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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겉그림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겉그림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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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 그는 희대의 '이야기꾼'으로 통한다. 하지만 이 별명에는 단서가 있다. 바로 '공포 작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스티븐 킹의 소설이 공포의 영역을 넘어선 곳에서도 종횡무진 했다는 것을?

출판사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스티븐 킹의 중편집 <사계>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사계>는 '봄, 여름'과 '가을, 겨울', 두 권으로 구성됐는데 '봄, 여름'편의 제목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될 것 같다. 제목이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지금도 회자되는 명작 <쇼생크 탈출>의 원작소설인 것이다.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 앤디는 아내와 정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다. 바깥에서 은행가였던 앤디는 감옥에 들어간 순간 여러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 인권이 없는 그곳에서 앤디가 인간답게 살 가능성은 전무해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잘 버틴다. 비록 수치스러운 폭행을 겪기는 했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강인한 정신으로 그것을 이겨낸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앤디는 돌을 깎으며 얌전히 지냈다. 하지만 은행가로 활동하던 당시의 지식으로 간수들의 세금 처리 등을 도와주면서 그는 감옥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감옥 최고 책임자들의 돈 세탁을 해주면서 편한 독방까지 차지하기에 이른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감옥 생활은 안정돼보였다. 그의 독방에는 예쁜 돌 조각들이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누구도 그를 위협하지 못했고,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앤디는 새로 입소한 어느 젊은이를 통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얻는다. 진범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낸 것이다. 그는 교도소 소장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다. 하지만 소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할 뿐만 아니라 그 기회까지 박탈한다. 앤디가 출소할 경우 자신의 범죄가 알려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앤디는 무엇을 하는가? 유유히 감옥을 탈옥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감옥의 생활을 다룬 소설이라면 일반적으로 '탈옥'에 포커스를 맞추기 마련이다. 이야기꾼으로 통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이라면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에서 부각되는 것은 그보다는 감옥에서의 인권에 관한 것이다. 소설은 교도소의 비리는 물론 '갱생'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제도를 낱낱이 고발하며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 스티븐 킹 소설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함께 수록된 소설 '우등생'의 면모도 놀랍다. 소설의 주인공은 중산층 백인 가정의 소년이다. 전쟁과 나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소년은 우연히 유태인 학살 전범을 찾아내게 된다. 모두가 찾으려고 혈안이 된 전범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침묵한다. 대신 전범을 찾아가 유태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한다. 일종의 협박이었다.

전범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벌였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소년의 가슴 속에 있던 폭력성이 조금씩 깨워지는 것이다. 악몽을 꾸기 시작한 소년은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전범과 함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태인 학살 전범과 소년의 기묘한 우정을 다룬 '우등생'은 소재도 신선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이 꽤 묵직한 것이 눈에 띈다. 공포 소설의 아닌 장르에서도 스티븐 킹의 소설이 얼마나 빛을 볼 수 있는지를 단번에 깨닫게 해주는 셈이다. 동시에 비판 의식이 생생하게 드러난 건 어떤가. 소년이 전범을 비판할 때마다 전범은 미국 또한 다르지 않다며 그 증거를 말하는데 그것들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을, 유태인 학살 전범에 의해 비판을 받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숨겨진 매력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도 그런 계기를 만들어준다. 공포 작가가 아닌, 이야기꾼 스티븐 킹의 숨겨진 면모를 만나게 해주는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이야기의 다채로운 맛이 소설 읽는 즐거움을 꽤 쏠쏠하게 해주고 있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황금가지(2010)


태그:#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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