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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막장드라마는 니년 인생이 막장드라마야. 그 나이 먹도록 시집도 못 가고 그냥 살은 디룩디룩 쪄서는, 이제 직장까지 없어질 판국에 니가 막장이 아니고 뭐야. 너 이렇게 막 나가도 되는 거야!"

회사사정이 어려워져 한 달간의 '무급' 휴가를 보내고 있는 영애. 소파에 누워 과자를 우걱우걱 먹으면서 "엄마 좋아하는 막장드라마 한다"고 말하는 그녀를 "막장 드라마는 니년 인생이 막장드라마"라며 구박하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도 '리얼'하다. 32살, 나이는 먹어 가는데 남자도 없고 돈도 없고 이제는 직장까지 위태위태해진 '막 나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영애씨>, tvN 매주 금요일 밤 11시 방송)가 시즌5로 돌아왔다.

예쁘지도 늘씬하지도 않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도 없는 영애씨의 이야기가 '국내드라마 사상 최초'로 시즌5까지 올 수 있었던 힘은 '리얼리티'에 있다. 영애씨의 삶이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영애씨>의 성공 뒤에는 특유의 '리얼리티'를 온몸으로 소화하는 배우 김현숙(32)이 있다. tvN 송창의 대표가 기획단계부터 그녀를 염두에 두고 <영애씨>를 만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영애씨> 시즌5 첫 방송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지난 3월 6일,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현숙씨'를 만났다.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이런 현실적인 드라마를 꼭 해보고 싶었다"는 현숙씨는 '영애씨'를 "운명 같은 캐릭터"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영애씨>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시즌1으로 돌아간 느낌... 편안하면서도 설렌다"

<막돼먹은 영애씨> '영애씨' 김현숙.
 <막돼먹은 영애씨> '영애씨' 김현숙.
ⓒ MK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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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시청자 게시판 보니까 '영애씨가 너무 예뻐지고 살도 많이 빠져서 시즌 1, 2 때만큼 포스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
"잔인한 인간들, 내 인생은 어떻게 하라고(웃음). 아니, 그리고 영애도 명색이 디자이너인데 발전이 있어야지."

- 6일, 첫 방영인데 소감이 어떤가?
"소감은 뭐, 좋다. 시즌4 때는 이상하게 사람마다 그런 리듬이 있는지 '내가 예전처럼 찍고 있는 건가' 긴가민가한 느낌이 많았는데, 시즌5는 마음도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것 같고 촬영하면서도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열심히 해야겠다,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랬더니 오히려 시즌1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편안하면서도 설레고 그렇다."

- 시즌5가 시작되기 전까지 석 달 정도 공백 기간이 있었는데, 쉬는 동안 뭐했나?
"이번에 쉴 때는 면허를 땄다. 여행을 가볼까 했는데 안 되더라."

- 보통 쉴 때는 뭐하나?
"쉴 때는 멍해진다. 그래서 약간 우울증이 온다. 너무 피곤할 때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쉴 때면 TV나 보고 책 보고 음악 듣고. 나이 들고 머리가 커갈수록 사람들 만나는 것도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고, 시간도 잘 안 맞고. 그래서 쉴 때는 진짜 '멍 때리고' 있다. 생각 많이 하고. 평소에도 워낙 생각이 많아서. 때론 서글퍼지기도 한다.  남자친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근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잖아."

- 보이는 이미지는 괄괄하고 밝을 것 같은데 미니홈피나, 인터뷰한 거 보면 감성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원래 그렇다. 시는 기형도, 음악은 김광석, 유재하, 김현식, 이문세, 부활의 이승철, 양희은 선생님, 이런 부류를 좋아한다. 사람마다 좀 다른데 힘들 때 밝은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경우에는 '센치한' 음악을 들으면서 힘을 얻는 스타일이다. 얼마 전 모자 쓰고 집 앞 극장에 가서 <워낭소리> 보고 펑펑 울었다."

"개그-연기 표현방식 다를 뿐 한 맥락... 페이소스 있는 웃음 주고 싶어" 

-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을 한 걸로 알고 있다.
"원래는 미술을 했다. 배운 적은 없었는데 4, 5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엄마가 시장 갈 때 따라가서 개나 해산물 같은 거 그리고 그랬다. 서울까지 올라가서 상도 받고. 음악도 좋아해서 피아노도 치고. 그러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언니들이 와서 PR을 하는데 마치 홀린 것처럼 '저거다' 싶었다. 그때부터 연극에 미쳤다.

- 어릴 때부터 '끼가 있다', '연예인 해라'는 소리를 들었나?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똑 부러지고 여시(여우) 같고, 그때는 살도 안 쪘다(웃음). 그래서 엄마는 변호사 등 공부 쪽으로 시키려고 했단다. 그러다가 성격이 확 바뀌게 됐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 나섰는데 '아, 정말 사람들이 나를 주목해주고 인정해주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는 '명물'로 불릴 정도로 움직였다. 중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해운대 일대에서 유명했다. 교장선생님도 다 알고. 그때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선생님이 '얘는 (연예계로) 진출하겠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정작 나는 그런 생각 안 했는데 말이다."

- 개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대학교 다닐 때 박준형 오빠가 <캠퍼스 최강전>이라는 프로그램 리포터로 우리 학교를 찾았다. 그때 데뷔제의를 받았다가 거절했는데 그 후, 서울 올라와서 컬트 트리플 정성환씨가 연출한 <쇼 뮤지컬 펑키펑키>에 출연했는데, 같이 출연했던 김지혜가 박준형 오빠에게 날 소개시켜줬다. 오빠도 날 기억하고 있었고. 그때도 한 3번은 거절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입견이 강하니까 어떤 직업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빠가 그러더라. 이런 기회가 흔치않고 니가 좋아하는 연기도 이쪽(개그)으로 빨리 이름을 알리게 되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지 않느냐고 했다. 하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진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다른 것들을 먼저 경험해보는 것도 축복인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다."

- 다시 개그로 복귀할 생각은 없는지.
"개인적으로는 표현의 방법이 다를 뿐이지 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개그라는 것은 1, 2분 내에 순간의 에너지를 폭발하는 장르고 드라마나 영화는 긴 호흡으로 여러 가지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건, 개그나 드라마나 영화나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페이소스 있는 웃음을 팬들에게 선사하고 싶다."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 계약직 연기 서러워 눈물"

<막돼먹은 영애씨>시즌5 제작발표회 현장
 <막돼먹은 영애씨>시즌5 제작발표회 현장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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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애씨> 이야기를 해보자.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을 텐데 직장인의 삶을 연기하면서 어려움은 없나?
"직장인으로서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홀어머니 밑에서 크다 보니까, 경제적인 형편이 받쳐주질 않아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 음식점 쪽은 안 해본 데가 없을 정도다. 갈비, 생선, 칼국수, 닭, 호프… 거의 다 해봤다. 시즌1에서 생수통 갈고 이런 거, 칼국수 집에서 다 해봤던 일이다. 사람 머리통만한 양파를 하루에 네 망씩 까기도 했고. 그리고 유선방송에서도 일했는데 거기가 딱 우리 사무실('아름다운 사람들')만한 크기였다. 전화도 받고 상담도 하고. 내가 영애처럼 수년간 사무실에서 일한 건 아니지만 다양한 일을 해보고 별의별 주인을 만나보고 그랬다. 그러한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 이번 시즌5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린기획에 합병되면서 영애가 계약직이 된다는 것이다.
"연기를 할 때는 하는 척하면 안 되지 않나. 3회까지 찍었는데 몰입해서 찍다 보니까 정말 서럽더라. 대사를 하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먹고살기 힘든 직장인들의 서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 시즌5 제작발표회 때 "영애가 헛똑똑이고, 어설픈 면이 많아서 연하들이 등쳐먹기 좋다. 원준이 같은 사람 만나면 여자는 고생이다"라고 말했다. 혹시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말인가?  
"아니다. 물론, 어릴 때 바람둥이를 만나본 적은 있지만(웃음). 전수경(뮤지컬 배우) 선배가 나랑 띠동갑인데 '너는 친구 같고 심지어 언니 같다'고 말할 정도로 내가 나이답지 않게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생활력이 강했고 남자를 고를 때도 신중한 면이 있었다. 나는 외모도 중요하지만 못생겨도 보면 볼수록 정감 가는 얼굴, 내공이 있는 사람이 좋다. 외모보다는 코드가 맞는 사람이 좋다."

- 극중 영애는 평소에는 강하다가도 남자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약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시즌4에서 영애가 꽃미남 원준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집착할 때 '영애답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시즌4 시작할 때 제작진들에게 얘기 많이 했다. 영애가 너무 영애답지 않다고. 하지만 영애라고 어떻게 강할 수만 있겠나. 사랑에 서툴다 보면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 아니겠나. 초창기에 우리 메인작가 중에 박민영 작가라고 있었다.

내가 영애의 약한 모습을 보고 '언니, 나는 이렇지 않아'라고 말했을 때 그 언니 말이 '현숙, 현숙은 요즘 여자들 치고 본인의 외모와 상관없이(웃음) 콤플렉스가 좀 덜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이 다 현숙 같지는 않아. 그러니까 니가 일반여성들의 약한 모습을 인정할 줄 알고 대표해야 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뻥'하더라. 영애의 삶은 일반 직장인 여성들을 대변해야 하는 거고, 깨지고 쓰러지는 과정들을 적나라하더라도 리얼하게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애씨'는 내게 운명 같은 캐릭터"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5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5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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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간 함께 했으니, <영애씨> 팀워크가 좋을 것 같다.
"가족 같다. 우리끼리 1박2일로 돈 모아서  MT도 가고. 등산도 같이 가고. 인연인 것 같다. 다른 드라마나 영화가 다 이렇지는 않은 것 같은데 처음부터 조합이 좋았던 것 같다. 끝까지 잘 가야지." 

- 시즌5까지 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많다. 여러 번 이야기했는데 시즌 1이었나. 첫사랑한테 속아서 창고에 갇히는 거 진짜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날씨와 관련된 에피소드. 비 오는 날에는 항상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 나오고 헤어졌던 연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고….  마지막에 그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영애가 그날도 어김없이 소주를 한 잔 먹고 가다가 '어, 비 그쳤네'하면서 우산을 끄는데 '우리는 비가 그쳤다고 해서 우산을 버릴 수 없다. 내일을 살기 위해 어제를 버릴 수 없듯이.' <영애씨>라는 드라마가 소소한 일상의 발견할 수 있게 해줬다."

- '개그콘서트' 출산드라도 그렇고, 영애씨도 그렇고 워낙 성공했고 또 강한 캐릭터다. 이미지가 고정될 거라는 부담은 없나. .
"부담은 없다. 오히려 강한 걸 해 놓으니까 약한 걸 하면 '이미지 변신 잘했다' 할 거 아닌가. 솔직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다. 프로라면 내가 좋아서 한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는 게 기본적인 자세이자 태도 아닌가. 출산드라 할 때도 사람들이 대놓고 이야기했었다. '이거 너무 강해서 넌 끝났다.' 나 혼자만 그렇게 안 믿었던 것 같다.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니까. 그래서 남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늘 담담하다."

- 김현숙에게 <영애씨>는 어떤 의미인가.
"나한텐 운명 같다. 방송을 하지 않던 시절에도 TV를 보면서 '저 상황이라면 현실에서는 안 저럴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현실적인 드라마를 하고 싶다고 항상 꿈꿔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런 기회가 왔다. 내게는 운명 같은 캐릭터다."


태그:#막돼먹은 영애씨, #영애씨,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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