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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은 스티븐 킹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Rita Hayworth and the Shawshank Redemption)이다. 이 소설은 스티븐 킹의 초기 단편집인 <사계>(Different Seasons)에서 '봄'에 해당하는 부분이고, 이 단편집의 '가을'에 해당하는 부분이 리버 피닉스가 주연한 영화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의 원작인 <더 바디>(The Body)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지금도 대형서점에 가면 그의 작품들을 추리소설 또는 공포소설로 분류해 놓았지만 결코 그의 소설은 추리소설도 아니고 공포소설도 아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공포'의 요소에 충실한 작품은 거의 없으며 읽으면서 공포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도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을 대부분 읽어본 나의 경우에 읽으면서 공포를 느꼈던 것은 <애완동물 공동묘지>(Pet Cemetery)뿐이다. 밤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서워서 움직이지도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스티븐 킹 소설의 한 가지 특징은 어린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주어진 어떤 일들을 아이들의 눈으로 보고 상대하지만 성인이 되면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요소 중의 하나는 어린 시절의 어두운 기억과 그런 기억에서 도망치려하는 성인들의 모습이다.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 친구들의 따돌림, 주변의 무관심, 부모의 지나친 통제나 과잉보호 등이 앙금처럼 내면에 남은 채 성인이 된 후에도 깨어나서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공포가 있다면 성인으로 살아가면서 문득문득 되살아나는 어린시절의 끔찍한 기억과 마주했을 때의 '공포'이고, 추리가 있다면 그런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에서의 '추리'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잘 드러난 작품들로는 <그것>(It), <멈춰버린 시간>(One Past Midnight : The Langoliers), <더 바디>(The Body),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Hearts In Atlantis)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 계속 반복되는 소재는 언뜻 평온하고 일상적으로 보이는 시공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 또는 불안의 요소이다. 그 요소는 저 너머에서부터 중심으로 서서히 다가온 후 한꺼번에 모든 것을 날려버리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그 요소의 대부분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고 보아왔던 많은 것들의 다른 일면일 뿐이다. '일상 속의 공포'라는 표현이 진부하기는 하지만 스티븐킹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그것만큼 현대인의 생활을 잘 나타낸 표현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븐 킹의 작품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심리의 묘사가 치밀하다는 점이다. 그가 만들어낸 살아 움직이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내면과 심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그것>(It), <쿠조>(Cujo), <미저리>(Misery), <돌로레스 클레이븐>(Dolores Claiborne), <자루속의 뼈>(Bag Of Bones) 등을 들 수 있다.

스티븐킹의 작품들은 거의 발표와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서 베스트셀러의 공식을 따르는 작품이 거의 없다는 것도 또한 의외이다. 문제가 발생하고 갈등이 심화되다가 대단원에서는 모든 것이 안전하게 제자리를 찾는 것이 베스트셀러의 공식인 반면에, 그의 작품들 상당수는 현실과의 타협 없이 '갈 데까지 가버리는' 그런 극단을 택한다.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읽을 때는 무지하게 재미있지만 다 읽고 나면 무지하게 찜찜한 것들이 많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난 후에 남는 상쾌한 자극이 없고 대신에 이상한 피로와 풀리지 않는 긴장이 남는 것이다.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정말 후련한 엔딩은 영화 <쇼생크 탈출>의 원작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탈출>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찜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안전하고 통쾌한 사필귀정의 엔딩으로 가는 과정에서 치러야하는 대가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스티븐 킹의 작품들은 괴기의 취향이 가미된 성장소설 또는 심리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의 소설들을 장식하고 있는 모험, 낭만, 어린 시절의 꿈 그리고 성장의 과정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만든다.

나는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스티븐 킹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그의 소설들을 읽는지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한적한 공원 벤치에서 또는 이불 속에서 뒤척거리며 읽기에도 제격이다.

대중음악은 현실을 잊게 하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대중소설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리고 스티븐 킹의 소설들은 표면적으로 그런 소설류에서 전위에 서 있는 작품들로 보일 수도 있다. 많이 팔리는 대중소설로 흔히 분류하지만 난 아직도 스티븐 킹의 작품들이 왜 다른 대중소설들과 나란히 취급받아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나는 앤디가 그곳에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내 친구를 만나서 악수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태평양이 내가 꿈에서 본 것처럼 그렇게 푸른빛이기를 바란다.
나는 바란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탈출>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의 사계 봄.여름

스티븐 킹 지음, 이경덕 옮김, 황금가지(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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