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권에 복지국가 논쟁이 한창이다. 무상급식 파문의 후폭풍이자, 향후 총선과 대선을 향한 정책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민주당이 무상복지 시리즈를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세금폭탄론'으로 맞불을 놨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도 '한국형 복지' 행보를 시작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맞춤형 복지'를 주장하며 논쟁에 가세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정치권과 시민사회 진영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복지 이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들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말]
안상훈(42)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07년 4월 '지속가능한 한국형 복지국가와 정부의 역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논문에서 우리가 가야 할 복지국가의 5대 원칙으로 ▲ 노인세대뿐만 아니라 생애주기별로 균형적인 복지수혜(생애주기별 균형)  ▲ 빈곤층을 넘어 전 국민대상으로 수혜그룹 균형 확보(보편주의) ▲ 현금이전중심에서 사회서비스 중심으로 전환하고 양자 간 균형확보(사회서비스) ▲ 소극적인 소득보장에서 예방적이고 적극적인 활성화보장으로의 균형적 전환(적극적기제) ▲ 시장대체적인 국가역할에서 공사역할분담의 균형을 창출하고 통합관리적 국가역할 강화(통합관리형국가역할 강화)를 제시했다.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 망라하는 사회보장기본법 돼야"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그는 특히 사회서비스(양로·육아, 교육문제, 주거문제, 고용문제, 보건의료문제, 환경문제 등의 해결을 위한 공공서비스)확대를 강조한다. 실험보험이나 연금보험 같은 현금지급형 소득보장정책에만 집중할 경우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예방적인 사회서비스를 확대해 양쪽의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이런 인식아래 사회보험과 사회서비스를 망라하는 '사회보장기본법'의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3년 반 뒤인 지난해 12월 20일 안 교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개최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을 위한 공청회-한국형 복지국가 건설' 공청회에서 다시 이 논문을 집약해 발표했다. 박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함께 가야 하고 전국민에게 평생 단계마다 꼭 필요한 걸 (생애주기별로) '맞춤형'으로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청회 제목부터 발언 내용까지 안 교수 주장이 짙게 배어 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공청회 전 법안 내용 확정을 위한 조율 과정에서 몇 번 만났다"면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는 내가 강의실에서 10년 가까이 얘기한 것인데, 박 전 대표가 내 이야기를 전폭 수용했다면 전문가로서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안 교수는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은 아니다.)

"박근혜 복지에는 재원 마련 대책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가 원칙주의자로 유명한데 복지하자고 하면서 재원문제를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후 구체화 될 박근혜복지의 내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복지관련 학자들 사이에서는 안 교수가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복지부장관시절 복지부 주요정책과제평가위원을 하면서 유 원장의 '사회투자국가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안 교수는 "(제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다면 가문의 영광이겠네요"라고 웃으면서 "국가경영전략으로서의 복지국가 전략을 연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럽형복지국가 전문가로 꼽힌다.

다음은 문답전문.

"복지논쟁, 통일과 조세개혁 문제 반드시 짚어야 "

-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복지 이슈가 급부상하고 있다.
"사실 복지는 함께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다. 해방 이후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감당이 됐다. 하지만 산업화가 끝나고 지식경제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게 불가능해졌다.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그런 경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당시에는 경제 위기 때문에 힘드니까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결국 지금 와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시장이 분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 문제들이 고스란히 복지로 떠밀려 내려오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 대 민주당, 진보정당들 간 복지 논쟁이 일고 있는데.
"자본주의 하자 말자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복지도 마찬가지다. 복지는 당연히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지를 놓고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고민해야 한다. 어느 수준에서 세금을 내고 어떤 복지를 받을 것인지 국민들이 따져봐야 한다."

- 복지 논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는 뭐라고 보나
"지금 진행 중인 논쟁에는 통일문제가 빠져있다. 당장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 중 자본주의 시장에 적응할 사람이 거의 없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에서 아래쪽에 속할 수밖에 없다. 복지 수요는 흘러넘치고,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남한의 취약계층과 다른 대우를 해줄 수도 없다. 이 때문에 통일 이후 복지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두 번째는 조세체계 개혁 문제다. 증세냐 감세냐와 상관없이 먼저 조세 개혁을 해야 한다. 복지가 누려야할 권리라면 이는 의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복지라는 권리를 전 국민이 누리기 위해서는 취약 계층을 포함해서 국민들 각자가 기여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빼놓고 누릴 수 있는 것, 또는 정부가 주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문제다."

"스웨덴 사민당도 바꾸고 싶어하는 모델 따라가야 하는지 의문"

- 우리가 따라야할 복지국가 모델로 스웨덴 등 유럽 모델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스웨덴도 자신들의 복지국가 모델을 고치려는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게 북유럽 모델인데 내가 만나본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도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복지지출 비중을 조금 축소하는 대신 중복을 없애고 더 효율적인 지원을 가능하도록 하는 개혁이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스웨덴 사민당 스스로도 바꾸고 싶어 하는 모델을 무작정 따라가자고 주장하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

물론 우리의 경우에는 소득보장형 현금 이전 수준도 낮고 사회 서비스 수준도 낮으니 이 두 부분을 균형 있게 확대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스웨덴의 지금 고민을 봐서라도 고려해야 할 게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그것이다. 2040년경에는 노동자 1~2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 당장 GDP 대비 복지지출은 늘리는 게 좋다고 해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다보면 나중에 그 비중이 50%가 될지 60%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 흔히 복지병을 우려하는 보수쪽에서 유럽 국가들도 스스로 개혁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리도 복지 확대가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복지에 그런 구석이 있다.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근로 동기 침해 요소가 분명히 있다. 이는 경험적 연구로 밝혀졌다. 그런 증거가 없었다면 신자유주의 세력이 복지국가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강조된 것이 사회서비스 투자 확대였다. 예를 들어 한 달에 200만~300만 원을 현금으로 지원해주면 대부분 지금처럼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보육이나 재취업을 위한 직업 훈련, 보건의료 서비스들이 높은 질로 제공된다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비스 가격이 원가보다 싸더라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도 벌어야 한다. 우리도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투자에 우선순위를 둬야한다는 게 내 판단이다."

- 유럽과 달리 사회투자국가, 사회서비스 강화전략과 같은 말들은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복지국가의 태생부터 좀 살펴보도록 하자. 애초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본주의가 낫다는 게 대세였는데 너무 시장만 강조되다 보니 시장 실패 등 여러 문제가 생긴 거다. 이런 자본주의를 수정하기 위해 나온 게 복지다. 하지만 시장 실패를 해결하려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다 보니 정부의 실패가 다시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성장이 있어야 자원이 창출되고 사회 욕구들을 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 그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복지국가는 생산 지향적이지 않으면 그 자체로 굴러갈 수 없다. 복지에서 비생산적인 부분을 쳐내고 성장과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의 실패를 보정해 나가는 게 사회투자국가나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이다. 요컨대, 사회투자국가나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은 지속가능한 모든 복지전략의 기본이다."

"복지병? 스웨덴과 미국 실질 GDP 성장률 차이 없어"

-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때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하고 개개인은 어떤 혜택을 누릴 수 있나.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은 정부가 모든 걸 다 해줄 테니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라는 게 아니다. 필요한 현금은 스스로 벌고 필요한데 부족한 부분은 사회서비스로 해결해 주자는 게 기본 개념이다. 육아나 간병 등 돌봄, 교육, 주거, 직업교육 등 고용, 보건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는 여러 가지다. 국가는 이런 사회서비스를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급에 나서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 중에서도 생애주기에 따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제공해주는 게 필요하다. 이 목록에 어떤 사회서비스가 들어갈지는 우선순위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 스웨덴에서 사회서비스는 어떻게 굴러가나. 낙인 방지는 어떻게 하나?
"내가 스웨덴에서 유학할 때 딸아이를 조합형 사립 보육시설에 보냈다. 조합형 사립의 경우, 보육비가 소득에 따라 차등이 있다. 중요한 것은 교육비를 교육청에 직접 납부하기 때문에 보육시설에서는 선생님들조차도 누가 얼마를 내는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공립 보육시설도 무조건 공짜가 아니다. 공립이나 사립이나 보육료는 마찬가지로 하고 있어 '낙인효과'가 전혀 없다.

-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사회서비스를 우선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우선 성장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복지병이라는 게 모든 나라에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은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15% 정도고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30%에 육박한다. 그 형태를 보면 미국은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 제공이 낮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고 프랑스와 같은 대륙유럽 국가들은 사회보험 등 현금 지원이 많은 편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가 높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복지병이 있다면 복지 지출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무조건 경제 성적이 좋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의 경우 실질GDP 성장률을 보면 미국과 스웨덴 간에 차이가 별로 없다.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고 이를 이용하려면 현금이 필요하다보니 근로의욕이 유지되는 것이다. 또 사회서비스는 사람이 전달할 수밖에 없어 사회서비스를 늘리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나게 된다. 돌봄서비스가 확대되면, 교육받은 여성들이 취업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총생산성이 올라간다. 사회서비스 확대가 성장친화적인 이유다. 반면 복지에서 연금이나 실업 급여 등 현금 지원 비중이 큰 대륙유럽 국가들은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양극화 놔두고 복지로 모두 해결? 부담 너무 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사회투자국가 전략에서는 선제적 예방적 조치로 노동시장 활성화 전략이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런데 이게 사실상 복지 축소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라는 비판도 있다.
"사회투자국가론이 주로 공공부문의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화, 민영화하는 전략과 맞물리면서 그런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은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는 공공 부문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사회서비스 투자가 초기인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맞춤 서비스를 공공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복지를 얘기하면서 근로의 가치나 노동시장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복지라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그대로 두고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이 먼저다. 근로를 강조한다고 해서 시장주의나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과 복지는 당연히 같이 고민할 문제다. 덴마크의 '골든트라이앵글'의 경우처럼, 즉 노동시장 유연화-복지-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제대로 된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다."

- 참여정부도 사회투자국가를 지향하는 '비전2030'을 내놓기도 했지만 당시 민주노동당 등 진보정당들로부터 '신자유주의 아류'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좌파 세력의 정치적 힘이 크고 집권 경험이 많을수록 분배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약할 때 선명성 경쟁이 치열해 지기 때문에 성장은 이야기하지 않고 분배만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 스웨덴만 해도 1920년대 사민당이 의회개혁을 통해 세상을 바꾼다는 노선으로 나가면서 복지국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표를 얻기 위해서는 성장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북유럽에서는 사회투자와 생산적 복지를 강조해 온 것이다.

영국만 해도 복지국가로 따지면 후진국에 속하는데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도 결국 아주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스웨덴 등 북유럽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영국 노동당도 분배를 강조하는 옛모델로 집권에 거듭 실패하다 성장을 강조하는 쪽으로 탈색했다. 우리도 집권을 꿈꾸는 책임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이 부분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현금 지원 형식의 복지 확대는 부담이 후대로 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복지에 있어서 생산적 투자라는 개념은 진보 쪽에서도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진보도 '생산적 투자' 개념 깊이 고민해야"

- 현재 우리사회는 현금 이전형 복지도 취약한 편이고 사회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두 가지를 모두 확대해나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물론 사회복지지출을 늘려가야 한다.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는데 OECD 평균이 21% 정도 된다. 반도 못 따라가고 있다. 복지를 늘린다면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 모두 늘려가야 한다.

하지만 균형점을 찾는 것은 도식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취약계층에 대해서만 생계비 지원 등에 더하여 약간의 사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는 중산층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제외하고는 연금 등의 현금 지원에 치중돼 있다. 향후 연금이 본격적으로 풀릴 미래 시점을 계산해 보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현금지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게 한국 복지국가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고, 앞으로 복지확대를 하더라도 사회서비스 투자를 우선 늘리자는 것이다."

- 현재 정치권에서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선별주의냐 보편주의냐의 논쟁은 너무나 구시대적이다. 모든 복지국가는 궁극적으로 보편주의를 지향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선순위의 문제는 남는다. 어떤 나라도 일거에 모든 복지를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는 없다. 예산도 무한히 늘릴 수 없고 잘못하면 복지 총량이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욕구, 또 누구나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사회 전체적으로 제공하는 게 효율적일 것이다.

이것으로 부족한 부분은 계층별 혹은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게 효율적이다. 사회서비스도 사회통합을 위해 보편주의를 지향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다만, 처음에는 밑에서부터 제대로 챙겨주고 높은 질을 유지하면서 사회의 여력이 되는대로 하나씩 위로 확대해가는 게 좋다고 본다."

- 보편적 복지를 비판하는 쪽에서 흔히 드는 예가 이건희 삼성 회장 손자다. 부유층까지 무상급식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인데.
"우리 복지 논쟁 수준이 딱 그 수준이다. 사실상 허위 논쟁이다. 공짜 급식은 없다. 모두 세금으로 하는 거다. 겉으로 보면 이건희 회장 손자도 공짜로 급식을 받는 것 같지만 이건희 회장의 경우 세금을 많이 내지 않나. 그 손자에게 제공되는 급식은 사실상 (세금을 적게 내는 가정의 아이보다)훨씬 비싼 급식이다. 무상이라고 하더라도 고소득층이 더 많이 분담하는 셈이다.

다만 보편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더라도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질이 낮아질 수 있는 문제는 고려해야 한다. 국민들이 동의하고 복지 재원을 더 걷을 수 있다면 최상이지만 지금처럼 재원이 한정돼 있으면 무상급식 예산 확보에 있어 다른 예산과 '땅따먹기'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낙인문제는 다른 방법으로도 풀 수 있는 방법이 많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 복지 확대에 따른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보나
"고령화 경향 한가지만 고려해도 이대로는 힘들다. 세출구조 개혁 등으로 단기적으로 5년 정도는 급한 불을 끌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힘들다. 다만 재원마련 방식이 증세냐 보험료 혹은 이용료 방식이냐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국민들의 동의도 중요한 요소다."

"부유세 사회통합에 악영향, 복지재원 모든 국민이 형편따라 부담해야"

- 복지 재원 마련 방식은 어떻게 푸는 게 좋다고 보나.
"재원 마련에 있어서도 보편주의가 적용돼야 한다. 복지 확대에 추가 재원 부담이 필요하다면 모든 국민이 형편에 맞게 부담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10%의 취약 계층은 세금을 전혀 내지 않으면서 복지 혜택만 받고 나머지 90%는 세금을 내면서도 혜택은 없는 공공부조 형태의 미국 방식은 계층 간 갈등과 조세저항이 생길 수밖에 없다. 조세 체계가 공정하다는 합의가 있어야 복지는 지속가능하다. 거론되고 있는 부유세 방식은 중산층 이하에 표를 얻는 데는 좋겠지만 사회통합에는 악영항을 줄 수 있다.

특히 조세 부담에 있어서 보편주의는 조세 저항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국민들이 일정 정도 부담을 하고 있다. 능력에 따라 기여하고 형편에 따라 받는 것이다. 복지는 절대 심플한(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받는 것, 권리만 가지고 국민들을 현혹시켜서는 안된다. 수준 높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수준에 맞춰 국민 부담도 늘어나야 한다. 국민들이 그런 용의가 없다면 제대로 된 복지는 할 수 없다."

- 민주당의 무상시리즈는 어떻게 평가하나.
"완성된 안이 아니라 학자로서 함부로 대답할 성격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겠다. 한 가지 우려는 재원 마련 대책을 정교하게 짜지 않고 너무 굵직한 정책들을 쏟아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이다. 국민들의 기대만 부풀려 놓고 나중에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냉소주의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복지는 국민들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결국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가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대표가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개최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면개정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 언론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정책 브레인이라고 하는데 동의하나.
"언론이 그렇게 쓰면 달리 할 말이 없다. 박 전 대표의 사회보장법 개정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것은 전문가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사회정책 전반에서 청와대, 정부나 국회에 이런저런 자문을 한 건 10년도 더 된 일이다. 박 전 대표는 공청회 전 법안 내용 확정을 위한 조율 과정에서 몇 번 만났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도 내가 강의실에서 10년 가까이 얘기한 것인데, 박 전 대표가 내 이야기를 전폭 수용했다면 전문가로서 고마운 일이다."

- 박 전 대표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서도 재원마련 대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는데.
"재원마련은 3+1정책처럼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함께 하는 것이다. 지금은 앞으로 추가적인 프로그램들을 위한 대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소요 예산을 따진다고 들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원칙주의자로 유명한데 복지하자고 하면서 재원문제를 모르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 복지 논쟁을 벌이고 있는 정치권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깔딱고개'를 못 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첨예한 사회 갈등이다. 인류역사를 보면 사회 갈등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이 복지였다. 복지가 아니더라도 사회갈등 비용은 어떻게든 치러야 하는데, 복지를 안 할 이유가 없다. 과거처럼 고도성장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좋은 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태그:#복지국가 논쟁, #사회서비스강화전략, #안상훈, #박근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