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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면 어떻게 되는 거야?"
"혁명이 일어나는 거야. 제대로 된 꿈을 꾸면 말이야."


어떤 소설의 한대목으로, 주인공은 절망에 갇힌 사람들에게 희망을 꿈꾸게한다. 꿈꾸는 이들은 지배자의 온갖 탄압에 맞서 싸워 결국에는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간다.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
ⓒ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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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한민국에서는 희망의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감옥이 갇힌 노동자시인이 있다. 35미터 상공의 100톤짜리 85호 크레인 위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해고철회가 될 때까지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김진숙을 살아서 내려오게 만든 희망버스를 출발시켰다는 가당찮은 이유로 말이다. 노사 간 합의로 고소고발이 취하됐음에도 공권력은 그가 또 다른 희망버스를 꿈꾼다며 철창 안에 가뒀다. 그는 바로 송경동 시인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나갈 수 없는 까닭이 쌍용자동차로 희망버스 승객들이 가주면 좋겠다는 발언 탓이었다는 게 가슴 아프다. 간 것도 아니고 가자고 한 얘기 정도가 구속 사유가 되는 것도 그렇고,19명이라는 희생자가 나온 사회적 조문의 장소를 언급했다는 게 무슨 법적 제재의 대상이 되는 것도 웃기다." - 본문 중에서 -

노름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사는 아버지에게 배울거라곤 가난한 시골장터 장사치의 세 치 처세술과 세상에 대한 굴종뿐, 3일에 한번씩 부서지던 세간살이와 자식들 앞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과 시퍼렇게 멍든 눈으로 밤새 곡소리를 내던 어머니 그리고 가출. 그가 혹시 내 어릴적 고향의 이웃은 아니였을까 싶을만큼 내 기억속에도 남아있는 동네의 어느 콩가루 집안과 닮았다. 저런 집구석 자식들의 앞날은 뻔하다며 어른들은 혀를 차고는 했는데, 요새로 말하면 포악스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시인은 자신의 가족사를 담담하게 구체적으로 밝히며, 불우한 성장기를 보냈음을 첫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에 고백했다. 학창시절 내내 자괴감과 열등감으로 자신을 학대하는 불량학생이 문예반이라니? 고교시절 문예반활동은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을 꿈꿀 수 있는 해방구와 같았지만 5.18광주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 권력하의 학교는 시화전을 준비하던 문예반을 '광주사태'를 연상케 했단다. 결국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억지궤변을 이유로 문예반은 깨져버린다. 그렇게 그가 잃어버린 문학을 찾기까지는 긴 시간이 지나야 했다.

무척이나 가난했던 시절, 하루 여덟 시간에 시급 1800원을 받는 잡부일을 시작으로 노동의 길을 들어선 시인은 본격적으로 '노동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임금을 쫓아 밤낮없이 건설현장으로 공장으로 내달렸다.

"모든 젊은날의 꿈은 사치였다. 돈을 잡던, 명예를 잡던, 이상을 잡던 하나는 잡아야 한다는 생각. 소유만이 허기진 영혼을 달래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그렇게 어설픈 자본주의의 맹신자가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자학이란 걸 알면서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 본문 중에서

형제 넷 중에서 셋은 일찍부터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용접조공으로 배관조공으로 새벽밥을 먹고 잔업철야를 밥 먹듯이 하며 일거리를 쫓아서 전국을 누비게 된다. 일찍이 노동운동을 시작한 시인과 달리 정유공장에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한 형과 동생은 민주노조의 바람이 불면서 조금씩 변하게 된다.

형제들은 서로 너무 나서지 말고 가정을 생각하라며 싸우지만 형은 쟁의부장으로 동생은 대의원으로 역사상 처음이라는 정유공장 파업을 일으키고, 공권력을 피하던 형제들은 서울 명동성당에서 만난다. 자본권력은 언제나 그렇듯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을 해고시키고 민형사상의 고소고발을 통해서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려고 한다.

파업현장에서는 선동시로, 용역깡패와 공권력에 의해 타살된 노동자를 추모하는 집회에서는 추도시를 낭송하다가 분에 못이겨 두번이나 무선 마이크를 내동댕이친 송 시인. 그는 이후 깡패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공권력은 시인이 추도시를 낭송해서 폭력시위를 선동했다며 소환장을 여러차례 날리지만, 그는 끝까지 불응한다. 끊임없는 자본권력의 착취와 차별 속에서 노동자는 스스로 단련되고 의식화된 것이지 하찮은 시 한편으로 선동되는 것이 아니며, 소환명령에 응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아들이 있다. 아빠와 찜질방에 놀러가는 재미에 자주 찜질방에 가자고 조르지만 벌이가 시원치 않아 그 부탁을 쉽게 들어줄 수 없다. 아이는 눈물바람을 하고 아빠는 미안한 마음에 동네 놀이터라도 생각해보지만 구로동의 유명한 빈민촌에는 아이의 눈을 만족시켜줄 만한 놀이터도 없을뿐 더러, 이미 노숙인들이나 불량스러운 애들이 점거하고 있어서 가볼 만한 곳도 못된다.

허름한 주머니사정 때문에 찜질방에서의 문화생활이 부담되었지만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철이 들었는지 막무가내로 조르지는 않게 되었다. 아이에게 잘 놀아주는 아빠가 못되는 것을 시인은 미안해한다.

"그러나 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자기가 찾은 모든 귀한 것을 아빠에게 나눠주고 싶은거다. 아빠도 자기처럼 즐거워지기를 바라면서. 나 역시 아이를 꼭 껴안아주고 싶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빌고 싶어진다.(중략) 내 아이에게가 아니라, 하나의 새 생명에게 미안하다. 나와 30년 차이밖에 안 나는 새로운 역사의 손짓에게 미안하다." - 본문중에서 -

시인은 이 땅의 민중들이 탄압받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평택 대추리에서 벽돌에 맞아 머리통이 깨졌음에도 그 자리에서 버텼고, 비정규직 철폐와 복직을 요구하는 기륭전자의 농성장을 침탈한 굴착기에 맞서 싸우다 다리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하여 수술대에 오르기도 했다. 시인은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부산 영도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을 응원하기위해 희망버스를 기획한다. 그리고 승리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희망버스를 꿈꾼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시인은 개별화되고 연대하지 않는 사회의 쓸쓸함에 대해서 논하며, 누누이 연대를 강조했다. 연대가 필요한 곳에 가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무슨 죄냐고, 왜 잘못된 일이냐고, 그게 큰 어려움이냐고 소리 높여 외친다.

부산구치소에 갇힌 시인은 부상당한 발목을 수술해야 하는 상태이며 목디스크도 있다. 한겨울 찬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그의 부상이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꿈꾸는 자가 잡혀가는 시대에 희망의 나비가 되어 세상속으로 살랑살랑 춤추며 어서 날아오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 지음. 실천문학사 12,000원



꿈꾸는 자 잡혀간다

송경동 지음, 실천문학사(2011)


태그:#희망버스, #송경동, #김진숙, #연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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