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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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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은 지금 스타작가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이후 <나를 부르는 숲>과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등이 연이어 화제가 되며 명실 공히 스타작가 대열에 올랐다. 그가 이렇게 된 이유는 역시 그만의 문체가 한몫 단단히 했다.

여행을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부분 여행지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는다. 또한 그것이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말하면서 여행의 로망이 무엇인지를 정의 내리려 한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여행 다녀왔는데 막상 볼 게 없었다는 식으로 불평을 할 줄 아는 작가다.

그는 천하의 불평꾼이라고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투덜거린다.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유머러스하게 말할 줄 안다는 사실이며 또한 그 와중에도 여행을 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제대로 말할 줄 안다는 사실이다. 한눈에 봐도, 독특하게 내공이 느껴지는 고수다. 그런 그가 사랑받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최근에 출간된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에서도 그 매력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 책은 그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썼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약 10년 전에 쓰여 진 글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빌 브라이슨의 매력 덕분에 글은 살아있다. 미국에 대해 불평하면서 자신만의 미국학을 말하는데 그것이 어제 쓴 글이라고 여겨질 만큼 생생한 것이다.

글은 그가 영국에 살다가 돌아온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는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영국에 살면서 영국인 아내를 얻었고 영국에서 작가로서의 명성도 꽤 얻었다. 그는 영국 생활에 만족했지만, 가정적인 문제로 미국에 왔다. '귀향'한 셈이다. 그 귀향에 그는 신났을까? 글만 봐도 그의 얼굴에 잔뜩 불평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미국의 어떤 것들은 그를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간접 흡연의 폐해를 걱정하면서도 그보다 암에 걸린 확률이 더 높은 일주일에 한 번 돼지고기 먹는 것에 별다른 걱정 없는 미국인들에 불평한다. 더불어 5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을 갈 때 차로 가는 사람들에 불평한다. 운동하는 셈 치고 거기까지 걸어서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묻자 러닝머신에 올라야 제대로 운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 불평한다.

치약을 묻혀서 나오는 일회용 칫솔이나 자동으로 고양이 먹이를 덜어주는 기계 등에 둘러싸여 오히려 더 불편해지는 사회에도 불평한다.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너무 심해져서 오히려 더 복잡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도 불평한다. 예컨대 그는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그냥 커피만 주문하면 되는 시대가 있었는데 요즘은 '다양성의 과잉'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고 있다. 그런 것은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 나는 9가지의 달걀과 16가지의 팬케이크, 6종류의 주스, 2가지 모양의 소시지, 4종류의 감자, 8종류의 토스트와 머핀, 베이글 중에서 각각 한 가지씩을 골라야 했다. 담보대출을 받는 데도 절차가 이렇게까지 까다롭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제 다 끝났으려니 생각하고 있을 때 웨이트리스가 물었다.

"거품 버터와 일반 버터, 버터와 마가린이 섞인 것, 버터 대용품 중 어떤 걸로 드릴까요?"
"농담이시죠?"
(…)
"그렇다면 일반 버터로 주세요."

내가 힘없이 대답했다.

"저염 버터로 드릴까요, 무염 버터로 드릴까요, 아니면 보통 버터로 드릴까요?"
- 책 中에서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을 읽다보면 킥킥 거리게 된다. 이번에도 빌 브라이슨이 미국에 대한 불평을 유머러스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지 웃기기만 한 건 아니다. 그의 불평이 쏟아지는 과정을 쫓다보면 미국 사회의 어떤 모습들이 보인다. 그만의 그림이 있다. 비록 그것이 십년 전의 모습일지라도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글도 없으리라.

불평 투성이지만 이상할 정도로 유쾌하다. 유머러스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더군다나 그 세계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건 어떤가. 본격적인 연구가 선보이는 정밀성은 떨어지지만 그것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친숙하고 재밌는 미국학을 알려주고 있다. 키득키득 거리게 만들기까지 하니, 과연 빌 브라이슨의 책이라고 할 만하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21세기북스(2009)


태그:#빌 브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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