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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박도 / 가격 : 1만 2천 원
▲ 말글빛냄 지은이 : 박도 / 가격 : 1만 2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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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처음으로 고3 딸아이에게 언성을 높였다. 딸아이도 되받아치더니 급기야는 엉엉 울었다. 이 땅에서 고3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면서도 좀 더 다부지게 견뎌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이 땅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 것인지, 그동안 딸에게 쏟아부은 사랑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 해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이렇게 해줘야 한다'라는 우리 부모 세대의 입에 박힌 말이 싫어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 험한 세상에서 덜컥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버이날 딸아이가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의례적으로 행사했거니 생각하며 편지를 읽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처음으로 아빠와 언성을 높이며 다퉜던 날의 속내가 그 안에 구구절절 들어 있었다.

내가 딸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을 후회했는데, 딸아이도 그랬더란다. '미안해, 사랑해.' 그 한 마디에 어린 딸아이가 그 일로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싶었고, 좋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절감했다.

나의 아버지는 완고하신 분이셨다.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아버지'라는 존재가 정감있게 다가온 기억은 많지 않다. 어린 시절 방패연을 만들어 주셨던 기억 하나, 고등학교 시절 패싸움으로 제법 많은 치료비가 나왔을 때 '계집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도 사내놈이군!'하며 거액의 치료비를 주시던 기억, 대학시절 수배생활을 할 때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고수하고 계신 보수 성향의 가치관을 잠시 접으셨다는 것 정도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어찌 되었든 결국 아버지는 내 편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갈등이 심하던 시기도 지나 이제 아버지는 본향으로 가실 준비를 하고 계시고, 나는 중년이 되어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 아버지보다는 더 좋은 아버지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주 심각한 착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차에 박도 선생의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선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라는 책을 접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고 했는데, 그동안 나는 무슨 일이 그리도 바빴는지 너희에게 밥만 갖다주는 아버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성공한 인생의 이야기만 값어치가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인생에 실패한 이야기, 역경을 헤쳐 나온 이야기, 늘그막에도 꿈을 가지고 사는 이야기, 보통 사람들의 예사로운 이야기도 새겨들으며 그 나름대로 인생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이 글을 썼다.'(머리글 중에서)

33편의 단편들을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서 말할 뿐 아니라 젊은이들이 한 번쯤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아주 평범한 진리지만 잊고 살아가기 쉬운 소소한 것들, 그러나 그 소소한 것들이 인생의 행불행을 나누는 커다란 기점이 됨을 저자는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지의 존재는 어떻게 다가올까?

'어릴 때에는 대체로 아버지의 사랑을 잘 모른다. 때로는 남의 아버지보다 못한 자신의 아버지가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길러본 뒤에야 어렴풋이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참사랑을 속속들이 느끼는 게 우리네 어리석은 인생사다. 나도 그랬다.' <본문 '아버지의 뒷모습' 중에서>

아버지로서 가장 슬플 때는 언제일까? 다른 아버지들만큼 잘해주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못해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것이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로 말미암은 것일 때가 아닐까 싶다.

자신의 무능함을 가장으로서 뼈저리게 느끼는 그 순간, 세상의 아버지들은 '못난 아비 때문에 너희가 고생이다'라며 자식에게 석고대죄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 간에. 그 행간을 어렴풋이나마 읽을 수 있을 때, 그것은 저자의 말대로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난 다음이다.

이 책에는 저자의 삶의 여정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라는 글에는 죽고 싶었던 고교 시절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가세가 기울어 고교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한다. 절망이 빠져 지내던 열여섯 살 청소년이던 저자는 종로 탑골공원에서 몰골이 말이 아닌 상황에서도 살려고 구걸하는 거지를 본다.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 저 거지도 살겠다고, 하늘이 준 목숨을 버릴 수 없어 저렇게 온몸으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데, 도대체 나는 뭐란 말인가? 어제의 연약하고 비겁한 나, 부모를 세상을 원망했던 나는 이 순간 죽자. 그리고 새롭게 태어나자. 새롭게 살자!'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는 저자가 단지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려고 쓴 책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쓴 편지다. 동시에 이 시대의 아버지들에게 쓴 글이다. 나는 속독을 하는 편이라서 새 책을 사면 사나흘을 넘기지 않는다. 그러나 간혹 사나흘을 넘기는 경우가 있다. 곱씹어야 할 내용이 많은 경우에 그렇다.

그런데 300여 쪽밖에 되지 않는 책을 나는 이 주 동안 붙잡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 때문이었다. 내가 아버지라는 사실,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아버지일까 하는 고민,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등등 화두가 너무 많이 들어 있는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는 물론이려니와 아버지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선물

박도 지음, 말글빛냄(2009)


태그:#박도,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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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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