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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당시 울릉도에 거주한 주민 141명의 출신지를 조사한 보고서가 필자의 눈길을 끈다. 주민 대부분인 115명이 전남 출신이고 그 중 옛 낙안군 출신이 21명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볼 때 낙안군의 해상활동이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당시 낙안군의 치소였던 낙안읍성의 기록에서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는데 군관이 50명이며 좌수영 1042명의 군인 중 배를 타는 수군이 349명을 차지할 만큼 낙안군은 수군 중심의 군 편제였고 해상활동의 근거지였다.

 

이보다 앞서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던 1590년대 말 낙안군은 전라좌수영 관할로 광양, 순천, 흥양, 보성과 함께 5관에 속한 지역이었고 이순신 장군을 도와 각종 해상전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운 이들 중에는 이 고장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이 지역에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얘기가 많이 남아있다.

 

이순신 장군이 낙안군을 방문하던 때는 1597년 여름이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후 재수임을 받던 그해에 군사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낙안군의 치소였던 낙안읍성에 왔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낙안의 동쪽산인 오봉산에 올라 인근 지형을 살폈다고 하며 장군바위에 앉아 병사들과 함께 땀을 식히고 시조를 읊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당시 낙안 객사에 3일 동안 머물면서 객사 뒤편에 팽나무 한그루를 심고 낙안의 유지들과 국운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는 점이다. 전쟁 중이던 시기에 나무를 심고 제를 올린 사례라 좀 특이하다.

 

그럼 당시에 심었던 나무는 그대로 남아있을까? 그동안 낙안읍성을 다녀갔던 많은 관광객들은 "못 봤다" "없던데?"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 관광객의 동선에서 벗어나 있어 볼 수 없었거나 그런 의미가 담긴 나무인지를 표시해 놓지 않아 그저 '큰 나무인가 보다'라고 무심코 지나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있다. 낙안 객사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어른 예닐곱 명이 양팔을 뻗을 정도로 크고 높이가 15미터는 족히 될 만한 팽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로 그 나무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의미가 있는 나무인데 아무런 표시가 없을까? 확증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향토사학자 Y씨는 "기록도 있고 현재 낙안 객사 뒤편에 수령이 당시와 거의 비슷한 고목 팽나무가 있기에 이순신 장군이 심어놨다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면서 "어떻게 해야 확증인지는 모르지만 미심쩍다면 기록은 있기에 그 나무로 추정된다"라는 표시만이라도 했으면 하는 희망을 내비쳤다.

 

 

이순신 장군이 심었다는 팽나무가 그런 사연을 안고 있어 제대로 빛이 나지 않고 있는 반면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에 머무를 때 즐겨 드셨다는 음식인 일명 '팔진미'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팔진미는 이 지방의 특산물인 석이버섯, 고사리, 도라지, 더덕, 미나리, 무, 녹두, 천어매운탕 등 여덟 가지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낙안군에 이순신 장군이 남겨놓은 것은 세 가지. 오봉산의 장군바위, 낙안 객사 뒤편의 팽나무 그리고 낙안 팔진미다. 그런데 팔진미를 제외하고 오봉산 중턱에 있는 장군바위는 길이 나 있지 않아 쉽게 접근하기 어렵고 객사 뒤편 팽나무는 확증의 문제가 남아있다.

 

향토사학자 Y씨는 "팔진미를 앞에 두고는 그저 이순신 장군께 대접했던 음식이라고 말하면 얘기는 끝이지만 피폐한 지역과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지형을 살피고 마음을 가다듬던 장군바위나 국운을 기원하면서 제를 지냈을 팽나무는 후손들에게 교훈이며 할 얘깃거리도 많지 않냐?"면서 이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46] 이순신 장군이 군량미를 조달했던 조양창은 어디?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낙안읍성, #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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