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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Baby in car

아기를 안고 성당 나들이를 하던 지난 일요일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세 해 동안 애쓰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 신부님 마지막 모습을 지켜 보고자 부랴부랴 발걸음을 옮깁니다. 포대기로 감싼 아기가 춥지 않도록 꼭 안고 골목길을 걸어가는데, 골목 한켠에 세워진 차 옆으로 비껴 가다가, 차유리 앞에 붙은 딱지 하나에 눈길이 멎습니다. “Baby in car”. 예쁘장한 그림이 박힌 딱지를 보면서, 이렇게 쪽글을 적어서 붙여놓기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손글씨로 “아기가 차에 타고 있어요.” 같은 말을 적었다고 떠올려 봅니다.

 ㄴ. VIPS 스탭 모집

인천에서 전철을 타고 돌고 돌아 일산 주엽역에 닿습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집으로 가기 앞서 선물 몇 가지를 장만한 다음 택시를 탑니다. 짐 많고 가방 무겁고 아기가 힘들어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모처럼 택시를 타니 그야말로 느긋합니다. 홀가분하게 길거리를 둘러봅니다. 비록 불빛 번쩍번쩍하는 가게밖에 없어 볼거리란 없지만, 도시에 살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대화역을 지날 무렵, 오른편으로 ‘VIPS’라고 하는 밥집 옆을 지나갑니다. 건물 벽에 길다란 걸개천이 걸려 있습니다. “VIPS 스탭 모집”이라는 큼직한 글씨를 보다가는, ‘스탭’이 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옆지기한테 “빕스 스탭 모집이라고 붙어 있는데, 스탭이 뭐예요?” 하고 물어 봅니다. 옆지기는, “빕스에서 일하는 직원이라는 뜻이지. 맥도널드에서는 크루라고 하고, 또 …….” 직원이면 그예 ‘직원(職員)’이고, 알바생이면 말 그대로 ‘시간직’이고, 일하는 사람이면 이름 그대로 ‘일꾼’일 텐데. 옆지기는 롯데리아는 한국에서 만든 곳임에도 이곳에서는 온갖 영어로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고 덧붙입니다.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말이나 상품이름도 죄다 영어로 가리킨다고 합니다. 집으로 들어가 인터넷을 또닥거리며 찾아봅니다. 롯데리아에서는 아르바이트생한테 ‘메이트(mate)’라는 이름을 붙여 부른다고 하고, 어느 만큼 일하고 나서는 ‘Vice manager’로 올라갈 수 있다고 나옵니다.

 ㄷ. 아리따움

마음이 아리따운 사람이 있고, 얼굴이 아리따운 사람이 있으며, 매무새가 아리따운 이가 있는 가운데, 몸매가 아리따운 이가 있습니다. 돈을 들여야 아리따워지는 마음이나 얼굴이나 매무새나 몸매는 아닙니다. 돈을 들여 아리따워질 수 있는 마음이나 얼굴이나 매무새이거나 몸매가 될 때도 있을 테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누구를 만나며 ‘참 아리땁구나’ 하고 느낄 때에는, 그 무엇이나 그 사람이 꾸밈없이 제 삶자락을 이어나갈 때이곤 합니다. 말 그대로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아리따움인데, ‘asian beauty’나 ‘beauty solution’ 같은 말로 ‘ARITAUM’을 새로워지게 할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리따움'이 아닌 'aritaum'을 말해야 아름답다고 느끼는 우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 전철 광고판 '아리따움'이 아닌 'aritaum'을 말해야 아름답다고 느끼는 우리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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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 로비층과 BL

만석동 살던 동무녀석이 송림동에 새로 올라선 아파트로 집을 옮겼습니다. 동무녀석 새집도 구경하고, 그곳부터 우리 집까지 걸어오면서 골목길 사진도 찍어 볼 생각에 함께 찾아갑니다. 이제 막 사람들이 들어와 사는 탓인지, 승강기에는 덕지덕지 광고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집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단추를 살피는데 ‘1층’이 보이지 않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L’이라고 적힌 단추가 1층을 가리키지 싶습니다. 주우욱 내려가는 승강기가 1층에 멎습니다. 여자 목소리로 “로비층입니다!”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로비층이라구? 이 아파트에 로비가 어디 있다구? 들어오는 문도 이렇게 좁은데.” “그러게 말야. 웃기지 않냐?” 그러나 최첨단시설을 갖추었다는 새 아파트는 ‘로비층’이고,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음직한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L’ 단추를 눌러 1층으로 내려가고, ‘BL’ 단추를 눌러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갑니다.

 ㅁ. 大 中

신포시장에서 파는 닭강정을 처음으로 먹어 봅니다. 매운 먹을거리는 입에 못 대는 터라 엄두도 내지 않았는데, 옆지기가 한 번쯤은 맛을 보아야 하지 않느냐 해서, 그러면 한 번 맛이나 보자면서 사먹는데, 몇 조각 먹지 못하고 입에서 불이 나고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서 애먹었습니다. 닭강정은 ‘大’와 ‘中’ 두 가지로 있습니다. ‘큰’ 녀석은 12000원, 조금 ‘작은’ 녀석은 7000원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태그:#우리말, #한글, #우리 말, #국어순화,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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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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