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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 만남보다 짧은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곧 3800미터 묵디낫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미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산행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그들이 살고 있는 마낭을 지나 토롱파스를 향해 걷는다. 그리고 묵디낫으로 내려선다. 나는 지난 2006년 2월과 8월 이 길을 걸었다. 인도인과 네팔인들 모두가 성지로 여기는 묵디낫에서 가장 큰 숙소가 밥 메리(Bob marry,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가수)호텔이었다.

청량한 빛의 코스모스 히말라야로 올라가는 길에 핀 코스모스......, 청량한 바람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지친 발걸음에 위안을 주었다.
▲ 청량한 빛의 코스모스 히말라야로 올라가는 길에 핀 코스모스......, 청량한 바람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지친 발걸음에 위안을 주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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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을 수확한 농부 산중에 농부가 수확한 미을 정리하고 있었다. 채를 이용해 바람을 불러오고 그 바람으로 알이 맺히지 않은 낱알을 날리고 있었다.
▲ 밀을 수확한 농부 산중에 농부가 수확한 미을 정리하고 있었다. 채를 이용해 바람을 불러오고 그 바람으로 알이 맺히지 않은 낱알을 날리고 있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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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악을 들으며 2006년 2월 어느 날 하룻밤을 쉬었다. 오랜 동안 꿈꿔본 적도 없는 히말라야 5416미터를 넘어선 후의 기쁨은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잔잔해졌다. 그곳에 주인은 밥 메리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갖고 있었다. 여주인이었는데 남편과 함께 호텔을 운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녀에게서 밥 메리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레게머리를 한 채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 같다는 아리송한 마음을 가졌다. 후일 한국에서 그의 전기문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고 책을 사보았다. 세상에는 놀라운 영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그 후 한 동안 밥 메리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고 그의 음악을 찾아듣기도 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음악가였다. 히말라야, 그리고 성지 묵디낫, 성자처럼 빛나는 인생을 살다간 밥 메리, 자메이카 출신인 그의 이름을 딴 호텔이 네팔의 산중에 있다. 모든 것이 신비다. 한국에서 온 이방인은 그곳에서 또 다른 성자를 만난 것이다. 아무튼 그가 살아낸 길이 또 다른 자메이카의 영광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난 자메이카를 잘 모른다. 그를 통해 아주 조금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자메이카를 동경하게 되었다. 

각배니 초원 저 초원의 오른쪽으로 난 길과 강  건너 길을 가면 티벳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길은 무스탕 왕국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네팔 안의 또 다른 왕국은 지금도 나라에서 인정한 왕이 살고 있다.
▲ 각배니 초원 저 초원의 오른쪽으로 난 길과 강 건너 길을 가면 티벳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길은 무스탕 왕국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네팔 안의 또 다른 왕국은 지금도 나라에서 인정한 왕이 살고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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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없이 막은 웃음이 아름답다. 웃음이 얼마나 맑은지 작은 사진을 보면서도 놀랍다. 우리가 저렇게 웃으며 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겁없이 막은 웃음이 아름답다. 웃음이 얼마나 맑은지 작은 사진을 보면서도 놀랍다. 우리가 저렇게 웃으며 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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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과연 어떤 것들을 호흡하고 산행을 했을까? 무엇을 비웠고 무엇을 채웠을까? 공(空)한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깊은 영혼을 간직한 눈빛으로 여행자를 대하는 네팔 사람들이다. 보이지도 담기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같은 몸에 같은 마음으로 읽은, 히말라야 산중의 기억은 가득 담았을까? 한 걸음 한 걸음 그 어떤 순간보다 가고자 한 길에 다다른 후 되돌아서는 걸음은 언제나 평온함을 준다. 산중에서 바라본 평온과 내가 가져온 마음에 평온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사색은 사색의 꼬리를 붙들고 끝 모르고 이어진다.

현대사회의 질병은 신체의 질병보다 앞서 마음의 질병이 더 극심하다. 따지고 보면 그 마음의 질병의 근원은 질문이 없는 삶 때문은 아닐까? 삶의 매순간을 질주하듯 살다보면 사색도 질문도 다 불필요한 것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자가 히말라야를 찾고 길고 긴 시간을 걷는 것은 사색의 끝없음, 그리고 그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다. 절로 깊어지는 사색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듯 살 수 있는 것도 그냥 쉽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와 문명은 보이는 것에 지나치게 몰두한 것은 아닐까? 주제넘은 생각을 해보게 된 것도 모두 히말라야가 날 품으며 건네준 선물이다.

미로 속에 염원 미로다. 각배니는 저렇게 촘촘히 이어진 벌통 같은 마을이었다. 아마도 골짝에 위치한 탓으로 추위를 피하기도 하고 외부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건설된 마을이 보여주는 특성같다. 색색의 염원이 담긴 조형물은 길마다 있다.
▲ 미로 속에 염원 미로다. 각배니는 저렇게 촘촘히 이어진 벌통 같은 마을이었다. 아마도 골짝에 위치한 탓으로 추위를 피하기도 하고 외부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건설된 마을이 보여주는 특성같다. 색색의 염원이 담긴 조형물은 길마다 있다.
ⓒ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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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곽이다. 저 강을 넘어 오른편으로 일주일을 가면 무스탕 왕국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무스탕은 독립을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한다.
▲ 오래된 성곽이다. 저 강을 넘어 오른편으로 일주일을 가면 무스탕 왕국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무스탕은 독립을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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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의 선물'하면 커피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렇게 선전되고 광고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 올레길의 아름다움과 더 많은 길이 선전되고 광고되는데 왜, 히말라야의 산행에 대해서는 광고되지 않는지 의아심도 갖는다. 길과 길의 사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인류의 역사적 흔적도 함께 우리의 마음을 붙들고 사색을 종용하는 곳이란 생각 때문이다. 느림을 강조하지만 서두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이란 생각이다.

올라선 길, 묵디낫까지 4시간 30분 다시 되돌아서 내려오는 동안 3시간 합하여 7시간 30분이다. 우리는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사색에 머물렀다. 아마도 한국에서 한 달을 살아도 가져보지 못한 사색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 동안에도 일상이 내린 저주로 우리는 그런 사색의 시간을 갖기 어렵다.

사색을 멈추라는 명을 수행하는 수행자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 사회, 조국, 그냥 자신에까지 소홀한 삶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과연 나만의 사색일까? 거대한 것이 아니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란 생각이다. 단발적인 사색이 아닌 깊고 차분하고 잡념 없는 사색을 말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각배니, 묵디낫#무스탕 왕국#김형효#무스탕 김형효#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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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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