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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에게는 행동하는 인간들을 모방하기 위한 용기와 행동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이 세계를 반영하려는 의지와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반영이란 우물이나 벽에 걸린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것 같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를 넘어선다.

삶을 영위하는 환경이란 우물이나 거울처럼 정지되어 있거나 단순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다가서야 한다.

결국 시인은 구체적이면서도 총체적인 세계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양심이다. 시인의 양심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실이다. 진실은 깨어 있는 의식과 더불어 삶을 실천해감으로써 구체화된다. 독자들은 시인의 이 양심을 통해 시대 상황이며 사회 구조를 읽고 바람직한 인간 가치를 인식하는 것이다." - 맹문재 <만인보의 시학, '시와 현실'> 중

시에 능한 사람 평도 능할 필요가 있다?

맹문재 시인
 맹문재 시인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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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출판의 이념을 표명하는 '푸른사상'에서 의욕적으로 간행하고 있는 한국문학 비평선이 있다. 그 비평선의 세 번째로 문학평론가 맹문재의 <만인보의 시학>이 최근 출간됐다.

<만인보의 시학>의 저자는 시창작과 평론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문학평론집 <시학의 변주>를 낸 지 4년만에 나온 셈이다.

한국문단에서 시와 비평을 함께 하는 문인은 많지 않다. 그렇다. 조선시대의 김만중 선생은 " 옛날부터 시를 평하는 사람이 반드시 시에 능할 필요가 없고 시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평을 잘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서포 만필>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그는 시와 평도 능하다고 상찬 받는 우리 시대 대표 시인이자 대표 문학평론가. 이런 그는 1991년 <문학정신>을 통해 시작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 등이 있다. 주요 비평서로는 <한국민중시문학사>, <시학의 변주> 등이 있다.

해일처럼 밤이 몰려와도
탱자나무는 어깨를 풀지 않는다
무서운 기색도 없이 전선을 응시하고
부력과 풍자를 모르는 자세로 진지를 구축한다
황사도 태풍도 경적도 저 견고한 진지를 뚫지 못하리라
유언비어도 규정도 외로움도 쓸쓸함도 저 거대한 발밑에 깔리리라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탱자나무는 전진한다
칼도 뽑았다
퇴각하지 않겠다는 증표로 온몸을 가시로 무장했다
<탱자나무>


맹문재의 평론은, 그의 시 <탱자나무>의 '온몸을 가시로 무장했다'는 시구의 상징성에서도 보여지듯이,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이나, 우리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텍스트로 삼는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만인보의 시학>

맹문재 문학평론가의 <만인보의 시학>
 맹문재 문학평론가의 <만인보의 시학>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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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짤막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쓰고 싶은 글이 많았고 실제로 많이 썼다. 이번 평론집에서는 민중, 다문화가정, 분단, 농어촌, 노동, 광산촌, 지폐 재해자, 봉급 생활자, 일상, 문학상 제도 등 지극히 사회적인 주제들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자는 <만인보의 시학>의 '책머리'에 아래와 같이 쓰고 있다.

"<만인보의 시학>의 평론집 제목은 고은 선생님의 <만인보>를 빌려 썼다. <만인보>의 '서시'에 나오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라"는 구절이 특히 나를 이끌었다. 이 평론집에서 '만인'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맹문재의 <만인보의 시학> 평론집은 해서 만인(萬人,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그들의 역사적 가치를 찾아내 조명했다는 점에 높은 덕목을 지닌다 하겠다. 그리고 시란 장르에서 대개의 독자들이 어쩔 수 없이 느끼게 되는 이해의 '결핍'되는 요소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이해시켜주는 역할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전반적으로 문체가 경직될 수밖에 없는 문학 평론집. 저자는 독자의 보다 나은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총 4부로 나누고, <만인보의 시학>의 발간 취지와 의의 등을 '서문'에 적고 있다. 아래와 같이 그 내용을 간추려 옮겨본다.

"제 1부('포즈'의 심화, 시와 현실, 임화의 대중화, 박인환의 대중화, 다문화가정의 주체성')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써 일제 강점기에 제기된 포즈론을 재조명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토대로 시의 플롯(형식)과 모방(내용)의 관계와 의의를 살폈다. 임화와 박인환의 시세계를 대중화의 관점에서 조명했고, 다문화가정을 담은 작품들의 주체성을 발견했다.

제 2부('몽양(夢陽)의 거울 ― 이기형의 <절정의 노래>론', 기억의 현재화 ― 이시영의 <긴 노래 짧은 시>론, '통일의 자성(自性) ― 박철의 <불을 지펴야겠다>론, '휴머니즘의 타당성 ― 정인화의 <서럽게도 그리운 세상 하나>론, '어머니의 사회성 ― 김용락의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론, '대추리의 만인보(萬人譜) ― 서수찬의 <시금치 학교>론')에서, 몽양 여운형의 역사적 삶과 역사 발전을 이끄는 민중들의 상황을 살폈다. 또한 분단 극복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미군 기지의 확장에 따라 가꾸어온 농토를 버리고 떠나야만 하는 대추리 농민들의 아픔을 담았다.

제3부('노동시의 전진', '노동시의 동기(動機) ― 정원도의 <귀뚜라미 생포작전>론,
'블루오션 공장 ― 임성용의 <하늘공장>론', '광산 노동시의 의의', '진폐 광부의 신문고',
'절실한 광부 ― 최승익의 <휘파람 소리>론)에서, 노동시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나름대로 전망을 제시했다. 또한 석탄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생업을 잃은 광부들과 진폐 재해자들의 아픔을 담았다. 아울러 대립적이고 투쟁적인 노동운동이 아니라 생산적인 블루오션 전략을 고민했다.

제4부('봉급생활자들의 권법', '일상의 시학 ― 김만수의 <산내통신>론','<전태일문학상>의 역사와 지향',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에서 '일상의 시학'을 담았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봉급생활자들의 일상이며 적응하는 모습들을 살폈다. 그리고 문학상 제도의 의의와 문제점을 정리했다."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 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 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을,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르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칠하고 하늘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지상에 놓인 집 한 채가 어찌 멀다고 이르랴
<하늘공장>-'임성용' (제 11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

"우리는 전태일문학상을 통해, 불의에 맞서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모든 사람의 뜨거운 삶과 투쟁의 기록들을 묶어 세우고자 한다. 공장에서, 농촌에서, 철거 현장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수많은 삶과 일의 현장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 민중들의 절절한 사연과 단결된 투쟁의 메아리들을 한데 모음으로써, 우리는 자주 민주 통일을 향한 큰길에 우리 모두가 함께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전태일문학상은 노동운동내지 사회운동의 일환이다. 기존의 사회사상이나 제도로는 노동자들의 노예적 삶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인식과 실천행동의 차원에서 제정된 것이다.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력에 맞서 인간답게 살고자 노력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기록들을 모아 연대의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 <만인보의 시학, '전태일 문학상의 역사와 지향>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전태일 기념사업회(공동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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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의 시학>의 덕목에 대하여

맹문재 시인이 평론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9년<현대시학> 잡지에 발표한 <적응을 위한 깊은 슬픔>. 그의 평론의 관심사의 주력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진실의 궤적을 구체화 시키는 연장선상의 평업(評嶪)이라 하겠다.

그의 시 세계는 밑바닥까지 내려온 삶을 형상화하는 의의에 그치지 않고 따뜻한 희망적인 메세지를 품고 있어 민중들에게 희망과 꿈을 준다. 맹문재의 최근 시집으로는 <책이 무거운 이유(창작과 비평)>가 있다. 맹문재 시인은 이외 전국 노동자문학회 기관지인 <삶글>을 비롯해 <부천작가>,<시작>,<삶과 문학> 등의 창간과 주간을 맡기도 했다.

맹문재의 문학평론가의 네 번째 평론집 <만인보의 시학>의 발간 의의는 민중문학 혹은 노동문학이 다소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향할 담론을 제시하고, 세밀한 작품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맹 문 재 문학평론가는 누구 ?
맹문재(孟文在), 그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현대시학』에 「적응을 위한 깊은 슬픔」을 발표하면서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편저로 『박인환 전집』『김명순 전집-시, 희곡』,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 등이 있다. 전국 노동자문학회 기관지인 『삶글』을 비롯해 『부천작가』『시작』『삶과 문학』 등의 창간과 주간을 맡았다. 현재 안양대 국문과 교수로 있다.
개울가에서 아픈 몸 데리고 있다가
무심히 보는 물속
살아온 울타리에 익숙한지
물고기들은 돌덩이에 부딪히는 불상사 한번 없이
제 길을 간다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눈치 보지 않고 입 벌려 배를 채우기도 하고
유유히 간다
길은 어디에도 없는데
쉬지 않고 길을 내고
낸 길은 또 미련을 두지 않고 지운다
즐기면서 길을 내고 낸 길을 버리는 물고기들에게
나는 배운다
약한 자의 발자국을 믿는다면서
슬픈 그림자를 자꾸 눕히지 않는가
물고기들이 무수히 지나갔지만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저 무한한 광장에
나는 들어선다
 - <물고기에게 배우다>


만인보의 시학

맹문재 지음, 푸른사상(2011)


태그:#맹문재, #만인보의 시학, #푸른 사상, #전태일, #한국 민중시 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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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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