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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겉그림
ⓒ 리브로
42년의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 던지듯
훌 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 삶은 그대로 감옥살이 42년!
이제야 나는 풀어놓인 한 사람의 인간,
인간이 되었다.


이는 40년 넘게 어린이 교육에 온몸을 바쳤던 이오덕 선생이 자신의 퇴임식 날 아침에 쓴 시이다. 남들이 보면 평생토록 바른 교육, 뜻있는 교육, 살아있는 교육, 삶이 있는 교육, 우리말 바르게 쓰기 교육에 온몸을 바쳤기에 자랑스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부끄러울 뿐이라고 털어 놓고 있다.

왜 그랬을까?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삼인, 2005)를 읽어보면, 그 분이 그렇게 밝혔던 속내를 헤아릴 수 있다. 이오덕 선생이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교단에 몸담고 있는 그 온 기간을 '감옥살이'라고 빗대어 이야기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이른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학생들을 마음껏 가르쳐보고 싶은데도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행정 환경을 가장 큰 까닭으로 꼽고 있다.

그리고 굳이 다른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는 선생 스스로가 그 행정 환경이라는 등살에 못 이겨 코를 꿰어 끌려 다니다시피 살며 가르치는 것이며, 둘은 선생이 학생들에게 참삶과 바른 교육을 가르쳐주는 것을 가로막은 채 오로지 성적 높이기만을 부채질하고 있는 학부형들을 지목한다.

그런데도 굳이 그 옥살이하는 교육 텃밭을 떠날 수 없었던 까닭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자, 우리나라의 밝은 앞날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 다름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선생은 어린아이들을 바로 가르치고자 이를 악다물고 그곳에서 참 교육을 이끌어가지 않았나 싶다.

지금은 사학법 때문에 수그러든 것 같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원평가제를 두고 말들이 참 많았다. 선생들 스스로에게 채찍을 가해 더 날카롭고 예리한 교육을 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 그것 때문에 교원평가제를 찬성하는 쪽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행정 환경이라는 틀로 선생들을 묶고 가두는 꼴이니 어떻게 창의성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 그것 때문에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수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이오덕 선생이 지금도 살아있어서 그것을 두고 한 마디 한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 당시에는 '교원근무평가제도'였던 바, 그것이 오늘날 교원평가제와 다르지 않다면, 그 분은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때도 교원근무평가제도를 완전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당시 농촌교사로서 학생들을 돌보아왔던 자신의 삶을 비추어, 교사들이 학생들을 이끌고 돌보고 어울려주는 것보다도 오히려 공문서 처리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행정에 너무 골머리를 앓지 않도록 배려해 줄 것을 교원 당국에 부탁한 바 있다.

이는 행정이라는 환경이 얼마나 선생들을 옭아매는 올무인지, 그 때문에 학생들까지도 참된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오직 목표달성에만 갇힌 닭장 속 닭처럼 서서히 병들어가도록 이끌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환경을 바꾼다고 해도 선생들 스스로가 바뀌지 않으면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이오덕 선생은 가리키고 있다. 실로 그렇다. 교원평가제가 어떤 방향으로 바뀌고 나가더라도, 사학법이 개정이 될지 아니면 다르게 된다할지라도, 교육이라는 한가운데에 서 있는 선생들 스스로가 참 뜻과 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교육은 참되게 될 수 없다고 꼬집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 지식을 경쟁으로 외우게 하고 있는 학교교육은 참된 교육이 아니다. 여기서는 사랑과 도움과 봉사를 가르치지 않고 싸움과 미움을 가르친다. 창조가 아니라 흉내를 가르친다. 착하고 바른 마음, 수수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요령과 수단을 가르쳐서 약삭빠른 마음이 되게 한다. 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다운 마음을 가지도록 하지 않고, 남을 짓밟거나 남을 속여서라도 돈과 권력을 잡아 향락을 즐기고, 겉모양을 꾸미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게 한다. 어쨌든 이 미친놈의 점수 쟁탈 교육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이 되는 것, 최소한 할 일조차 도무지 가르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을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124쪽)


그래서 이오덕 선생이 이야기하는 참교육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모든 교육을 삶을 부대끼면서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둘째는 모든 교육이 자유로운 자기표현을 하며 이뤄질 수 있도록 하고,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아이들의 삶을 억누르지 말고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오늘날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보면 환하게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삶을 배우고 익히는 게 아니라 책 속에 든 지식만을 담기에 바쁠 뿐이다. 그림그리기나 웅변대회나 토론회를 보면 자기 표현이나 자기 주장은 없고 오로지 어른들이 한 대로, 어른들에게 배운 대로 따라 할 뿐이다. 그리고 그 까닭이 아이들에게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옥죄고 있는 선생들과 학부모 탓이 가장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좀체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는 자기 텃밭들을 잃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살아 있는 삶을 배우는 것보다 더 값진 가르침은 없다고 이오덕 선생은 이야기해 왔다. 이 책에서도 숱하게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다. 삶을 가르치고 삶을 배우는 교육, 그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라는 것이다.

다만 이 책에서 교직에 몸담고 있는 선생들을 비롯해 행정환경 속에 있는 분들이나 학부모들이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두 권 정도 밝혀 놓고 있다. 물론 그것은 꾸며낸 책이 전혀 아니다. 모두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쓴 현장 이야기이다.

한 권은 류홍렬씨가 쓴 <아이들지기>이고, 다른 한 권은 이상석씨가 쓴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이다. 그 가운데 앞에 책은 선생과 학생들 사이에 권위나 복종 같은 게 없이, 형이나 삼촌처럼 똑같이 이름을 불러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고, 뒤에 책은 어머니들이 준 돈봉투를 들고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그 참뜻을 받아들인 학생들이 자기 부모님에게 선생님의 참 뜻을 알려줬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생토록 교직에 몸을 담고 살아 왔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선생 노릇을 한 적이 없다고 밝힌 이오덕 선생님. 오히려 어린 학생들에게 때론 형처럼 때론 삼촌처럼 참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함께 그 삶을 살며 보여 온 이오덕 선생님.

지금 그 분은 이 땅에 없지만 그 분이 남긴 흔적은 이 땅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선생님이란 과연 어떤 것을 가르쳐주어야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삶으로 보여줘야 하는지를, 오늘도 이오덕 선생님은 생생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 아이들을 살리는 이오덕의 교육 이야기

이오덕 지음, 삼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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