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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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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한쪽에 물이 항상 짜작짜작 고이는 습지가 있어 웅덩이를 파고 수련을 심은 다음 그 옆으로는 운치를 살린다고 해당화를 심었더니 뱀들이 즐겨 찾아온다. 웅덩이에 먹을 것이 많아서 그러려니 했는데 그것만도 아니다. 해당화 가지마다 자잔하게 박박 밀어 깎은 지 일주일쯤 된 머리카락처럼 알맞게 솟아난 가시들이 뱀의 고독을 해소해준다는 것을 이즈음에야 알았다.

하긴 저도 몸이 노상 근질근질할 것이다. 수풀 속으로 흙 속으로 험하디험한 길이 아닌 곳만을 굳이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 뱀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보면 피부가 두텁고 매끄럽다 해서 몸이 마냥 깔끔하지는 못할 것이다.

해당화 몸이 간지러울 때 뱀은 이 무성한 이파리와 가지들 속으로 들어가서 고충을 해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 해당화 몸이 간지러울 때 뱀은 이 무성한 이파리와 가지들 속으로 들어가서 고충을 해결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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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려운 데를 누구 있어 긁어줄까. 원숭이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도 아니고 새처럼 짝을 지어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짝이래봐야 일 년에 한 번 발정기에나 겨우 며칠 만났다가 헤어지면 그만이고 무리래봐야 역시 일 년에 한 번 동면에 들어서나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그때는 잠자는 사업이 우선이라 동지애고 고독이고 돌아볼 틈이 없다.

장마철에 며칠씩 비가 내리다가 잠시 햇빛이 비치면 돌무더기나 둔덕 같은 데서 일광욕에 나선 녀석들이 두세 마리씩 한꺼번에 목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일 뿐 뱀의 습성은 아니다. 내가 좋은 것이면 남에게도 좋은 것이기 마련이라, 지나친 습기도 지나친 햇빛도 다 몸에 좋지 않은 뱀들이 너무 젖어버린 몸을 말리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다보니 그렇게 무리를 지어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날씨가 코스모스를 활짝 피게 하면서 뱀의 활동은 부쩍 왕성해졌다는 느낌이다. 개구리 소리가 심상찮게 자주 들린다. 여름철의 자글자글 끓어대는 그런 짝을 찾는 소리가 아니다. 간헐적으로 꾸에-꾸웨, 하고 도무지 표현할 방법을 찾을 수가 없는 이상하게도 탁한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흡사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에서 부르는 어느 슬픈 샹송가수의 그것처럼 사뭇 고혹적이고 섹시하기조차 하다.

개구리 소리가 이렇게도 고혹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처음 안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늘 처음 알게 된 것처럼 새삼스럽고 자꾸 귀가 기울여지면서 긴장이 된다. 이유는 아마도 그 소리의 근원이 죽음이면서 또한 삶이기 때문이리라.

뱀은 개구리를 좋아한다. 아니 좋아한다기보다 어쩌면 가장 많이 볼 수 있고 가장 쉽게 포획할 수 있기 때문에 개구리를 먹는 뱀이 자주 발견되는 것일 게다. 특히나 국산 토종 개구리 중에서도 금개구리나 참개구리는 어린아이라도 약간의 조심성만 있으면 손으로 잡을 수가 있다. 산(山)개구리는 가만히 있다가도 손을 뻗으면 후딱 달아나 버리고, 소리도 엄청 밉상인 황소개구리는 멀리서 인기척만 들려도 찍, 하고 자발스런 소리를 내며 뛰어 버리지만, 금개구리나 참개구리는 마치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이쪽에서 소란스럽게 덤비지만 않는다면 무덤하게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소리 없이 은밀하게 마치 애무라도 하듯이 다가서는 것으로 뱀만한 게 또 있을까. 녀석은 필시 거의 별 힘도 들이지 않고 개구리를 입에 넣었을 것이다. 턱을 쩍 벌리고, 파리를 낚아채는 두꺼비처럼 순식간에 낚아서 일단 침을 바르고, 그리고는 사르르 기어서 해당화 사이로 들어간다. 가지와 가지들 사이에 제 몸을 마치 빨랫줄처럼 걸어놓고 가려운 데가 있으면 자동으로 긁어가면서 여유도 만만하게 사로잡은 개구리의 숨통을 조여 간다.

그때 그 소리가 난다. 꾸에-꾸웨, 하고 느리게 천천히 간헐적으로 들리는 그 고혹적인 소리는 아마도 개구리에게는 뼈마디가 부러지고 으스러지고 심장이 터지면서 어쩌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일 게다. 개구리에게는 처절한 그 비명을 고혹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한편 생각하면 매우 잔인한 취미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금개구리 작년까지도 보이던 금개구리는 이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많았을 때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 금개구리 작년까지도 보이던 금개구리는 이제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많았을 때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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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사라지면서 다른 한 생명의 삶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이러한 순환에 얽힌 내력을 잘 몰랐던 시절에 나는 개구리를 먹는 뱀만 보면 돌로 쳐서 죽이곤 했었다. 그 시절의 내가 옳았던 것일까? 아니면 죽어가는 소리에서 미학적인 쾌감을 느끼는 지금의 내가 옳은 것인가. 이런 질문은 일단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덫이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슬쩍 피해서 다시 생명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내가 마당에 웅덩이를 파던 그 무렵에는 금개구리가 곧잘 눈에 띄고는 했었다.

배때기가 그야말로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이 노오란, 등은 푸르면서도 금빛이 나고, 눈 가장자리에 다시 금빛 테두리가 둘러진, 가만히 다가가서 손으로 잡아도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졌는지 관심조차 없다는 듯 눈알이나 뱅뱅 돌리던, 그런 금개구리를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자주 목격되던 그 시절에 뱀은 거의 만나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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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면 산마다 촘촘한 그물을 둘러쳐서 동면에 들어가는 뱀을 그 새끼까지 잡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가 어디에 어떤 그물을 설치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해 미처 쓸어가지 못한 뱀들이 이듬해 봄이면 죽은 채로 무더기무더기 발견되기도 했다. 인간의 그런 욕망이 생태계를 파괴하는 몹쓸 야만이라는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저인망식으로 쓸어가는 뱀 사냥을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법이 시행되면서 산에 설치된 그물은 모두 회수되거나 찢겨진 채로 방치되었다가 흙 속으로 들어갔다.

뱀은 이제 안정적으로 후손을 생산하고 양육할 수 있게 되었지만, 개구리들에게는 암흑의 시절이 도래한 셈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드물게나마 눈에 띄던 금개구리가 금년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면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두꺼비도 사라져 버렸고, 보이는 게 참개구리와 황소개구리 뿐이다. 참개구리는 금개구리에 비해 몸집이 더 크고, 조금 더 민첩한 까닭에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황소개구리는 뱀을 아예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황소개구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뱀을 인간은 두려워한다. 작년 가을에 우리 앞집 아주머니는 문을 열어놓고 텃밭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기절을 해 버렸다. 싱크대 밑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앉아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며칠 전 저녁에 마당을 나섰다가 토방으로 막 기어오르는 뱀을 밟고 나가떨어지고 말았는데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후둑후둑 뛴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사람이 줄어든 시골 마을에 뱀들이 주역으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기도 하다. 공존, 공생,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기는 하지만, 개구리나 도마뱀 혹은 들꽃이나 풍뎅이들과는 달라서 뱀이라는 녀석은 그 살아가는 방식부터가 그리 썩 유쾌하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다.

뱀이 인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지는 않는다 해도,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딘가에, 이를테면 이불 속이나 천장 위에 녀석이 지금 들어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으로 문득문득 긴장하는 것은 근거 없는 피해의식만은 아니다. 부쩍 증가한 뱀의 개체수를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부딪치기까지 하는 데서 오는 공포감이다.

과일나무를 공격하는 까치와 인간의 관계설정에 관한 논의가 이미 있었듯이, 뱀도 이제 그 개체수 조정에 관한 논의를 해볼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뱀#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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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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