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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

 

신화의 마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를 시작으로 서귀포시 표선면 당케포구 잔디밭까지는 22km, 지난 9월 27일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은 6시간 40분에 끝을 맺었습니다. 점심시간 30분을 빼면 6시간을 걸은 셈입니다.

 

사실 걷는다는 것은 심심한 일입니다. 혼자 걸으면 더 심심할 것 같지요. 그러나 내가 22km를 혼자 걸어봤더니 수행이 되고, 둘이 걸으니 만남이 되더군요. 그리고 여럿이 걸으니 미팅이 되었습니다. 초면인데도 올레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모두 인연을 맺은 셈이지요.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연과의 만남을 핑게로 소통이 이루어지더군요.

 

이 때문에 '제주올레'의 매력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제주의 구석구석을 걸으며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보다 더 큰 특별함이 있다면 그저 자신이 걷고 싶은 길 만큼 걸으면 되니 자유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 자유의 길을 걸으며 만나는 풍경은 곧 제주사람들의 속살이고 자신의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레꾼을 위한 당케포구 잔디밭 웰빙파티

  

 

2008년 9월 27일 오후 4시 40분, 드디어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당케포구 잔디밭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는 22km 제주올레 9코스 완주자들을 위한 축하 '쫑파티'가 벌어지고 있더군요. 길을 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올레꾼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당케포구 잔디밭에서 완주 파티를 즐기고 있더군요. 서귀포시 표선면 사무소가 파티를 주선했습니다.

  

 이날 표선면사무소에서 올레꾼들에게 제공한 안주와 술은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술은 제주도 민속주 좁쌀 막걸리였고, 안주는 제주도 삶은 돼지고기였습니다. 술과 안주는 또하나의 제주올레 속살이기도 했지요. 파란잔디와 어우러진 표선 해수욕장의 백사 그리고 푸른바다가 넘실대는 당케포구 쫑파티는 그야말로 웰빙파티더군요.

 

6시간 이상을 걸었던 올레꾼들은 좁쌀 막걸리 잔을 돌리며 상대방이 걸어온 길을 축하하더군요. ' 원샷!'을 외치며 말입니다. 삼삼오오 모여 제주올레에 대해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술잔을 부딪히면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광경에 행복이  묻어났습니다.

 

올레 코스마다 마을사람들의 격려와 인심 이어져

 

 

하지만 촉촉하고 뜨끈뜨끈한 올레길을 모두 간직하기에는 하루해가 너무 짧았습니다. 올레꾼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던 흙길, 굽이굽이 돌아가는 돌담길, 딱딱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던 시멘트길도 모두 추억으로 갈무리해야 할 시간이었지요.

 

어디 그것뿐이던가요? 온평리 해안도로 올레에서부터 인적 드문 중산간 올레, 그리고 하늘을 여는 제주오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특히 제주올레 9코스 중 특별했던 올레는 김영갑님 올레와 신천리 목장올레, 바당올레, 표선 해수욕장 백사 올레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시멘트길을 걸을 때는 '포기해 버릴까?'하는 비겁한 생각도 했었지요. 하지만 무거운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마을 사람들의 격려와 인심이었습니다. 

 

올레꾼들에게 혼인지 신화로 길트기를 제공했던 온평리 예술단과 검은 흙속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던 난산리 사람들, 그리고 알곡을 걸르며 '고생 햄 수다!'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삼달리와 신천리 올레사람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와 주었다고 올레꾼들에게 목을 적셔주었던 생수 한의 주인공인 성산읍 사무소 직원들, 그리고 제주오름 중턱에서 올레꾼들을 맞이 해주었던 가을 들꽃과 말들의 행진…

 

 '놀멍, 쉬멍, 걸으멍', 인생의 소통 코드

 

 

 

넓은 도로를 자동차로 쌩쌩 달릴 때는 긴장합니다. 그러나 작고 울퉁불틍한 제주의 중산간 도로 올레길을 걸을 때는 일상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립니다. 좁쌀 막걸리를 목구멍으로 삼키는 그 순간처럼 말입니다.

 

당케포구 잔디밭 관장에서는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씨가 독자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이란 책으로 이미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행복한 올레, 제주올레!’라는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글 한토막을 선물하더군요. 내가 본 그녀는 거무잡잡한 피부에 꼭  촌티나는 인상이었지만,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마력을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제주올레 개척자, 행복의 전령사인 그녀가 제주 여인의 억척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그가 길트기를 하는 제주올레 코스가 그렇듯이, 그녀는 행복이라는 병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레꾼들이 좁쌀 막걸리로 얼굴이 상기돼 갈 무렵 가을해는 뉘엿뉘엿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쓰레기 하나 비우러 가기 싫어 했던 간세다리에게  22Km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은 간세다리 탈출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도보기행이라 해서 걷기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명숙, 그녀가 말했듯이 제주올레는 ‘놀멍, 쉬멍, 걸으멍’ 자신의 인생을 채찍하고 격려하며 소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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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9월 27일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 마지막편입니다.


태그:#쫑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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