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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여학생 장류진과 조국 교수의 공통점은? '남북해외가 함께하는 통일전문지'를 표방하는 월간 <민족21> 표지 인물로 실렸다는 점이다. 흰색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은 김일성대 장류진 학생은 <민족21> 창간호(2001년 4월호) 표지에, 조국 교수는 창간 10주년 기념호(2011년 4월호, 121호)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2011년 4월 7일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민족21> 발행 10주년 기념식. 2005년 6월부터 6년간 통일전문 월간지 <민족21> 발행인을 맡고 있는 명진 스님은 북한을  칭찬하는 잡지가 하나라도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 "북한 칭찬하는 잡지" 2011년 4월 7일 효창공원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민족21> 발행 10주년 기념식. 2005년 6월부터 6년간 통일전문 월간지 <민족21> 발행인을 맡고 있는 명진 스님은 북한을 칭찬하는 잡지가 하나라도 있어야 함을 역설했다.
ⓒ <민족21>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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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민족21> 10주년 기념식에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통일광장에서 온 단체 하객과 정기구독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해서 만원을 이뤘다. 하객들을 대표해서 전 이재정 통일부 장관, 오종렬 6·15남측위원회 고문 그리고 뒤를 이어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축사를 했다.

"창간 독자의 한 사람으로 기뻐합니다. 지금도 맨 뒷장에 나오는 기자들 후기까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명진 스님은 북도 칭찬할 수 있는 잡지가 필요함을 힘주어 말했다. 기념식 사회를 맡은 임수경씨로부터 '국민주지'라 소개 받은 명진 스님은 2005년부터 <민족21>의 발행인을 맡고 있다.

"봉은사 신도에게 <민족21>을 권했더니, 읽어본 뒤 북한을 찬양하는 잡지라고 해요. 그래 내가 그랬죠. 조중동은 비판 일색이니까, 하나라도 북에 대해 좋은 말 하는 잡지, 칭찬하고 소통하는 잡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지난 10년 동안 <민족21>에서 명진 스님의 말처럼 북한을 칭찬하는 일에 앞장서 온 안영민(43) 편집주간.  최근 그는 지난 10년간의 색다른 방북  취재 경험담을 모아 <행복한 통일이야기>(자리)라는 책으로 펴냈다. 4월 6일 창간 10주년 기념식장에서 '행복한 통일'을 상상하는 안영민 주간을 만나 보았다.
       
20여 차례 방북 취재한 '친북기자'

- 방북 취재를 몇 번이나 했나?
"2001년 <민족21> 창간 직후 금강산에서 열린 5·1절 남북노동자대회 취재차 처음 방북한 뒤 지금까지 모두 20여 차례 방북 취재했다."

- 명진 스님은 창간 10주년 축사에서 <민족21>은 북한을 칭찬해야 한다고 말했다. 친북잡지로 오해 받지 않나?
"칭찬하다 보면 싸울 일도 웃고 넘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서로 칭찬을 해왔다면 연평도 사건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족21>은 알려지지 않은 북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또 이 속에서 북의 긍정성을 주목하려 한다. 이런 자세를 친북이라 한다면 부정하지 않는다. 반북으로 전쟁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보다는 친북으로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현명한 태도다."

- <민족21>이 창간되던 10년 전에 비교해 잡지 만드는 현실이 어떤가?
"창간 10년이 되면 <민족21> 평양지국장을 지낼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암담하다. 평양 취재 길 자체가 막혀 있다. 그리고 기업의 광고도 뚝 끊겼고, 정기구독자도 노령화되는 추세다. 통일 열기 자체가 식고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어려움이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강해서 안타깝다."

-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 있다. 남쪽도 비정규직 문제나 아파트값, 물가 폭등으로 서민경제가 팍팍해지다 보니 가난한 북하고 통일하면 우리만 손해라는 생각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남쪽이 북을 도와야 한다는 너그러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마음도 사라지고 있다. "

통일이 안 되면 남한은 영원한 섬나라

<민족21>에서 일하면서 20여 차례 방북 취재를 한 안영민 주간은 10년간의 취재경험담을 모아 <행복한 통일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단상의 왼쪽이 안영민 주간이다.
▲ 평양 남포 통일자전거 대회 <민족21>에서 일하면서 20여 차례 방북 취재를 한 안영민 주간은 10년간의 취재경험담을 모아 <행복한 통일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단상의 왼쪽이 안영민 주간이다.
ⓒ <민족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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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에 대해 예전과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대학(경북대 87학번) 다니던 시절에는 통일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다. 지금 그런 정서에 공감할 대학생들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통일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고루한 생각, 낡은 관념이란 반응이 더 강하다. 감성적 접근을 넘어서서 통일이 남과 북의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상생의 길'이란 점을 실증적으로 밝혀야 한다."

- 남쪽 경제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통일이 안 되면 남쪽은 영원히 섬나라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남북의 철도가 연결되는 순간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시장으로 갖게 되고, 한반도는 세계 시장, 물류, 관광의 중심지가 된다. 지하자원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2011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북측 광물의 매장가치가 대략 7천조 원이라고 한다. 7천조면 북의 300년 치 국민총소득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북은 '동방의 엘도라도'라 불릴 만큼 세계적인 자원부국이다. 이에 비해 남쪽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빈국이다. 상부상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 그런데 남한 사람들은 북과 합하면 경제적으로 손해 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언론의 악영향이 크다. 이명박 정권 들면서 북에 대한 비방 기사가 대폭 늘었다. 예전에는 언론으로 취급조차 않던 자유아시아방송이나 자유북한방송, 그밖에 탈북자를 주요 정보원으로 하는 반북매체의 뉴스들이 이제는 방송사의 톱기사로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 정체불명, 출처불명의 소식통 기사를 모든 언론사들이 앞다투어 싣고 있다. 그 기사만 보면 북은 곧 붕괴할 체제다. 그런 체제하고 통일한다? 매력적인 일일 수 없다. 오히려 통일을 혼란스럽고 불편하고 귀찮은 일로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 경제문제 말고도 통일을 가로막는 문제들이 많다. 남쪽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식 사회주의와 선군정치, 주체사상과 세습체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부 남한의 진보세력은 이런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고, 진보정당의 분열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분명 북은 남쪽과 다르다. 체제도 다르고, 이념도 다르고, 삶의 가치와 방식이 다르고, 처한 환경이 다르다. 이처럼 우리와는 다른 북녘 사회를 이해하는 열쇳말은 무엇일까? 바로 집단주의다. 북의 체제를 유지하는 밑바탕에는 집단주의의 원칙이 있다. 하지만 남쪽의 우리가 '개인주의'라는 우리들만의 잣대를 들고 북을 바라봐서는 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런 한계부터 일단 인정해야 한다.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북쪽은 남쪽과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그런 마음으로 북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대집단체조 아리랑이 아동학대?

- 집단주의의 완결판이 <대집단체조 아리랑>이 아닌가 싶다. 아리랑을 직접 봤나?
"아라랑을 처음 공연했던 2002년에 한 번, 그리고 2008년에 또 한 차례 관람했다. 정말로 대단했다. 10만명의 공연을 조직하는 것 자체가 집단주의 사회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 아리랑을 두고 남쪽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혹사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이 문제 역시 집단주의라는 북쪽 사회의 가치관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김연아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까지 겪었을 혹독한 훈련과정에 대해 '어린 학생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며 비판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한 인간의 아름다운 도전과 성공에 감동한다. 나는 아리랑 속에서 집단의 아름다운 도전과 성공을 느꼈다."

- 우리겨레하나되기 운동본부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탤런트 권해효씨가 <행복한 통일이야기> 추천사에서 "지금 이 땅에서 통일은 철 지난 유행가처럼 초라하다"는 표현을 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권해효씨는 우리가 통일 그 자체를 목표로 생각했기에 너무 쉽게 지치고, 통일이 철지난 유행가가 됐다고 말했다. 통일은 행복한 세상을 향한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한다. 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완전한 통일은 적어도 50년 이상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이라도 6·15선언에서 남북 두 정상이 합의했듯이 연합과 연방제의 공통성을 찾아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통일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이처럼 과정으로서 통일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방북 취재 중에 만난 사람들 중에 창간 10주년 기념식에 초대하고 싶었던 사람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창간호 표지에 나왔던 장류진 학생, 그리고 2005년 11월에 만경대농장을 취재했을 때 만난 김영복 관리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50대 초반의 여성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대단한 열정과 능력을 갖춘 여장부였다. 그동안 기사를 보내줬던 북의 <통일신보> 기자들과 방북취재에 도움을 줬던 많은 북녘동포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안영민 편집주간의 아버지와 아들. 부친 안재구(전 경북대 수학과 교수) 선생은 남민전,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차례 무기형을 선고받은 통일 운동가다.
▲ 3대가 한 자리에 안영민 편집주간의 아버지와 아들. 부친 안재구(전 경북대 수학과 교수) 선생은 남민전,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차례 무기형을 선고받은 통일 운동가다.
ⓒ <민족21>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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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통일' 전도사가 되고 싶다는 안영민 편집주간은 남민전, 구국전위 사건으로 두 차례 무기형을 선고받은 통일운동가이자 수학자인 안재구 선생(전 경북대 수학과 교수)의 아들이기도 하다.

민족21 창간 10주년 기념식에는 안재구(78) 선생과 안영민 편집주간의 큰아들인 인산(11)도 함께 참석했다. 행사가 끝난 뒤 세 사람이 다정하게 선 채 사진을 찍었다. 험난한 역사를 헤쳐 왔고, 헤쳐 가야 할 삼대의 모습 속에서 묘하게도 행복한 통일의 기운이 물씬  풍겨났다.


태그:#민족21, #안영민, #행복한 통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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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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