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ㄱ.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 조선총독부 내에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맞춤법 통일안은 조선어학회의 이름으로 제안되었고 ..  《최경봉-우리 말의 탄생》(책과함께,2005) 92쪽

 

 "조선총독부 내(內)에"는 "조선총독부에"로 손봅니다. "조선어학회의 이름으로"는 "조선어학회 이름으로"로 손질하고, '제안(提案)되었고'는 '나왔고'나 '내놓았고'로 손질합니다.

 

 ┌ 학무국이 존재하고 있었으나

 │

 │→ 학무국이 있었으나

 │→ 학무국이 있기는 했으나

 │→ 학무국이 버젓이 있었으나

 │→ 학무국이라는 곳이 있었으나

 └ …

 

 이 자리에서는 군더더기로 쓰인 '존재하고'입니다. '존재하고'를 덜어 "학무국이 있었으나"라고만 적어도 넉넉합니다. 어쩌면, '있었으나' 앞에 '존재하고'를 넣으니 힘있게 말할 수 있다고 느꼈는지 모르는데, 이와 같이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면, "학무국이 버젓이 있었으나"나 "학무국이 틀림없이 있었으나"나 "학무국이 어엿하게 있었으나"처럼 다른 꾸밈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넣어야 할 말은 넣어야 하나 털어야 할 말은 털어야 하는 줄을 알면 좋겠습니다. 꾸밀 말은 어떻게 꾸미고 북돋울 말은 어떻게 북돋아야 하는가를 찬찬히 살필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늘 쓰는 우리 말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으며, 어떻게 가꾸어 나가고, 어떻게 어깨동무하면서 우리 마음과 넋과 생각을 나누면 흐뭇할까를 곰곰이 헤아리는 말밭과 글밭을 힘껏 일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ㄴ. 귀찮은 존재

 

.. 제발 귀찮게 좀 하지 마세요! 전 아무한테도 귀찮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구요! 제, 제가 그렇게 불안해 보이세요? ..  《다카하시 신/박연 옮김-좋은 사람 (17)》(학산문화사,2006) 196쪽

 

 '불안(不安)해'는 '걱정되어'나 '근심스러워'나 '힘들어'로 손질해 줍니다.

 

 ┌ 귀찮은 존재가

 │

 │→ 귀찮은 사람이

 │→ 귀찮은 녀석이

 │→ 귀찮은 짐이

 │→ 귀찮은 걸림돌이

 │→ 귀찮은 돌부리가

 └ …

 

 귀찮은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한테 해코지를 하는 사람이 귀찮은 사람이 될까 헤아려 봅니다. 귀찮은 사람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귀찮을는지 곱씹어 봅니다. 거꾸로, 내가 귀찮다고 여기는 사람한테 나는 어떻게 느껴지는 사람일까를 돌아봅니다. 나를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누구이며, 다른 이한테 나는 얼마나 귀찮을까를 살펴봅니다.

 

 귀찮은 사람이라면 짐스럽다고 느낍니다. 걸리적거린다고 느낍니다. 저이가 없어야 괜한 데에 시간이며 마음이며 품이며 빼앗기지 않고 내멋대로 할 테지만, 저이가 있으니 번거롭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저는 누군가한테 몹시 귀찮을 뿐더러 짜증나는 사람일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저를 귀찮게 한다면 참으로 힘겨울 텐데, 그 힘겨움과 똑같이 나 스스로 누군가한테 힘겹게 다가서고 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라면 저 스스로 무엇을 얼마나 귀찮게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할 테니까요.

 

 ┌ 아무한테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구요

 ├ 아무한테도 귀찮게 되고 싶지 않다구요

 ├ 아무도 귀찮게 하고 싶지 않다구요

 ├ 아무도 귀찮게 여기게 하고 싶지 않다구요

 └ …

 

 제가 누군가를 귀찮다고 느낀다면 그이는 저한테 애먼 짓을 하는 셈이라, 저한테나 그이한테나 얄궂은 셈입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제 느낌 때문에 누군가한테 마음에 씻지 못할 생채기를 남깁니다. 거꾸로 보아도, 누군가 나를 귀찮게 여긴다면 제 마음에도 생채기가 남을 테지요.

 

 그런데 참으로 무엇이 우리를 귀찮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말이 우리를 귀찮게 하며, 어떤 일이 우리를 귀찮게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한테 귀찮다고 느껴질 일이 한 가지라도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곧게 한길을 걸으면 되는데 자꾸자꾸 돌아가게 하니 귀찮을까요. 어느 한 가지에 오롯이 마음을 쏟고 싶은데 자꾸만 곁길로 새도록 하니 귀찮을까요.

 

 곰곰이 돌아보면, 낱말 한 마디 얄궂게 쓰는 분들은 늘 저를 귀찮게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엉터리 글 한 줄 짓궂게 쓰는 분들이 언제나 저를 귀찮게 들볶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얄궂게 말하고 글쓰는 분들이 있기에, 저는 외려 말다운 말과 글다운 글이 무엇인지 더 깊이 돌아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살갑고 싱그럽고 올바르게 말하고 글쓴다고 할 때에도 '어찌어찌 하는 말과 쓰는 글이 한결 살갑고 싱그럽고 올바른가'를 찾아나섰을 테지만, 모든 사람이 엉뚱하고 짓궂고 엉터리로 말하고 글쓴다고 할 때에도 '어찌어찌 나누는 말과 펼치는 글이 좀더 살갑고 싱그럽고 올바른가'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때때로, 아니 자주 겪고 있습니다만, 얄궂게 쓰이는 말을 보면서 '한결 살갑게 말하기'를 배웁니다. 엉터리로 펼치는 글을 보면서 '한결 싱그럽게 글쓰기'를 익힙니다.

 

 저절로 마음닦기를 하게 된다고 할까요. 시나브로 마음다스리기를 이룬다고 할까요. 어지럽고 뒤숭숭한 말밭과 글숲을 헤치는 동안 마음이 닦여지고 다스려진다고 할까요. 흐리멍텅하던 넋을 맑게 다독이고, 어수선하던 얼을 슬기롭게 다잡는다고 할까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존재#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