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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는 멸망했다. 하지만 이후 3년 동안 백제민들은 백제의 흥복(興復)을 위해 현 전라북도 부안 일대, 전라남도 남평과 광주 일대 그리고 보성군 조성면 일대에서 강한 저항과 투쟁을 계속했다.

 

하지만 663년 9월 7일, 전북 부안의 주유성이 함락되자 남평과 광주 일대에서 항쟁하던 백제 주민들과 함께 9월 25일 현 보성군 조성면(당시 동로현 조양면)에 집결하여 일본 함선 600여대에 나눠 타고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1300여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떠난 자리(보성군 조성면 대전마을)에는 우물 하나만이 남아있다. 언제 다시 조국의 고향땅을 밟아볼지도 모를 망명길에서 눈물 섞인 우물물로 목을 축였을 백제인들, 그리고 다시 물을 배에 싣고 가 일본 땅에서도 백제의 흥복을 빌며 나무를 심고 그곳에 조국의 물을 뿌렸을 백제인들.         

 

보성군 조성면은 어떤 지역인가?

 

보성군 조성면은 벌교읍에서 재 하나만 넘으면 만나게 되는 곳이다. 물론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군된 옛 낙안군에 속한다. 현재 인구 약 4천 5백여 명으로 북쪽은 주월산이 삼면을 감싸고 있고 남쪽으로는 득량만이 펼쳐져 있다. 인근 낙안면이 항아리 모양이라면 조성면은 종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기후가 온화하고 들판이 넓어 곡식이 풍부하고 해안에 접해 있어 수산물까지 넘쳐나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산 흔적들이 도처에 남아있는 곳이다. 지석묘를 비롯해 주거지 등이 발견되는 것은 물론 원삼국시대의 환호와 취락, 패총 등도 확인된 곳이다.

 

백제시대에는 현재의 낙안이나 벌교와 함께 분차군이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조양현으로 고려시대에는 낙안군으로 이후 보성군에 잠시 속했다가 조선시대 고흥현이 왜구의 침입으로 치소를 조양현으로 옮기면서 고흥과 병합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조양현은 목포, 옥구, 흥덕과 함께 전라도 사진(四鎭)으로 위세가 대단하던 곳이었다.

 

조성면이 동로현을 중시 여기는 이유는?

 

조성면 주민들이 동로현을 중시여기고 또 동로성 축제까지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백제의 마지막 땅이었기 때문이며 백제의 마지막 주민들이 토성을 쌓고 끝까지 항쟁하다가 조국 땅을 뒤로 하고 일본으로 망명을 했던 눈물의 땅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민조차도 조성면이 동로현이었나? 하고 생소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동로성 축제가 15년째 열리고 있다는 사실에도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필자는 조성면이 보성군이라는 고을의 중심지도 아니며 설움이 섞인 빗겨난 작은 면이기에 어려운 여건에서 이만큼의 성적을 거둔 것도 괄목할 만하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정도까지 성과를 이룬 데는 지난 1993년부터 5년간 면장직을 수행했던 여응현 전 조성면장과 현 총무계 이영종 계장의 숨은 공로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조성면의 이름이 역사의 고장으로 조금이나마 알려진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전 조성면장 여응현씨는 누구인가?

 

여응현 전 조성면장은 현재 정년퇴직을 하고 초야에 묻혀 살고 있다. 하지만 고향 사랑만큼은 그 누구보다 남달라 면내 어디서 신기한 것이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리면 만사를 제쳐두고 뛰어가는 향토사학자로 변신했다.

 

사실, 여응현씨는 조성면장으로 부임하던 1993년 전까지만 해도 관청에서 일반 업무를 봤기에 역사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고향땅에 면장으로 부임하면서 역사 찾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일종의 고향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백제의 마지막 항쟁터로 동로성터를 발굴하고, 그들이 일본으로 떠나면서 고국에서 마지막으로 마셨을 우물을 찾아내고, 일본 문서인 일본서기에서 백제인의 이동경로를 역 추적하는 쉽지 않은 일들을 해 온 것이다.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면서 찾아내 평범했던 조성면을 역사의 현장 조성면으로 탈바꿈시켜놨는데 이 과정에서 이영종 총무계장이 여응형 전 조성면장에게 큰 힘이 됐다.

 

마지막 백제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마셨을 조성면의 우물, 1300여 년이 지났는데도 마르지 않고 여전히 솟아나고 있다. 멀리 일본에서도 찾아온다는 명소인데 혹시 여러분은 이곳을 알고 계신지요?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예고: [09-045] 조성면은 역사의 보고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조성면, #백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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