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다고 교사의 책임이 줄어들까. 사실 교육 당국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을러댈 때마다 온몸을 내던지며 양심을 지켜온 교사들은 부지기수다. 이오덕 선생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러니 교육자로서의 교사의 책임감을 남다르게 생각하지 않으실까.

교직자들 가운데는 꽤 많은 수가 아이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점수 쟁탈의 경쟁장으로 내몰아 사정없이 채찍질하는 것을 교육자가 할 가장 큰 일로 알고 있다.(28쪽)

아이들의 성적을 관리하는 교사를 나무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점수로 좌우되는 현실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실을 무시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성적을 올리도록 다그치고, 그 성적으로 아이들을 통제하겠다는 발상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점수를 몇 점 높이면 무엇을 해주겠다느니 하면서 아이들과 '거래'를 하는 교사,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우리 둘레의 삶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참교육'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나. 어떤 교사로 살아가야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직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무'를 그린다고 하자. 네 무리 가운데 첫째 무리 어린이들에게는 제목만 말해 주어서 곧 그리게 하고, 둘째 무리 어린이에게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한 다음 그리게 한다. 나무에는 어떤 나무가 있고, 그 나무의 잎과 가지들이 어떤 모양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셋째 무리는 직접 나무들이 있는 산이나 들에 가서 그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게 한 다음 그리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무리는 나무 밑에 가서 놀게 하고, 또 더러는 나무 위에 올라가 놀게 하여 그 나무 둥치를 끌어안아 보게도 하고, 가지를 흔들어 보게도 한다.(33, 34쪽)

진짜 교육, 삶과 함께 하는 교육을 말하기 위해 그림 그리기 수업의 한 가지 예를 든 것이다. 여기에서 어느 무리의 그림이 가장 싱싱하고 느낌이 살아 있을까. 말할 것도 없이 마지막 무리가 그린 그림들일 것이다. 삶에서 우러난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과 함께하는 교육은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또한 이 교육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받은 느낌을 밖으로 그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이 어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삶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곧 교사가 교육학 논문이나 연수 자료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이유다. 동시에 이것은 교사가 교장이나 교육감이 아니라 아이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오덕 선생님이 쓴 이 책에서 바로 그 실마리를 찾아보기 바란다.

* 이오덕(1925~2003) 선생님은 경북 청송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뒤, 43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어린이문학과 글쓰기교육,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 등에 힘을 쓰신 분이다. 선생님께서는 1986년 2월에 전두환 독재 정권의 강압에 떠밀리다시피 하여 학교를 떠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학교를 강제로 떠나시게 된 전후 상황이 직접 쓰신 7일치 일기를 통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평생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애쓴 한 평범한 교사를 이 나라의 권력자들이 어떻게 억압했는지를 생생하게 깨닫는 기회가 되리라 본다.

덧붙이는 글 | *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이오덕 씀, 삼인 펴냄, 2005년 11월, 355쪽, 1만2000원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 아이들을 살리는 이오덕의 교육 이야기

이오덕 지음, 삼인(2005)


태그:#이오덕, #<내가 무슨 교사 노릇을 했다고>, #교육,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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