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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다. 내가 교육관련 서적을 읽는 가장 큰 이유도 아이들을 위해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교사로서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꿈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요, 권장할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도 있듯이, 아무리 좋은 꿈이라고 해도 그것이 과하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아이들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목적이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고, 그 수단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 무렵 아이들에게 퍼부은 사랑이 죄다 그런 식은 아니었을 테지만, 좋은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앞서다보니 정작 아이들은 뒷전으로 밀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그런 불순한 사랑이 실패로 돌아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6개월(국내 5개월, 국외 1개월)과정인 중등영어교사 심화연수를 앞두고 접하게 된 <교사들의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Chicken Soup for the Teacher's Soul)를 읽는 동안 줄곧 머리에 떠오른 아이들이 있었다. 초임교사 시절 내가 사랑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편애한 아이들이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내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 책의 저자인 잭 캔 필드(Jack Canfield)는 '어머니를 위한 101가지 이야기(Chicken Soup for Mother's Soul)'등 속의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꽤 알려진 작가다. 짧으면서도 감동적이고 치유력이 있는, 그야말로 닭고기 수프처럼 영양가 있는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이 가슴에 와 닿으면서도 왠지 그 감동이 쉽게 사그라들곤 했었다. 하긴 긴 이야기를 짧은 에피소드로 압축하여 소개하다보면 그런 부작용 같은 것이 생길 법도 하다.
  
어쨌거나 달작지근한 당의정을 복용한 듯한 그런 느낌을 이번에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영문 원서를 더딘 속도로 읽다보니 그랬는지 마치 흙속에서 진귀한 보석을 캐내는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100편 가량의 에피소드를 모두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성싶다. 하여, 다시 책을 펼치지 않아도 대강의 줄거리를 기억할 수 있는(그만큼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온) 두 편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할까 한다.      
               
다섯 번째 줄에 앉은 소녀

대학 강단에 처음으로 서는 그날, 그는 입술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초조하고 불안했다. 학생들을 향해 억지로 짓는 웃음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고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의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거의 공포상태에 가까운 그런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중 그는 자신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는 한 여학생을 발견한다. 그녀는 그에게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눈빛을 보여주었고,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 내용에 크게 공감하는 표정도 지어 보인다. 

그녀 덕분에 첫 강단에서의 열패감을 극복하고 자신감과 열정을 되찾은 그는 그녀의 이름이 Liani인 것을 알아내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제출한 과제물 등을 통해 그녀가 대단히 창의적이고 섬세한 감각을 지닌 학생임을 알게 된다. 그는 그녀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를 갖기 위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연구실을 방문해도 좋다고 말한다.

첫날 그를 구해준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하고 싶었고, 그녀의 내적인 아름다움과 재능을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작용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고, 한 달 남짓 지나서는 2주씩이나 수업을 빼먹는다.      

그는 학생들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알고자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존재를 기억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는 학장을 찾아가 그녀가 차를 몰고 가다가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고, 그녀에게 신이 주신 그녀만의 고유함이 (uniqueness)이 영원히 사라진 것에 대하여 그는 진한 슬픔을 느낀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동료교수들에게 오열하듯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바쁘지만 Liani가 진정으로 알아야할 기쁘게 사는 법, 그리고 자신의 가치와 존귀함을 알게 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읽고 쓰고 계산하는 그런 것들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물음은 그 후 대학 강단에서 사랑 수업(Love Class)을 공식적으로 개설하는 계기가 된다. 그 뒷이야기는 책을 통해서 직접 읽기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경험을 갖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 적용이다. 두려운 마음으로 첫 강단에 선 신출내기 교수를 환한 미소와 적극적인 반응으로 구제해준  아름다운 내면을 지닌 한 젊은 여성의 자살로 인해 그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는 교수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을 향한 나의 눈빛이 사뭇 달라질 수 있었던 것처럼. 
     
5월의 금요일 밤

노라는 엄마에게 워커 선생님이 자신의 재즈공연에 와 줄 것이라고 말한다. 워커 선생님은 노라가 책을 좋아하고 사색적이고 정돈을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준 1학년 때 선생님이시다. 선머슴 같았던 노라에게 춤을 배울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준 분도 바로 워커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딸에게 잘해준 워커 선생님이라고 해도 그가 딸의 데뷔공연에 와주리라는 기대하지 않았다. 재즈 공연이 있을 5월 금요일 밤에 워커 선생님은 딸의 공연보다는 더 중요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철없고 순수하기만 한 딸이 현실의 세계에 눈을 떠가면서 경험하게 될 실망감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었다. 곧 무대에 서게 될 딸의 분장을 위해 분주하게 손을 놀리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그런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딸에게 워커 선생님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몇 번 주었지만 워커 선생님에 대한 노라의 절대적인 신뢰를 흔들어놓지는 못한다.

드디어 공연 날이 다가오고, 무대의 막이 오르자 엄마는 극장 뒤쪽을 흘금 바라보다가 워커선생님을 발견한다. 엄마는 반가움에 달려가 워커 선생님의 손을 잡아끌듯이 하여 딸이 꼭 잡아놓으라고 부탁한 자리에 그를 앉힌다. 공연이 끝나자 엄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무대 뒤편으로 달려간다. 엄마를 보자마자 딸은 워커 선생님이 자신의 데뷔 공연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러자 엄마가 딸에게 이렇게 묻는다.   

"워커 선생님이 오신 줄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았어요."

그냥(just)이라는 단어에 내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노라는 무대 뒤로 찾아간 엄마에게 "워커 선생님 오셨어요?"라고 물었어야 했다. 하지만 워커 선생님을 잘 알고 있는 노라는 그 질문을 생략한 것이다. 그런 딸을 보고서야 엄마는 워커 선생님이 5월의 금요일 밤에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어린 제자의 데뷔 공연을 보러 오는 일이었다.

나에게도 노라와 같은 제자가 존재할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왜 제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좋은 교사가 되고 싶은 나의 과도한 열망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열망보다는 아이들이 먼저였다면 상황은 사뭇 달라졌으리라. 이제 나도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 '그냥' 아이들을 사랑할 뿐인.

덧붙이는 글 | 3월 2일~8월 21일까지 약 6개월 과정으로 전남교육연수원에서 운영하는 JLP중등교사심화연수에 참여합니다. 연수 전 과제물로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 독후감을 일부 손질하여 올립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책의 국내 번역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쉬운 영어로 되어 있어서 좋은 교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잭 캔필드의 어머니를 위한 101가지 이야기 - 하

잭 캔필드 외 지음, 정경호 옮김, 해바라기(2001)


잭 캔필드의 어머니를 위한 101가지 이야기 - 상

잭 캔필드 외 지음, 정경호 옮김, 해바라기(2001)


#좋은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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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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