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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진은 이중 자물쇠가 채워진 밀실에서 주요 단원의 가입 의식을 거행하곤 했다. 신입 단원은 염동진과 맞절한 후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손을 들고 선서했다.

- 나는 조국의 자주적인 정부 수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한다.
- 나는 백의사의 명령에 목숨을 걸고 따른다.
- 나는 조국과 백의사에 대한 배신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선서 결의가 끝나면 손가락을 베어 서약서에 피 도장을 찍었다. 염동진은 서약서를 받아 밀봉했다. 그는 배신이나 직무 유기 시 '동지 재판'의 규정을 단원에게 주지시켰다.

염동진은 해방정국에서 여러 테러를 주도했다. 그는 각 도마다 10명의 특공대원을 선발하여 그 지역 사람처럼 보이도록 사투리까지 훈련시켰다.

백의사는 신탁통치를 놓고 벌인 좌우 대립의 소용돌이에서 임시정부의 정치 공작대와 연계하여 대북 테러 공작을 전개했다. 1946년 평양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김일성에게 수류탄을 투척한 것은 백의사와 결탁한 북의 테러리스트라는 설이 있었다. 당시 김일성은 무사했지만 그를 경호하던 소련 장교 노비첸코는 오른 팔을 잃었다.

염동진은 좌익이었던 김두한을 설득하여 반공 폭력배로 전향하게 만들었다. 그의 테러 대상은 좌익이거나 노선이 모호한 우익이었다. 해방 정국 남한에서 벌어진 무수한 테러 살인의 다수는 염동진이 주도한 것이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그는 6·25 즈음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조수경은 20세기 들어 한국에서 벌어진 테러 살인에 대해 더 알아보았다. 그녀는 많은 책을 구입했고 방대한 자료를 찾아 읽었다. 그녀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하여 공개한 자료들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자료들을 취합하여 읽었다.

결과 그녀는 정치적 테러사건은 언제나 명확한 규명이 이루어지는 예가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해방 정국의 친일·친미파 장덕수에 대한 살인은 미군정이 주장한 대로 김구가 속한 한독당의 소행인가, 아니면 김구를 궁지로 몰기 위한 미국의 조작인가를 규명할 증거가 없었다. 우익 인사 송진우의 암살 배후는 좌익인가, 아니면 반탁에 미온적이었던 그를 제거하기 위한 우익인가?

그런 판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사료(史料)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언제나 상반되는 자료가 공존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결정적인 판단은 독자적인 직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역사 기록의 허구성이 얼마나 큰지를 새삼 알고는 크게 놀랐다. 아울러 역사를 판단하듯이 범인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 정국의 중도인사라고 할 수 있는 여운형의 암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좌와 우의 중간노선을 택했으므로 좌·우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여운형을 죽인 사람은 좌인가, 우인가? 심증으로는 우익이지만 문제는 증거가 없으므로 단정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조수경은 정치적 테러는 배후가 드러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정치적 테러라고 해서 배후가 드러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정국의 정치적 테러들은 하나같이 배후를 밝히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은 수사관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른바 '영구 미제 사건'이 된 셈이었다.

영구 미제 사건을 낳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수사가 잘못 되는 경우와 수사가 방해를 받을 경우 사건의 배후는 밝힐 수가 없다. 그런데 해방정국의 암살테러들은 후자의 경우로 파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사건들에는 하나같이 수사를 방해할 실력을 가진 권력 집단이 개입되었다고 보아야 했다. 당시의 권력 집단이란 누구인가?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이었다.

김구의 암살은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조수경이 읽은 모든 자료에는 추정이나 단정만 존재할 뿐이었다. 온전한 증거를 제시하는 자료는 없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공개한 기밀 사항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글을 읽으면 진실이 무엇인지 알지는 못해도 그 글이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있는 법이었다. 진실한 주장에는 언제나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되기 때문이다.

조수경이 파악한 해방정국의 테러사건들은 모두 '미제(未濟)'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연습 삼아서 가장 큰 미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백범 김구의 암살사건 배후를 프로파일링 해보았다.

1. 김구를 저격한 것은 당시 포병 소위 안두희이다.
2. 그는 단독 범행이었다고 주장하며 끝내 입을 열지 않다가 죽었으므로 그의 진실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자백에 의한 증거 확보는 불가능해졌다.
3. 살인범 안두희는 사건 발생 전후 이승만 정부의 줄기찬 보호와 비호를 받았다.

4. 최근 미국에서 공개된 비밀문서에 의하면 안두희는 맹인 염동진이 주도하는 한국 테러 조직 백의사(白衣社)의 단원이었다.
5. 동시에 안두희는 미국 C.I.C 요원이었다.
6. 동시에 안두희는 서북청년단의 단원이었는데 당시 이 단체는 이승만의 일을 돕고 있었다.

7. 동시에 안두희는 김구 주도의 한독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8. 4, 5, 6, 7항 중에서 적어도 2~3개는 위장을 위한 준비 방책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9. 당시 백의사와 김구는 적대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이었다.

10. 당시 이승만과 미국은 담합의 관계였다.
11. 공개된 미국의 기록문서에는 당시 미국과 이승만은, 김구가 좌우익 합작의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다.(증거 제시 없음.)
12. 공개된 미국 기록문서에는"당시 백의사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김구를 죽이라고 말했다면 안두희 역시 피의 맹세를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염동진이 안두희에게 실제로 지시했다는 것이 아니고 지시한다면 그리 했을 것이라는 가정적 추리에 불과하다.

13. 결과적으로 미국의 문서는 김구를 죽인 배후가 염동진의 백의사인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14. 그러므로 안두희의 배후는 일단 미국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외교 기록 문서에는 일련의 세탁 과정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15.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김구 암살은 미국의 기획과 이승만의 용역 제공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16. 따라서 미국 관련자와 이승만의 신병을 확보해야 하고 운이 좋으면 그들의 자백에 의해 물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17. 그런데 현재로서 16항의 실현은 불가능하다.(이승만은 죽었고 한국 경찰은 미국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
18. 그러므로 이 사건은 영구히 미제(未濟)로 남을 가능성이 단연 높은 것이다.

해방정국의 테러사건들 말고도 한국의 현대사는 무수한 고통과 의혹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수경은 경제 발전으로 일견 활기에 넘쳐 보이는 조국이 불과 몇 십 년 전의 과거만 들춰보아도 참으로 많은 상처와 흉터로 얼룩져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얼룩무늬들은 이름 하여 암살과 학살, 투옥과 처형, 고문과 조작 등이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들의 뿌리가 좌·우 대립에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해 있는 대부분 모순과 부조리들은 분단체제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한국의 산하에는 분단체제로 인한 억울한 유골이 최소 100만 이상은 묻혀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멀쩡해 보이는 조국의 배후에 오열과 원한의 처절하고 섬뜩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 짙은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진실과 화해일 것이라고 그녀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주 2~3회씩, 연말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



태그:#백범, #미제사건, #프로파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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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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