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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졸업과 취업의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인 대학 캠퍼스. '88만원 세대'로 상징되는 그곳의 청춘들도 한꺼풀만 들춰보면 누구나 슬픔 한 자락 갖고 있다.

복지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안고 2003년 천안의 호서대학교에 입학한 신아롱씨(26·천안시). 재학 도중 1년 반의 휴학기간을 갖고 올해 4학년에 복학했다.

다른 4학년과 마찬가지로 목전에 다가온 취업도 문제이지만 아롱씨에게는 또 하나의 짐이 있다. 대학을 다닌 기간과 비례해 늘어난 학자금 대출,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이자와 원금 상환의 부담이다.

여섯 번의 학자금 대출...대출금만 2800여만 원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6번 이용한 신아롱씨.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6번 이용한 신아롱씨.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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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아롱씨가 처음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학 입학금과 1학년 두 번의 등록금은 부모님이 납부했다.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을 조달했다.

"연년생으로 남동생이 있어요. 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집안에 대학생이 두명이나 됐죠. 두 명 대학생 자식의 등록금으로 한 학기에만 700만원 정도를 마련해야 하니, 부모님들로서는 보통 부담이 아니셨죠. 졸업 뒤 갚겠다며 제가 먼저 학자금 대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03학번인 아롱씨가 처음 납부할 당시 호서대 등록금은 260여만 원. 올해 4학년에 복학하면서 350여만 원을 납부했다. 1년 반의 휴학기간을 감안해도 6년 사이 100만 원 가깝게 등록금이 인상됐다. 등록금이 오른만큼 학자금 대출을 받을 때마다 빌린 돈도 덩달아 많아졌다.

지금까지 여섯 번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받은 아롱씨의 총 대출금액은 2800여만 원. 등록금에 쓰인 2000여만 원에 생활비 명목으로 빌린 돈을 합친 금액이다.

작년 가을부터 일부 대출금은 원리금 상환이 시작됐다. 대출 이자와 원리금 상환액을 포함해 학자금 대출의 대가로 아롱씨는 매달 35만 원을 꼬박꼬박 내놓아야 한다.

"아무리 씀씀이를 줄여도 자취를 하면서 식대 등 안 쓸 수 없는 돈이 있잖아요? 휴대폰 요금 등 통신경비도 빼 놓을 수 없구요. 한달 생활비에 학자금 대출이자와 원금 상환액을 합산하면 아르바이트를 안하고서는 배겨날 도리가 없습니다."

호프집이나 음식점의 서빙은 기본. 편의점부터 컴퓨터 자료 입력까지 대학을 다니며 섭렵한 아르바이트의 종류만 20여 가지. 학자금 대출의 무거운 짐은 동생에게서도 발견된다. 누나보다 앞서 대학을 졸업한 남동생도 재학 중 두 번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동생은 직장생활을 하며 매달 학자금 대출의 이자와 원금을 갚아 나가는 중이다.

내년 봄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면 지역복지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신아롱씨. 몇 달 뒤 그가 대학문을 나서게 되면 어쨌든 학자금 대출의 도움이 컸다고 볼 수 있다. 학자금 대출 제도가 없었다면 중간에 대학생활이 끝났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받는 동안 아롱씨가 치른 고생 또한 적지 않았다.

한 달에 다섯 번, 빚탕감에 숨이 찹니다

등록금 인하 등을 요구하면 삭발식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등록금 인하 등을 요구하면 삭발식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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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4일과 17일, 18일, 20일, 22일 다섯 번에 걸쳐 학자금 대출 이자금과 원리금 상환액이 제 통장에서 빠져 나갑니다. 첫 날에 맞춰 그 달에 빠져나갈 돈을 모두 입금해 두기도 하지만 간혹 돈이 부족한 경우 제 날짜를 맞추느라 숨이 턱에 차 오릅니다."

매달 납부해야 하는 이자나 원리금 상환액을 제 날짜에 채우지 못하면 큰 해를 당할 수도 있다. 연체자로 분류되어 상환독촉을 받는 것은 기본. 자칫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민주노동당 충남도당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충남지역에 소재한 33개 대학의 학생들 가운데 지난해 아롱씨처럼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을 받은 규모는 대출금액 2178억800만원, 대출 건수 5만4365건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원금 또는 이자가 1개월 이상 밀린 연체 건수는 866건으로 전체 대출 건수의 9.3%를 차지하고 있다. 연체 금액은 31억9600만원으로 전국 16개 광역시·도의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현황과 비교했을 때 경기, 서울에 이어 충남지역은 연체금액 3번째로 많다.

"한달 이상 연체한 적은 없지만 며칠 밀린 적은 있어요. 독촉전화에, 문자메시지에 당연 신경이 곤두서죠.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단 하루 지났을 뿐인데 금융기관에서 곧장 부모님한테 전화를 한 거예요. 저도 성인인데, 당사자한테 하지 않고 부모님한테 전화를 건 사실이 화가 났죠. 안 그래도 부모님은 늘 미안해 하며 안쓰러워 하시는데."

자조 섞인 평가 "그래도 전 행복해요"

졸업전 이미 수천만 원의 빚을 떠 안게 된 신아롱씨. 그래도 자신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성적 제한 규정 탓에 정부보증 학자금 대출은 꿈도 못꾸고 이자율이 훨씬 높은 사금융에서 대출을 받아야 한 학생들보다 그래도 제가 행복하지요."

이자와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지도 않았으니 아롱씨의 자조섞인 평가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후배들에게도 그는 학자금 대출 이용을 권할까.

"학자금 대출이 '독배'는 아니죠. 다만 확고한 자기목적이나 목표의식이 동반되지 않으면 학자금 대출은 정말 독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 대학을 다니고, 여기서 무엇을 해야 될지, 진지한 고민은 제쳐놓은 채 하나의 간판만을 얻기 위해 대출로 등록금을 충당하고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시간을 보낸다면, 너무 큰 손실이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23호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 등록금, #학자금대출, #등록금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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