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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학에의 도전'이라는 그 험난한 길을 헤쳐나간 인물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등……. 그들은 그 시대가 이루어놓은 과학적 기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몇 세기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이론으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볼츠만의 원자>에 등장하는 루드비히 볼츠만은 19세기 말의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들로 인해 기존의 이론이 위협받고 있던 고전물리학이라는 정상개념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과학자였다. <볼츠만의 원자>는 그의 정상과학에의 도전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는 책이다. 

 

볼츠만이 활동했던 그 당시 상황은 증기기관의 발전으로 인한 산업혁명이 1세기가 지난 어느 정도의 완숙기를 거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체를 부풀려서 일을 하는 현상은 이해를 했고, 그것을 이용하여 여러 가지에 적용하긴 했지만, 도대체 그것이 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이해할 수 없어도 그렇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미 그런 현상이 원자의 움직임으로서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19세기의 과학은 원자라는 개념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즉, 원자라는 개념은 또한 '신의 법칙'에 위배되는 이론이고 '원자'라는 것이 실제로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었던 탓에 개념자체가 부족했던 상태였다.

 

이 책은 '원자'라는 개념이 고대 그리스 때부터 쌓여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기원전의 인물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을 이용해서 무신론을 주장했었고, 그러한 사상의 '왜' 라는 의문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시대까지 이어져왔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19세기의 과학에서 '원자'라는 개념은 그 자체가 있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증거부족'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혀 '원자론'은 '정상과학'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예측해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볼츠만을 위시한 여러 물리학자들은 획기적인 이론들을 쏟아낸다. 헬름홀츠, 맥스웰, 클라우지우스, 로슈미트 등. 바야흐로 이 시기는 물리적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힘을 쏟았던 과도기의 중심이었고, 볼츠만도 여기에 합세하여 '원자'가 있음을 가정하면서 '이론물리학자'의 면모를 발휘한다.

 

볼츠만의 기체이동 방정식

 

맥스웰이 발견한 기체의 확률적 분포도는 볼츠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볼츠만은 클라우지우스가 개발해낸 '열역학 2법칙'의 개념을 고정된 시각에서 바라보지 않고, 확률적으로 새롭게 고찰한다.

 

즉, 어떤 열적 평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가역적ㆍ비가역적 현상이 모두 일어날 수 있지만, 확률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실제에서는 모든 현상이 비가역적으로 일어난다고 해석했던 것이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렸을 때, 잉크 분자들은 최적의 평형상태로 이동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잉크 분자 하나는 1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고, 잉크 분자 1억 개는 2의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실제에서는 2의 현상으로 움직임일 가능성이 더 높고 실제로 그렇게 보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인 것이다. 볼츠만은 그러한 확률적 개념을 S = kㆍ logW라는 식으로 표현해냈다.

 

그리고 볼츠만은 S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H-정리'라는 새로운 개념도 창조한다.

 

"H를 유도하는 과정에서는 원자들이 열적 평형이라는 안정한 분포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 쫒아 다니면서 충돌한다는 생각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엔트로피의 증가는 원자들의 움직임에 적용되는 역학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러나 S의 정의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원자의 움직임에 대한 역학적인 설명이 사라져버렸다. 볼츠만은 원자들의 분포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원자들의 가능한 상태 또는 배열에 대해서만 생각함으로써 엔트로피를 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28쪽)

 

마흐의 공격과 에너지론

 

그러나 볼츠만의 이론을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인물은 마흐였다. 사실 수학적인 정리에 있어서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마흐의 철학이지만 미지의 세계를 걷고 있는 과학계에서 바라볼 때, 마흐의 철학은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엄격한 개념이지만, 그래도 과학자들은 마흐의 의견을 상당부분 만족시키려고 노력함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마흐의 철학은 간단히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믿자."는 것이었다. 즉, 실제 세계에서 밝혀낼 수 있는 도구들만 사용해서 현실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타당한 이론이라는 것이었다. 마흐의 눈에는 애초에 '원자'라는 물질이 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토대로 이루어진 볼츠만의 이론에 대해서 매우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그리고 마흐의 철학을 수용하여 모든 것을 에너지를 기본으로 하여 설명하려고 했던, '에너지론'의 추종자들은 마흐와 합세하여 볼츠만에게 신랄한 비판을 보내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와서야 '에너지론'을 주장하던 과학자들도 그들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론을 가정하여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마흐와 다른 길을 걷게 되지만, 그 당시의 볼츠만의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이들은 볼츠만의 이론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으며, 자신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을 대하면서 볼츠만은 정신적으로 나약해져만 간다.

 

미국에서의 깁스의 활약

 

다른 유럽권에서는 마흐의 철학이 볼츠만이 살던 독일권의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약했고, 미국에서는 아예 그런 이론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대륙이었다. 그리고 그 미국에서 깁스는 열역학에 있어서 혁신적인 이론을 발표하게 된다.

 

그는 모든 인자를 조합해서 하나의 그래프로서 열역학을 설명했다. 지금껏 나타난 모든 현상을 종합적으로 통합하여 그는 'G'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게 되고, 통합적인 이론으로서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가장 핵심적인 이론으로 배우고 있게 된다.

 

나는 열역학을 배우면서 '깁스 에너지'를 증명하기 위한 식에서 왜 이전에 증명했던 식들을 가져와서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깁스의 발견은 지금껏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혼합하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볼츠만의 위치를 한 단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발견이었던 것이다.

 

막스 플랑크와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도 역시 처음에는 볼츠만의 확률적인 개념을 반대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복사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전긍긍 하던 중 공간을 쪼개서 확률적으로 계산했던 볼츠만의 방법으로 똑같이 복사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플랑크의 '양자가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양자가설' 받아들였고, 볼츠만의 이론을 더욱 새롭게 인식한다.

 

"복사 에너지의 '양자' 하나하나를 물리적으로 독립된 존재로 취급하면, 전통적으로 열역학적 방법으로 유도한 식과 일치하는 복사광의 에너지와 엔트로피를 얻을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물리적인 기체가 독립된 원자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전자기파의 '기체'도 명백한 양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그의 주장은 그 의미가 명백하면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에너지를 작은 부분으로 나누는 것은 단순히 수학적인 요령이 아니라 실제로 전자기 복사의 물리적인 본질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발견을 뜻하는 것이었다. 양자는 정말 에너지의 원자였다." (273쪽)

 

그렇게 아인슈타인은 양자의 개념을 받아들여 빛의 파동에너지가 설명하지 못했던 부분을 증명함으로써 '광전효과'를 증명할 수 있게 되고, 그는 또한 '브라운 운동'에 대한 현상을 해석하게 되면서 실제로 원자를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 증명하는데 성공한다.

 

그것은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겠다고 했던 반대파들에게 실제로 현상을 눈에 보여줌으로서 반세기동안 끌어온 원자가설에 대한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볼츠만의 이론들이 정상과학으로 당당히 진입함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나약해져버린 볼츠만

 

하지만 볼츠만은 이미 너무나 정신적으로 황폐해져버린 상태였다. 그의 인생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는 반대에 직면했고, 그는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철학에도 손을 대기도 했지만 그는 서서히 자신이 이제껏 이루어놓은 것을 보존하기에 급급했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가면서 스스로 탐구활동을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여건 속에 놓여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제기했던 이론들이 급속도로 발전해나가는 '신과학'의 물결을 접할 수 없었고, 그렇게 저물어 갔던 것이며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볼츠만이 우리에게 준 것

 

사실 우리들은 이론을 정립한 아인슈타인에 대한 관심은 지극히 높지만 볼츠만 같이 '정상과학'에 투쟁했던 인물들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한 상태였지 않나 반성해본다. 볼츠만은 단순히 확률적 이론을 우리에게 일반적인 이론으로 받아들이게 한 공로 외에도 더욱 커다란 업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볼츠만이 먼저 보는 것만을 유일하게 믿던 그들과 싸워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기 때문에 그 후에 태어난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의 가설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게 되었고, 수용할 수 있게 토대를 마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불확정성원리'를 볼츠만의 확률적 이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한 노력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이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졌을까? 또한 '초끈이론'과 같은 현재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새로운 이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까?

 

아마도 볼츠만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또한 19세기의 볼츠만과 마찬가지로 주류 과학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대와 탄압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며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상당히 퇴보한 상태에 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볼츠만의 원자>라고 하기에 원자의 발견과 현재까지의 상황을 서술한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열역학적인 발견과 양자역학의 뿌리를 파고드는 책이어서 약간은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학문을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념을 파고드는 책이라서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솔직히 <볼츠만의 원자>를 전부 이해하기엔 나의 지식이 너무 짧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나만의 언어'로 집약시키기 위해서 노력해보았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열역학>을 배우기 전에 입문서로 읽어본다면 상당히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볼츠만의 원자 -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

데이비드 린들리 지음, 이덕환 옮김, 승산(2003)


태그:#볼츠만의 원자, #데이비드 린들리, #숭산,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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