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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계속해서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떠요.

A : 그건 아마도 계속해서 컴퓨터를 사용하려 한 탓일 겁니다. 컴퓨터를 끄면 그런 메시지도 사라집니다.

Q : 내 컴퓨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에요.

A : 맞습니다. 그리고 축하합니다. 이제 앤스랙스 3000 터보 모델로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니면 다시 펜과 종이로 돌아가시든가요. (252쪽)

 

소비자 상담 내역의 일부라면서 빌 브라이슨이 자랑스럽게 우리들에게 보여준 Q&A의 장면이다. 저 내용이 실제로 토씨 한마디 안 틀리고 썼다고 믿기는 힘들겠지만, 우리가 실제로 각종 사이트의 소비자 상담란에 불편함을 호소하면 볼 수 있는 내용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Q : 제가 이 XX 물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불편합니다.

A : 감사합니다. 고객님 현재 문제점을 발견하여 수정 중에 있으므로 조속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XX 제품을 이용해주셔셔 감사합니다.

 

나는 위와 같은 답변을 받고 거의 일주일 동안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했다. 그 사이 소비자 센터에 전화를 걸어 생돈 3천 원을 쓰면서까지 문제해결방법을 독촉했으나 전화상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계속 조금만 기다리면 고쳐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문제점은 해결되었다. 물론, 해결책은 인터넷의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네티즌의 블로그를 통해서 해결했지만…….

 

빌 브라이슨의 글들을 읽으면서 혹자는 너무 앞뒤가 막힌 한 보수적인 남성의 글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나 나는 그의 글을 통해서 매우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었으며, 그의 글을 통해 지금껏 잊고 있던 이 사회의 부정적인 몇몇 사실들에 대해서 풍자하고 싶은 강한 욕구도 느꼈다.

 

빌 브라이슨은 서비스가 강조되는 사회는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선택을 간소화 할 수 있는 부분에까지 침투하여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성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꼬집고 있는 미국의 대형마트와 체인점 음식점들의 이야기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공통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며칠 전, XX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한국적인 정서로 생각해보면 세트메뉴를 시켰을 때, 우리들은 상식적으로 세트메뉴를 시켰으니 가격이 더 다운되어있다고 믿어버린다. 일례로, 자장면 집에서 시키는 자장면 두그릇에 탕수육이 들어가는 세트메뉴 A 같은 것이나 아니면 영식이(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더군요.) 두 마리 치킨에서 시키는 치킨 두 마리의 값은 하나하나씩 주문했을 때보다 가격 절감의 효과가 있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생각해봐도 같은 고정비용에 조금 더 많은 양을 생산했을 때 나타나는 한계비용의 절감과도 부합하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갔던 XX에서는 이것이 통용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젓이 메뉴판 (별것도 없으면서 혼란스럽게 꾸며놓은 그리고 페이지만 많은)의 제일 첫 페이지에 새로운 제품이 출시 되었다며 그것에다가 샐러드와 음료를 추가 주문하면 가격 할인이 될 것이라며, 구매자들의 구매 욕구를 촉진시키는 카피를 새겨놓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고구마 토핑을 해달라고 주문하자 해당되는 상품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첫 페이지서부터 끝 페이지까지 메뉴판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피자와 음료와 샐러드를 하나씩 각각 따로 주문했을 때와 가격이 할인된다고 써붙여놓은 그 세트메뉴와의 가격을 비교했을 때 하나씩 주문했을 때의 가격이 무려 2000원이나 저렴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무엇인가 남들은 모르는 대수롭지 않은 비밀을 발견했다고 단순히 넘어갔지만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미국학>을 보면서 이것이 그냥 넘어갈 만한 수준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 기업 XX의 이러한 행위들이 바로 빌 브라이슨이 이 책에서 불평하고 있는 어떤 것들의 하나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소비자들의 눈에 다양성을 심어놓고 교묘하게 뒤에서 잇속을 챙기는 그들의 행위. 물론 그것에 속지 않는 사람들의 지혜가 요구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뒷맛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한번 변한다고 했는데, 무려 20년 즉, 강산이 두 번 변화한 뒤에 다시 고향에 돌아온 빌 브라이슨은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을 이렇게 글로 표출해낸다.

 

그 속에는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기업들의 변화된 모습과 더불어 환경보호 측면에서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미국정부를 비판하기도 하며, 과거의 역사적인 공간을 허물고 새로운 공간을 세우려고 하는 여러 프로야구 구단의 정책을 비난하기도 하며, 어째서 과거의 그 재미있던 것들이 새로운 것에 떠밀려 사라지는 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을 풀어놓기도 한다. 

 

우리도 생각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이 이 책을 썼던 1990년대의 삶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얼마나 변했는지…….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아쉬운 것을 몇 가지 들어보라면 이 두 가지를 가장 먼저 들고 싶다.

 

그 당시에 도로변에 뛰어나가서 동네 친구들과 숨바꼭질, 술래잡기, 한발두발, 고무딱지 놀이 등등. 스스로 놀잇감을 찾아서 하루 종일 밖에서 뛰어놀던 풍경이 이 도시에서 사라졌음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제 어린이들은 피시방이라는 편리한 곳에서 친구들과 욕설을 섞어가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 당시에 조별과제가 주어져서 단원정리 발표수업이 진행될 때면 우리들은 커다란 전지와 매직을 가지고 그 큰 공간 위에 올라타서는 마치 우리가 화가나 작가가 된 것처럼 그 공간속에 우리들이 공부했던 것들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발표 날이 있는 그날 등교할 때 그 전지를 보물인 것처럼 정성스럽게 모시고 학교로 갔다. 하지만 그러한 풍경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우리들은 파워포인트라는 프로그램으로 모든 수업들과 발표들을 대체하고 있다. 그것은 USB라는 손가락 크기에 불과한 디스켓에 저장되어 우리의 호주머니나 가방 속에서 있다가 발표당일 컴퓨터의 도움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전지를 낑낑거리며 들고 학교를 나서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리고 손수 만들어낸 그것을 가지고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있던 내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그리고 고무딱지 게임에서 져서 심통을 부리던 내 모습과 술래잡기게임을 할 때 아무도 잡을 수 없게 이리저리 보이는 대로 가다가 헥헥거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프로보다 아마추어가 그립다. 빨리 빨리보다는 느림이 그립다. 몇 개 더 사면 깎아주는 그 인심이 그립다. 깎아주는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시장에서 흥정하는 그때 그 모습이 그립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어다니다가 헥헥거리던 그 순간이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욕설을 퍼붓는 지금보다 더 그립다. 그렇게 나는 현재보다 과거가 그립다.

 

덧붙이기. 유일하게 이 책에서 풍자적인 요소가 없는 부분이 한군데 있다. 그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그가 남기는 잠언 같은 이야기이다. 이 책을 전부 읽을 기회가 없고 서점에서 발견할 때 꼭 그부분만은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풍자적인 요소가 없다고 그랬는데 취소다. 하지만 8번 문항만 제외하면 만족스럽다. 8. 늘 내 책을 사십시오. 책이 나오자마자 양장본으로. 왠지 밉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21세기북스(2009)


태그:#발칙한 미국학,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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