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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 기차 복도에서 면도를 할 때 그는 거울 속의 얼굴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지난 몇 달 동안 그 얼굴은 그를 항상 교활하게, 공범으로서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  《존 버거,장 모르/김현우 옮김-행운아》(눈빛,2004) 227쪽

 

 '복도(複道)'는 그대로 두어도 되나 '골마루'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면도(面刀)를 할 때"는 "수염을 깎을 때"로 다듬고, "거울 속의 얼굴"은 "거울에 비친 얼굴"로 다듬어 줍니다. '항상(恒常)'은 '늘'로 손질하고, '교활(狡猾)하게'는 '이죽거리며'나 '밉살맞게'나 '빈정대며'로 손질하며, '공범(共犯)으로서'는 '함께 잘못한 사람으로서'로 손질합니다.

 

 ┌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

 │→ 비웃듯이 바라본다

 │→ 손가락질하듯이 바라본다

 │→ 나무라듯이 바라본다

 │→ 꾸짖듯이 바라본다

 └ …

 

 '비평(批評)'하여 '판단(判斷)'하는 일이라 하는 한자말 '비판'을 생각해 봅니다. 비평이란 '분석(分析)하여 가치를 논(論)하는' 일이라 하고, 판단이란 "인식하여 판정을 내리는" 일이라 합니다. 말풀이에서 끝없이 거듭 이어지는 '분석'과 '가치'와 '논하다'와 '인식'과 '판정'은 또 어떤 낱말로 풀이가 달릴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느 한 낱말을 어떻게 알아듣거나 알아차리고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낱말뜻이나 낱말 씀씀이를 참되거나 올바르게 헤아리지 못하면서 돌림풀이(순환정의)에 매여 있지 않나 궁금합니다. 손쉽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면 그만인 낱말을 자꾸자꾸 어렵게 쓰거나 비틀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곰곰이 살피면, "옳고 그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거나, 값어치가 어떠한가를 생각하는" 일이 '판단'입니다. "낱낱이 살펴보며 값어치를 밝히는" 일이 '비평'입니다. 이 두 가지를 더한 '비판'은 "옳음과 그름과 값어치를 차근차근 생각하면서 말하는" 일입니다. '따지며 말하기' 또는 '생각하며 말하기' 또는 '파헤치며 말하기' 또는 '참과 거짓을 밝히며 말하기'가 '비판'인 셈입니다.

 

 ┌ 씁쓸히 바라본다

 ├ 쓰겁게 바라본다

 ├ 쓰디쓰게 바라본다

 ├ 쓸쓸히 바라본다

 ├ 차갑게 바라본다

 └ …

 

 보기글을 살펴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줏대 없이 여러 해 살던 이가 비로소 제 줏대를 찾게 되는 때 제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비판적'이라는 낱말을 넣었습니다. 스스로 참다운 제 모습을 내버리고 살았던 일을 곱씹고 있습니다. 이때를 가리키는 낱말이라면 '씁쓸하다'나 '쓰디쓰다'가 걸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는 '차갑게'나 '차디차게'가 알맞을 수 있습니다. 말하는 이 스스로 어떤 느낌인가를 헤아리면서 '쓸쓸하게'나 '안타까이'를 넣어도 되고, '부끄럽게'나 '남우세스럽게'를 넣어도 괜찮습니다.

 

 

ㄴ. 세상을 비판적으로 읽도록

 

.. 더 이상 학생들이 세상을 비판적으로 '읽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읽기 도구를 '숙달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해졌다 ..  《헨리 지루/이경숙 옮김-교사는 지성인이다》(아침이슬,2001) 52쪽

 

 '더 이상(以上)'은 '더는'으로 다듬습니다. "돕는 것이 아니라"는 "돕지 않고"로 손보고, '숙달(熟達)하도록'은 '익숙해 하도록'이나 '생각을 맞추도록'으로 손봅니다. "돕는 것이 중요(重要)해졌다"는 "돕도록 바뀌었다"나 "돕도록 마음을 쓰고 있다"로 손질합니다.

 

 ┌ 비판적으로 읽도록

 │

 │→ 올바르게 읽도록

 │→ 있는 그대로 읽도록

 │→ 옳고 그름을 가리면서 읽도록

 │→ 속깊이 살피도록

 │→ 파헤치면서 읽도록

 │→ 꿰뚫어보면서 읽도록

 └ …

 

 세상을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 눈이라면,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추스르지 못합니다. 자기 생각을 올바르게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말이 올바르게 나오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생각을 올바르게 추스르고, 생각을 올바르게 추스를 때 바야흐로 말이 올바르게 나오기 마련입니다.

 

 우리 교육 터전이며 사회 흐름이며 살펴보면, 어릴 적부터 나이가 들어서까지, 세상을 올바르게 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그저 교과서 지식만 쑤셔넣습니다. 대학입시 하나에 목매게 합니다. 돈 많이 버는 사무직 일자리에 얽히도록 하고, 더 많은 물질문명을 쓰고 버리는 매무새에 길들게 합니다.

 

 우리 삶이며 삶자락이며 삶터며 삶매무새며, 스스로 엉터리나 바보가 되도록 내버려 둔다면, 우리 넋과 얼이란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없어집니다. 이슬처럼 사라지고, 아지랑이처럼 녹아버립니다.

 

 메마른 가슴에서는 메마른 말입니다. 차가운 머리에서는 차가운 글입니다. 기울어진 마음에서는 기울어진 말입니다. 시커먼 몸에서는 시커먼 글입니다. 삶과 말이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과 글이 동떨어지지 않아요. 모두 한 가지입니다. 한동아리입니다. 삶을 어떻게 추스르느냐에 따라서 말이 어떻게 펼쳐지느냐가 갈리고, 삶을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따라서 글이 어떻게 쓰이느냐가 갈립니다. 올바르게 보는 눈에 따라 올바르게 나누는 말이요, 아름다이 껴안는 몸짓에 따라 아름다이 적어내려가는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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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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