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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처음 시작했다

 

.. 그냥 평생 약사로 일하다가 정년 퇴직한 뒤에 조각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  《리타 페르스휘르/유혜자 옮김-아빠의 만세발가락》(두레아이들,2007) 31쪽

 

 '평생(平生)'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온삶'으로 다듬을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이나 '오래도록'이나 '늙도록'으로 다듬으면 잘 어울립니다.

 

 ┌ 시작(始作) : 어떤 일이나 행동의 처음 단계를 이룸

 │   - 공연 시작 / 업무 시작 /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

 │     시작도 끝도 없다 / 내 일과의 시작은 신문을 읽는 것이다

 │

 ├ 조각을 처음 시작했다고 한다

 │→ 조각을 처음 했다고 한다

 │→ 조각을 처음 해 보았다고 한다

 │→ 조각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 …

 

 한자말 '시작'은 "처음(始) + 하다(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한다"가 '시작'입니다. 보기글을 보면 "처음 시작했다"로 나옵니다. 이 글월 뜻풀이는 "처음 처음 했다"가 될 테지요? 한자말 '시작'이 좋다면, "조각을 시작했다고 한다"처럼 적어 주어야 하는데, 그냥 '처음'을 넣을 때가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 정년 퇴직한 뒤부터 조각을 했다고 한다

 ├ 정년 퇴직 뒤부터 조각을 했다고 한다

 ├ 정년 퇴직을 하고부터 조각을 했다고 한다

 └ …

 

 또는, 다른 꾸밈말을 넣지 말고 토씨 '-부터'를 '뒤' 다음에 붙여 봅니다. 토씨 '-부터'는 어떠한 일을 처음으로 하게 된 때를 나타냅니다.

 

 ┌ 공연을 시작한다 → 공연을 한다 / 이제 막 공연을 한다

 ├ 업무 시작 → 일하기

 ├ 수업 시작을 알리는 → 수업을 한다고 알리는

 ├ 시작도 끝도 없다 → 처음도 끝도 없다

 ├ 내 일과의 시작은 신문을 읽는 것이다

 │→ 내 하루는 신문을 읽으며 연다

 └ …

 

 꼭 '시작'이어야만 우리 뜻과 생각과 느낌을 담아낼 수 있다고 여긴다면, 이 한자말을 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한자말을 넣든 다른 한자말을 넣든, 올바르게 넣을 노릇입니다. 앞뒤 어긋나지 않도록 살피고, 얄궂게 겹말이 되지 않도록 돌아볼 노릇입니다.

 

 여기에 조금 더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자기한테만 즐겁고 기쁠 낱말이나 말투를 넘어서, 이웃을 헤아리는 낱말과 말투를 살피고, 조금 더 마음을 쏟아 우리 삶자락과 문화를 고이 북돋우는 낱말과 말투를 돌아보아 줍니다.

 

ㄴ. 다른 문화의 이질성

 

.. 메이지 초기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다른 문화의 이질성을 자각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인식하려는 욕구가 강해질 때에 ..  《마루야마 마사오, 가토 슈이치/임성모 옮김-번역과 일본의 근대》(이산,2000) 41쪽

 

 "메이지 초기(初期)에 관(關)해서도 마찬가지로"는 "메이지 첫무렵도 마찬가지로"로 손봅니다. '결국(結局)'은 '마침내'로 손보고, '자각(自覺)하고'는 '깨닫고'로 손을 봅니다. "완벽(完璧)하게 인식(認識)하려는 욕구(欲求)가 강(强)해질"은 "빈틈없이 깨달으려는 마음이 커질"로 손질합니다.

 

 ┌ 이질성(異質性) : 서로 바탕이 다른 성질이나 특성

 │   - 통일 이후 남북한 이질성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다른 문화의 이질성을 자각하고

 │→ 다른 문화를 깨닫고

 │→ 문화가 다름을 깨닫고

 └ …

 

 '이질성'은 "다른 성질"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보기글은 "다른 문화의 이질성"을 이야기합니다. 말뜻을 살피면 "다른 문화의 다른 성질"이에요. 무슨 소리일까요? 다른 문화이니 성질 또한 다를 텐데, 이 보기글에서는 "다른 문화가 얼마만큼 다른가" 하는 이야기를 묻는 대목이라고 느끼면서도, 이렇게밖에 글을 옮겨적어야 했는가 싶어 아쉽습니다. 한결 또렷하게, 좀더 알맞춤하게, 한껏 싱그럽게 옮겨적을 수 있었을 텐데요.

 

 ┌ 문화가 어떻게 다른가를 깨닫고

 ├ 문화가 저마다 어떠한가를 깨닫고

 ├ 서로서로 어떤 문화인가를 깨닫고

 ├ 서로서로 다른 문화임을 깨닫고

 └ …

 

 다르니 '다르다'고 말합니다. 서로 다름을 헤아리니 '서로 어떤 모습인가'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서로 어떤 모습인가를 가만히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렇고 저쪽은 저러함을 알게 됩니다. 다 다름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우리대로 아름답고 저쪽은 저쪽대로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면서 즐거이 어깨동무할 길을 찾아나섭니다.

 

 ┌ 남북한 이질성 극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 남북녘이 서로 다르게 걸어온 길을 무엇보다 잘 다스려야 한다

 │→ 남북녘이 저마다 달리 꾸렸던 삶을 무엇보다 잘 추슬러야 한다

 └ …

 

 우리 말은 한자말과 다릅니다. 한자말은 미국말과 다릅니다. 미국말은 또 우리 말하고 다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말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한자말과 미국말이 무엇인지 또한 모릅니다. 하나도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한글을 대충 떼고 우리 말을 어영부영 배울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너무 일찍 한자 지식을 머리속에 쑤셔넣고, 너무 빨리 미국말 지식을 입과 귀에 익숙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무엇을 꿈꾸는지 생각조차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길을 신나게 걸어갈는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러면서 지식조각만 잔뜩 끌어안도록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어른이 된 사람도 닦달을 받습니다.

 

 넋이 아닌 지식조각만 있으니, 세상을 올바르게 헤아리지 못합니다. 얼이 아닌 지식부스러기만 있으니, 사람을 꾸밈없이 껴안지 못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어릴 적 익힌 그대로 오래오래 제 삶을 꾸린다는 소리인데, 오늘 우리는 우리 아이나 우리 스스로 모두한테 참사랑과 참믿음을 나누면서 즐겁게 사는 길은 내팽개칩니다. 아니 처음부터 모르면서, 지식으로 돈벌이만 하도록 길들입니다. 스스로 바보가 되는 우리들이며, 아이들 또한 바보처럼 살아가도록 짓누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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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중복표현#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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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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