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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308루피에 비해

 

.. 주민 1인당 소득을 보면 1969∼1970년에 동파키스탄의 308루피에 비해, 서파키스탄은 534루피이다 ..  《제3세계의 발자취》(거름,1983) 30쪽

 

 "주민(住民) 1인당(一人當) 소득(所得)'은 그대로 둘 수 있습니다만, "주민 소득"이나 "주민들 벌이"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동파키스탄의 308루피"는 "동파키스탄 308루피"나 "동파키스탄은 308루피"로 손봅니다.

 

 ┌ 비하다(比-)

 │  (1) 사물 따위를 다른 것에 비교하거나 견주다

 │   - 어머니의 사랑을 어디에다 비하랴 /

 │  (2) '비교'의 뜻을 나타낸다

 │   - 다른 작물에 비하면 생산비가 덜 든다 /

 │     그는 사진에 비해서 실물이 훨씬 더 좋은 인상을 풍겼다

 │  (3) '견주어 말한다면' 또는 '비유하자면'의 뜻을 나타낸다

 │   - 낭비가 심한 그에게 돈을 주는 것은, 비하건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 비교(比較) : 둘 이상의 사물을 견주어 서로 간의 유사점, 차이점, 일반 법칙

 │     따위를 고찰하는 일

 │

 ├ 동파키스탄의 308루피에 비해

 │→ 동파키스탄 308루피에 견주면

 │→ 동파키스탄은 308루피인데

 │→ 동파키스탄은 308루피이지만

 └ …

 

 '비교'하거나 '견주'는 일을 가리켜 외마디 한자말로 '比하다'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국어사전 풀이에 나옵니다. 그런데, 한자말 '비교'를 국어사전 뜻풀이로 살피면 '견주다'를 가리킨다고 나옵니다. 그러면, '比하다'란 "견주거나 견주다"인 꼴이 됩니다.

 

 말풀이가 엉터리입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 토박이말 '견주다' 한 마디만 하면 넉넉한데, 이처럼 우리 스스로 알맞고 깔끔하게 쓸 줄 모르는 셈입니다. 군더더기 한자말을 끝없이 받아들여 우리 말살림을 깔아뭉개는 노릇입니다.

 

 ┌ 어머니의 사랑을 어디에다 비하랴 → 어머니 사랑을 어디에다 견주랴

 ├ 다른 작물에 비하면 → 다른 곡식보다 / 다른 곡식을 생각하면

 ├ 사진이 비해서 → 사진보다 / 사진과 견주면

 └ 비하건대 → 말하자면 / 빗대어 말한다면

 

 우리 말 '견주다­'와 거의 똑같이 쓰는 '대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다'와 '살피다'와 '헤아리다' 같은 낱말을 넣으면서, "동파키스탄은 308루피임을 생각하면"이나 "동파키스탄은 308루피임을 살피면"이나 "동파키스탄은 308루피임을 헤아리자면"처럼 손질해 보아도 됩니다.

 

 

ㄴ. 꼬리가 짧은 편인데 비해

 

.. 몸집이 큰 수리는 꼬리가 짧은 편인데 비해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꼬리가 길어서 날렵하게 방향을 바꾸며 날기에 알맞다 ..  《김수일-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지영사,2005) 59쪽

 

 "방향(方向)을 바꾸며"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나는 곳을 바꾸며"나 "이쪽저쪽 바꾸며"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꼬리가 짧은 편인데 비해

 │

 │→ 꼬리가 짧은 편이지만

 │→ 꼬리가 짧기는 해도

 │→ 꼬리가 짧지만

 │→ 꼬리가 짧으나

 └ …

 

 이 보기글은 "몸집이 큰 수리는 꼬리가 짧다.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으로 나뉜 글이었습니다. 이 둘을 하나로 묶으면서 이음씨를 넣어야 했는데, 알맞는 이음씨가 들어가지 못하고, 외마디 한자말 '比하다'가 끼어들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꼬리가 짧다. 그러나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처럼 적거나, "꼬리가 짧다. 그렇지만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처럼 적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꼬리가 짧지만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이나 "꼬리가 짧은데, 이와 달리 몸이 작은 수리과 새들은 ……"으로 다듬어 봅니다.

 

 이야기 흐름을 살피고, 글쓴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돌아보면서, 가장 알맞거나 걸맞는 낱말이나 이음씨나 토씨를 붙여 줍니다. '비하다'라는 낱말이 뜻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면, '-와 견주어'나 '-와 빗대면'이나 '-을 생각하면'을 넣어 줍니다.

 

 

ㄷ. 카네기 홀에서의 음악 감상과 비할까

 

.. 모든 소리가 잠든 선이골의 밤에 촛불 아래 옹기종기 앉아서 〈스텐카라친〉이나 〈새벽의 노래〉 〈어머니인 대지〉 등 무반주로 부르는 러시아 혼성 합창단의 민요를 감상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카네기 홀에서의 음악 감상과 비할까 싶은 생각도 든다 ..  《김용희-선이골 외딴집 일곱 식구 이야기》(샨티,2004) 53쪽

 

 '등(等)'은 '들'로 다듬고, '무반주(無伴奏)로'는 '반주 없이'로 다듬습니다. "합창단의 민요를 감상(鑑賞)하는 모습"은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를 듣는 모습"으로 손질하고, "카네기 홀에서의 음악(音樂) 감상"은 "카네기 홀에서 듣는 노래"로 손질합니다.

 

 ┌ 카네기 홀에서의 음악 감상과 비할까 싶다

 │

 │→ 카네기 홀에서 듣는 노래가 이와 견줄 수 있을까 싶다

 │→ 카네기 홀에서 듣는 노래가 이보다 나을까 싶다

 │→ 카네기 홀에서 듣는 노래보다 더 좋다

 │→ 카네기 홀에서 듣는 노래보다 한결 낫다고 느낀다

 └ …

 

 이 글을 쓰신 분은 모두 잠든 시골에서 듣는 노래가 그지없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집에서는 그다지 훌륭하다 할 수 없는 카세트로 듣는 노래일 텐데,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듣는 노래와 견주어 빠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꼭 으리으리한 공연장에서 듣는 노래여야 가슴을 적실 수 있지는 않다고, 고즈넉한 산골짝 외딴집에서 바람과 흙과 물과 나무 기운을 함께 받아들이면서 듣는 노래 하나가 마음을 더 깊이 움직인다고 이야기합니다.

 

 책을 읽다가 한동안 덮고 눈을 감습니다. 우리가 듣는 노래란, 자연이 내는 소리를 따오는 기계 소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리 가운데에도 우리 느낌을 북돋우고 우리 사랑을 일깨우는 가락이 틀림없이 있습니다. 시끄럽고 복닥이는 도시에서도 우리 가슴과 믿음을 건드리는 가락은 아예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리와 가락은 얼마나 노래가 될 수 있고, 뭇 악기를 타고 치고 켜고 두들기는 소리와 가락은 어디까지 노래라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악기를 타고 치고 켜고 두들기는 사람 스스로 흐뭇하면서 아름다워지는 소리요 가락인지, 이런 소리와 가락을 듣는 사람들 모두 아름다워지게 되는 노래결인지, 이 노래결이 자연과 어우러지게 될 때에는 어떻게 될는지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우리들 날마다 끝없이 뇌까리고 끄적이는 수많은 글자와 말마디는 우리네 자연과 섞이게 될 때 얼마나 아름답거나 싱그럽거나 고마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는지 곰곰이 되씹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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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마디 한자말#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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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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