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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당올레 주인은 제주 해녀 

 

드디어 바다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서귀포시 표선면 하천리 올레 끝에서 보는 표선해수욕장은 왜 그리도 멀리 있던지요. 그도 그럴 것이, 표선해수욕장 백사장이 무려 8천여 평이나 되니, 그 백사장 가로질러 당케포구까지 걸어갈 것을 생각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2008년 9월 27일 오후 4시 10분, 표선해수욕장 갯바위에서 바다의 어멍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제 막 물질을 끝내고 갯바위에 짐을 부리는 해녀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숙연해지더군요. 내가 걸어온 제주올레 9코스가 바다를 누비고 살아온 해녀들의 삶만큼 멀고 힘든 길이었을까요?

  

 

 

조용히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순간, 백사장 위에서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걸어오는 해녀들이 보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제주올레 길을 걸었듯이, 해녀들은 바당올레 길을 누비다가 하얀 모래 위에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슴이 찡 해오는 순간이었지요. 그들이 누볐을 바당올레는 삶 자체였을 테니까요. 어쩌면 바당올레 주인은 제주해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다 밭을 누빈 해녀들이 풀어놓은 보물은 감태였습니다. 태왁을 풀고 있는 해녀 한 분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포기했습니다. 그저 해녀 주위에서 두리번두리번 눈치만 살피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지요.

 

도보기행, 마라톤과 같더라

 

올레9코스 22km 도보기행은 마라톤과 같더군요. 마라톤이 출발지점에서 한꺼번에 달리다가도 반환점을 돌고 결승지점에 다다르면 자신과 싸움에 승부를 걸게 되듯이 말입니다.  

 

제조올레 9코스 22km 도보기행 역시 결승지점에 오니, 지칠 대로 지쳐서,  혼자서 걷는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아니, 간세다리 드디어 탈출했다고나 할까요.  마라톤이 완주에 목적을 두듯 도보기행 역시 자신과의 싸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텅빈 백사, 맨발로 걷다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해수욕장, 여름이면 백사축제로 하얀 모래를 달구던 바닷가에 올레꾼들의 길트기가 시작됐습니다. 여름내 열광을 했던 피서객들은 어디 갔는지요. 텅빈 모래밭은 올레꾼들의 발자국만 흔적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철지난 바닷가의 풍경은 그저 여백 그 자체입니다.

 

마침 이날은 물때라 바닷물이 500-600m까지 밀려갔으니 백사장은 텅 빈 상태였습니다. 텅 빈 가을 백사장은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이 곱고 하얀 모래 위를 어찌 신발 신고 건너겠어요!"

 

앞서 가던 한 선생님은 또 수작을 부리더군요. 모래 위에 덜썩 주저앉더니 양말을 벗고 맨발로 백사장을 건너는 겁니다.

 

 

"운동화 신고 모래밭 걸으면 발목까지 빠지겠지요?"

 

신천리 올레길에서부터 50m 전방에서 걷던 40대 남자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말을 백사장에서 토해내더군요.

 

"그러게요. 근데 모래 위로 걷는 것보다 바다 위를 걷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은데..."

 

아뿔싸! 그 화답은 말없이 내 뒤에 혼자 걸어온 20대 청년이 새치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은 파도가 밀려오는 바닷물 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묵묵히 사색에 잠기며 걸었던 벙어리 올레꾼들은 왜 표선 해수욕장에서 말문이 터졌을까요? 아마 그것은 결승점, 즉 희망이 보이면 사람들은 흥분된다는 사실이 아닐는지요. 그게 아니면, 바다가 주는 자유? 드넓은 백사장의 평온이 굳게 닫힌 사람의 마음과 입을 열리게 하는 마술이 아니었을까요?

 

 

 

갯바위에 서 있던 나도 양말을 벗고 신발을 벗었습니다. 그리고는 백사장을 걷다가  바다 위를 걷다가 반복했지요. 아마 내 발은 그동안 열불 났었겠지요. 꼭 끼인 운동화에 갇혀 주인이 간세다리 탈출한답씨고 6시간 동안 인정도 없이 걸었으니 얼마나 불만이 많았겠습니까. 표선해수욕장은 그렇게 내 발을 해방시켜주더이다.

 

제주올레 절정, 그 곳엔 자유가 있다

 

표선해수욕장의 백사는 참으로 포근했습니다. 가늘고 하얀 모래 위를 걸어보는 기분은 바당올레 하얀 속살을 밟는 기분이랄까요. 바다 위를 걸으니 시원한 게 아니라 간지러웠습니다. 간간히 부는 가을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발목에 부딪히더군요.

 

하지만 내 오른쪽 발꿈치는 따가웠지요. 사실 신천리 올레길에서부터 발 뒤꿈치에 물집이 생겼었거든요. 8만여 평의 표선해수욕장 올레길을 걷는 데만 15분 정도, 표선해수욕장 올레길은 제주올레 9코스의 절정이더군요.

 

 

숨비소리 들으며 바다 위를 걷는 표선해수욕장 올레,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희망이 보였지요. 바다 위에 떠 있는 당케포구 등대처럼 말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그리운 것은 멀리 있다고.

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7일 다녀온 올레 9코스 도보기행입니다.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바당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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