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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장(波長)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조수경을 비롯한 경찰청 VICAT, 즉 강력범죄분석팀은 열성적이고 헌신적으로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을 경주했다. 조수경의 1차 프로파일링에 근거하여 경찰은 범죄 집단 위주의 저인망식 수사를 진행했다. 폭력 결사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조폭들은 모두가 수사 대상이 되었다. 

겨울이 깊어가고 있었다. 12월부터 찾아든 혹한과 폭설은 이듬해의 불길한 사건들을 예고한 것이었을까? 새해를 맞이하여 신문과 방송들은 3월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 관련 특집을 내보냈다. 바로 직후, 한국은 새해 벽두부터 극심한 사회 혼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잠복해 있던 범인이 이번에는 경찰이 아닌 언론들에 직접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한국의 방송국들과 영향력 있는 종이 신문과 인터넷 신문에 일제히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발송했다. 인천공항 부근 용유도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들은 영어 대문자로 작성된 것이었다.

-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9개월 동안 사건을 숨기고 있었다. 우리는 작년 5월 표적을 징벌하려다가 그가 스스로 죽어 중단한 바 있다. 늙은 그의 죄목은 '극우주의자'였다. 또한 우리는 다른 죄인들을 한꺼번에 더 처단하여 금년 6월 15일 강물에 띄우겠다고 예고한 바 있는데, 과연 대한민국 국민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 날의 톱뉴스는 당연히 범인의 편지였다.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종이 신문의 호외가 발행되었다. 이제까지 막연히 '사회 상류층 연쇄살인' 또는 '사회 혼란을 노린 연쇄살인'이라고 지칭되었던 사건의 명칭이 갑자기 달라졌다. 새로 붙여진 사건의 명칭은 '불온세력 연쇄살인' 또는 '좌익연쇄살인'이었다.

심지어 보수신문들은 대북 화해를 추구한 햇볕정책 때문에 빚어진 사건이라고 해서 '햇볕 연쇄살인'으로 명명했다. 해외 언론들도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다시 한국의 연쇄살인사건은 세계적인 뉴스로 부상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조수경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간단한 편지를 받는다.

국내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해외에서 보면 마치 조국에 큰일이라도 금세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도 사업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국내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정말 보통 난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답니다.

하지만 조 수사관, 최근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불행한 사건들은 정치적 테러라는 가정에서 출발해야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관점입니다. 분명히 범인은 남북 관계에 모종의 변화를 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마지막 편지가 그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6월 15일이라는 날짜에도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음이 자명합니다.

한국의 언론들은 두 가지를 문제로 부각시켰다. 첫째는 범인이 이철식을 징벌하려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경찰과 정부가 숨긴 점이었다. 이른바 한국의 메이저급 보수신문들은 이철식이 우익이기 때문에 정부가 그 사실을 은폐하려 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그들은 사설과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만약 이철식이 좌파 인사였다면 그것을 숨겼겠느냐?"라고 물었다. 숨겼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 우익을 징벌하려 했던 범인이라면 좌익임이 분명한데 대관절 이 정부는 무슨 이유로 좌익을 싸고도는 것이냐?

보수신문들은 이렇게 날을 세워 통박했다.

국민 여론도 급속히 좌익을 경계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여론은 거침없이 확대, 재생산되어 친북 세력은 물론 진보 세력이나 남북 화해 세력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이 쏠리게 되었다. 그들은 난감해 하며 침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일부 신문들은 범인의 배후는 명백히 북한이라고 못 박다시피 해서 보도했다. 그러자 이의를 제기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해병전우회를 비롯한 구국원로회, 민족중흥회, 한민족공동체본부, 국가정체성수호연합회, 납북자대책시민운동협의회 등, 여러 단체들이 나서 북한규탄집회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청소년들로 구성된 어떤 극우단체는 다시 일어난 염카페, 염사모 등과 협력하여 촛불집회를 열었다.

여기에는 이색적인 해프닝도 있었다. 논문 조작으로 몰락한 한 학자를 지지하는 황카페와 황사모가 이 집회에 합류한 것이다. 며칠 후에는 한국 스포츠 응원 전문 단체인 '검은천사'가 북한 규탄대회를 열었다. 대회장에서는 그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북괴'라는 호칭도 다시 나타났다.

비교적 관망하는 모습을 보이던 정치권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보수정당에서는 사건을 총선 전략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어떤 인사는, "대북 원조가 이렇게 참담한 배은의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하며 정말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북한이 대남적화의 방법을 사회 범죄로 바꾼 것이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었다. 그것은 남한의 원조도 계속 받고 미국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면서 남한의 사회 혼란을 획책하는 교활한 범죄 공작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범행을 예고한 6월 15일에 북한은 대대적인 남침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왔다. 그들은, "남한은 안보 태세를 강화해야 하는 한편 남북 대화와 대북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자들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찾고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북한이라는 증거가 없다.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한 한 국회의원은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는 예전에 성추행을 한 국회의원 이상으로 여론의 십자포를 맞아야 했다. 그는 다음 날 지구당 사무실을 폐쇄했다.

급기야 북한의 중앙통신은 성명을 냈다.

- 남조선의 범죄는 우리와 무관하다.

그것이 오히려 일부 국민의 분노를 사게 되었다. 북한의 교활한 위장이라는 것이었다.

마침내 미 국무성 대변인도 논평을 내기에 이르렀다.

- 우리는 한국의 사태를 규정할 만한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으로서는 냉정하게 주시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면서도 미 국무성은 덧붙여 말했다.

- 사건에 북한이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나온다면 북한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누차 국민들의 진정을 호소하면서 신속히 범인을 체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인의 편지를 은닉한 정부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라는 신문들의 반격이 곧장 이어졌다.

두 번째로는 범인이 예고한 6월 15일의 범죄를 어떻게 막느냐는 것이었다. 만약 범인의 시나리오대로 범행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한 범죄자에 의해 나라가 휘둘리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될 경우 국제적인 망신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기(國基)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거라고 우려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주 2~3회씩 연말까지 연재될 에정입니다.



#햇볕연쇄살인#대남공작#햇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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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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