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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안양대 교수)가 펴낸 문학비평서 <만인보의 시학>(푸른사상). 이 비평서에는 문학상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시인 문학평론가 맹문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안양대 교수)가 펴낸 문학비평서 <만인보의 시학>(푸른사상). 이 비평서에는 문학상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 맹문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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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정신의 본질에 비추어보면 문학상은 모순점이 있는 제도이다. 문학의 의의란 서열화된 세계의 질서를 타파하는 역할을 하는 데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학상은 서열을 조장하는 일이기에 문학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상 제도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제대로 시행할 필요가 있는데, 18회의 역사를 갖고 있는 전태일 문학상이 지향해야 할 점이다."- 본문 301쪽, '전태일문학상의 역사와 지향' 몇 토막

'시인의 계절'이라는 가을이 단풍물을 먹으며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늦가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맹문재는 자신의 책 <만인보의 시학>에서 시와 시인을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부터 21세기 새로운 10년을 살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여러 시 가운데 노동시가 흐르는 샛강과 문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문학상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다.

이번 비평서에서 가장 눈에 띄고, 재미있게 읽었던 글은 제4부에 실려 있는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다. 맹문재는 문단과 출판사, 기업, 지자체를 겨냥하는 이 글에서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세상의 일이 다 그렇지 않느냐는 식의 패배주의가 만연"하다며 '비평의 칼날'을 들이댄다.

그렇다고 문학상을 꼬집은 문인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글쓴이는 문학평론가 최강민과 하상일, 전정구 등을 내세운다. 최강민은 오랜 역사를 가진 '현대문학상'이 심사과정은 물론 "수구적 기득권의 유지 및 확장으로 귀착됐다"고 비꼬았고, 하상일은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을 "안티조선 운동에 방어막을 형성하려는 전략"이라고 봤다. 또한 전정구는 문학사상사가 주는 '이상문학상'에 대해 "구매력을 창출하는 상표에 불과한 이상문학상(이상한 문학상)"이라는 채찍을 들이댔다.

맹문재는 이 책에서 문학상이 투명하게 꾸려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못 박는다. 첫째, "운영주체나 심사위원이나 수상자만을 위한 축제"가 아니라 "문학상의 취지에 맞는 기준과 색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심사과정을 포함해 문학상의 운영이 투명해야 한다"는 것. 셋째, "문인들이 지식인다운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자신의 문학관에 부합하지 않는 문학상을 거부하는 것이 작가다운 행동"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실제로 맹문재가 말하는 "문학상을 거부하는 작가다운 행동"을 한 문인도 꽤 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과 최원식은 '팔봉비평문학상'을 받지 않겠다 했고, 작가 공선옥은 '동인문학상' 후보를 거절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도 22회 '새싹문학상' 수상자가 됐지만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한 게 뭐 있다고 이런 상을 만들어 어른들끼리 주고 받니껴"라며 고개를 돌렸다.     
  
시인은 시를 떠나지 못하고, 문학은 문학상을 떠나지 못한다

"<시학의 변주>를 낸 지 4년 만에 한 권의 평론집을 묶는다…이번 평론집에서는 민중, 다문화가정, 분단, 농어촌, 노동, 광산촌, 진폐 재해자, 봉급생활자, 일상, 문학상 제도 등 지극히 사회적인 주제들을 담았다. 평론집의 성격을 집약시키는 차원에서 발표한 글들의 제목을 다소 수정했다." - 본문 중 '책머리에' 몇 토막

<만인보의 시학>에는 문학상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총 4부에 실린 21편의 시 중에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임화, 박인환 시인의 시부터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된 삶을 한 땀 한 땀 시에 적시는 젊은 시인들의 시까지 골고루 비추고 있다.     

'시와 현실' '임화의 대중화' '박인환의 대중화' '다문화가정의 주체성' '몽양(夢陽)의 거울-이기형의 <절정의 노래>론' '휴머니즘의 타당성-정인화의 <서럽게도 그리운 세상 하나>론' '노동시의 전진' '진폐 광부의 신문고' '봉급생활자들의 권법' '전태일문학상의 역사와 지향'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 등이 그것.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그동안 쓰고 싶은 글이 많았고 실제로 많이 썼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평론집의 제목으로는 고은 선생님의 <만인보>를 빌려 썼다"며 "<만인보>의 서시에 나오는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특히 나를 이끌었다. 이 평론집에서 '만인'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귀띔했다.

그가 언급한 "사람은 사람 속에서만 사람이다"라는 말은 마치 "시는 시 속에서만 시다, 문학상은 문학상 속에서만 문학상이다"라고 들린다. 이는 곧 노동자는 노동 속에서만 노동자요, 노동자가 그 노동을 벗어나면, 그 앞에 놓인 것은 아스라한 절벽뿐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시인은 시를 떠나지 못하고, 문학은 문학상을 떠나지 못하고, 노동자는 노동현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문학상 받지 않은 사람이 진정한 수상자"

모두 4부에 실린 21편에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임화, 박인환 시인부터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된 삶을 한땀 한땀 시에 적시는 젊은 시인들까지 골고루 비추고 있다.
▲ 맹문재 <만인보의 시학> 모두 4부에 실린 21편에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임화, 박인환 시인부터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 고된 삶을 한땀 한땀 시에 적시는 젊은 시인들까지 골고루 비추고 있다.
ⓒ 푸른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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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행되고 있는 문학상 수는 200여 개에 이른다…문학상이 난립하는 이유로는 우선 문학잡지가 증가함에 따라 문학상도 비례해서 늘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새로운 문학잡지들은 자신들의 약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으로, 그리고 상징적 권력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로 문학상을 제정해오고 있는 것이다."- 본문 302~303쪽,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 몇 토막

2011년이 끝자락으로 치달으면서 갖가지 문학상 소식이 언론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지난 10월에 발표된 굵직굵직한 문학상만 해도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혼불문학상' '동인문학상' '미당문학상' '박경리문학상' '동리목월문학상' '요산문학상' '해양문학상' '철도문학상' '강릉문학상' 등….

이른바 문학상 홍수시대다. 이쯤 되면 이런 상들에 대한 물음표가 절로 튀어 나온다. 상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일을 아주 뛰어나게 잘한 사람을 위해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뛰어난 심사위원들이 엄격하게 가려 뽑아 그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주는 상금과 상패, 상장 등이 아니겠는가.

문학상은 특히 뛰어난 작품을 쓴 창작자들을 격려하고, 수상자가 아닌 다른 창작자에게도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게 동기 부여를 하기 때문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끼어들 새 없이 올발라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문학상은 왜 문인들에게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불리고 있을까. 무엇이 문제일까.

나는 우리나라 문학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세 가지라고 생각한다. 문학상을 꾸리고 있는 주최 측이 첫째요, 그 상을 받으려는 수많은 문인들이 둘째요, 그 문인들을 가려 뽑는 심사위원들이 셋째다.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열악한 문예지에서 꾸리고 있는 문학상은 아예 처음부터 상업성을 띠고 있다.

문학상 대부분이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시인이나 작가 가운데 '올해에는 누구? 내년에는 누구?'하듯 순번대로 미리 몇 명을 정해놓고 심사는 그저 형식으로 한다. 게다가 심사위원도 해마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수상작과 후보작을 책으로 묶어 서점에 내놓으면 어느 정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맹문재도 '문학상의 빛과 그림자'에서 "문학상이 공정하게 선정된다기보다 문단의 친밀관계나 작가의 위치나 출판사의 상업적 목적 등에 의해 다분히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못 박는다. 그는 이같은 까닭을 "문학상 주최 측이 자신들과 관계된 문인들을 밀어주거나 나눠 먹기식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라며 "문학상을 받는 문인이나 심사위원도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문인과 심사의원 모두 '상 타는 사람 따로, 주는 사람 따로' 있는 셈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문학상은 너무 많고 문제도 너무 많다. 맹문재가 콕 찌른 그대로 "문단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문인들은 각종 문학상이 발표되어도 박수를 치지 않는다". 나도 가까운 문인 중 누군가 ○○문학상을 받았다 해도 '흥'하고 콧방귀를 뀐다. 그렇다고 내가 문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문학상을 한 번도 받지 못한 몇몇 시인들이 "상 받지 않은 사람이 진정한 수상자"라는 말까지 내뱉겠는가.

맹문재가 <만인보의 시학>에서 말하는 '만인'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진 자들이 쳐놓은 '가난'이란 그물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노동자들이자, 아무리 작품이 뛰어나도 결코 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문인들이다. 그는 '가난'과 '불평등'이란 화두를 담고 있는 시인들의 시를 가로 혹은 세로로 읽으며(꼼꼼히 분석해) '만시(완전한 시)'로 가는 디딤돌을 놓는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에 시를, 1999년 <현대시학>에 평론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으며,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지식인 시의 대상애> <시학의 변주> 등 여러 권이 있다. 편저로는 <박인환 전집> <김명순 전집-시, 희곡> 등이 있다. 그는 전국노동자문학회가 펴내는 <삶글> <부천작가> <시작> <삶과 문학> 등을 창간하면서 편집주간을 맡았다. 지금은 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만인보의 시학> (맹문재 씀|푸른사상|2011.6.|2만원) 이 기사는 <문학i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만인보의 시학

맹문재 지음, 푸른사상(2011)


태그:#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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