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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자를 악랄하게 보복한 정명수

청나라의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죽음에 내몰렸던 김상헌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났다. 김상헌 구명 특명을 띠고 심양에 파견된 회은군 이덕인은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하면서 청나라 아문에 근무하는 조선인 통사들에게 종이와 서피를 답례품으로 주고 갔다. 그들은 김상헌 구명에 적극 협조해준 인물들이다.

동관에 심어둔 첩자로부터 이 사실을 포착한 정명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이들을 형부에 고발했다. 회은군 때문에 곤혹을 치른 정명수가 이덕인에 협력한 통사들에게 보복한 것이다. 형부에 끌려가 심한 추궁에 시달리던 아문통사 하사남이 사신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람들을 실토했다.

통사 하사남이 공초에서 밝힌 7명의 명단에는 상통사 최흥남을 비롯하여 양경인, 김산, 한거원, 한보룡, 이엇돌, 정명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포함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정명수는 물귀신 작전에 걸려들어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형부 관원들에게 뇌물공작을 펼친 정명수는 황제에게 올리는 명단에서 자신과 이엇돌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결국 나머지 통사들은 투옥되고 말았다.

 벼가 익어가는 논.
▲ 논. 벼가 익어가는 논.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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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며시 왔다 가버리는 심양의 가을

무더위가 지나갔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인가 싶었는데 어느덧 찬바람이 폐부를 파고들었다. 심양의 가을은 유난히 짧다. 왔는가 싶었는데 가는 줄 모르게 가버리는 것이 심양의 가을이다. 조선에서 끌려온 신하들의 목숨은 부지했지만 노구를 이끌고 차가운 감옥에 있을 김상헌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았다.

"저하! 왜 이렇게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까?"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견딜 수 있겠지만 김상헌이 걱정 되오."

"설마 저들이 살아있는 목숨 얼어죽이고 굶어죽이기야 하겠습니까?"
"저들이 밥을 넣어주지 않아 우리 관중에서 식량과 찬거리를 넣어주는데 상헌이 아직 홑옷을 입고 있다 하오."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 왔으면 먹여주고 입혀주어야지 70노인에게 아직 홑옷을 입게 하고 있다니…."
강빈이 벌떡 일어났다.

"저하! 침장에게 일러 내일 당장 솜바지를 지으라 하겠습니다."
"빈궁의 마음이 따뜻하구려."
소현은 강빈을 지긋이 끌어안았다. 품속에 안겨있던 강빈이 눈을 깜빡였다.

"저하! 일꾼들이 공사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무엇을 지으려 하십니까?"
"빙고를 지으려 하오."
"네?"
강빈이 품속을 빠져 나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얼음 창고를 지어서 무엇에 쓰시려구요?"
"지난 여름 무더위에 관중사람들이 너무 고생이 많았소. 그들에게 내년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먹이려고 그러하오."

배후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볼모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여름 혹독한 무더위에 관중 노복들이 퍽퍽 쓰러졌다. 일사병과 돌림병에 죽어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현은 요하가 결빙되면 얼음을 떠 빙고에 보관하였다가 먹이려 한 것이다.

"저하께서 빙고를 지으려 하시는 거 소첩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제 곧 돌아갈 것이온데 얼음 창고를 지어 얼마나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빈궁의 마음을 이해하오. 우리의 소원은 하루 빨리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지만 저들의 행태로 보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하오."

소현이 끌려올 때 조선의 전투력이 청나라에 대적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볼모 생활이 끝나리라 생각했다. 그 기간이 길어야 3년이면 족하리라 예상했다. 그렇지만 볼모 생활 5년째다. 자신의 예측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의 전투력 확인이 아니라 명나라와 조선이 연합하여 배후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볼모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도 싫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얼음 창고가 필요합니까?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국에 있는 석철이가 보고 싶습니다."

강빈이 소현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흐느꼈다. 강빈의 목소리는 고국에 돌아가고 싶은 절규였다. 세자관 증축공사를 벌일 때 본국에 상소를 올리며 반대하던 신하들도 적극 동조했다. 그렇지만 소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명수가 세자관을 찾아왔다.

 팻말 뒤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가 펼쳐진다.
▲ 사하보. 팻말 뒤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가 펼쳐진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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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농사지어 먹어라

"속담에 '나그네 살이 3년이면 생업이 이루어진다' 하였습니다. 세자가 이곳에 들어온 지 이미 5년이 되었는데도 생업이 이루어진 것이 없으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제고산과 제왕들도 다 자기의 힘으로 먹고 사는데 세자· 대군· 재신· 질자(質子)에게 어찌 식량을 계속해서 대어줄 수 있겠습니까? 경작할 땅을 줄 터이니 내년부터 농사를 지어 먹도록 하십시오."

식량난에 허덕이던 청나라는 세자관에 공급하던 식량과 찬값을 줄였다. 이제는 그것마저 끊겠다는 것이다. 세자관에 200여 명, 인질로 잡혀온 인질과 종자 100여 명과 수감된 조선인들을 먹이기가 버거우니 세자관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오늘까지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황제의 은덕이긴 하나 이제 우리에게 농사를 짓게 하니 황망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소. 대국이 소국에서 속공해온 볼모를 먹이지 못하고 스스로 경작하여 먹게 한다면 이웃나라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황제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후세의 부끄러움을 생각해서라도 거두어들일 것이오."
"황제의 명으로 풀을 베고 경작할 장소를 이미 세 군데 정해 두었소."

일방통고를 마친 정명수가 돌아갔다. 소현은 재신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협의했다. 거절하자는 중론이 우세했다. 농사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농사를 짓게 되면 고국에 돌아갈 날이 점점 멀어지고 어쩌면 뼈를 심양에 묻어야 한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소현은 세자 이사 이경석으로 하여금 호부를 방문하여 세자관의 입장을 전달하라 명했다.

농사는 세자관에서 알아서 하시오

"대국의 은덕을 후하게 입어 폐를 끼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허나,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은 전후에 걸쳐 군병을 조발하고 군량을 운송하는데 이미 바닥이 났으니 농군부역을 동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또한, 기후가 다르고 농사법도 달라 농사를 지어 그 쌀을 먹게 될지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한인(漢人)은 농사일에 익숙하고 그들을 사는 것은 조선인과 달라 열 냥이면 살 수 있는데 어찌 그들을 사서 농사를 지을 생각은 하지 않는 거요?"

"관중에 자금이 말라 노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들을 사서 농사를 짓는다 해도 그들이 힘써 농사를 짓는다고 기대할 수 없으며 흉년을 만나면 또 어떻게 하겠습니까?"
"흉년이란 하늘에서 알아서 하는 일, 별것을 다 걱정하시오. 일 없소. 본국에서 농군을 데려다 농사를 짓든, 한인을 사서 농사를 짓든, 그것은 세자관에서 알아서 하시오."

"농군을 뽑아오는 일은 결단코 할 수 없습니다."
"경작은 이미 정해졌으니 이제 거스르기 어렵소. 야리강에 100일 갈이, 사하보에 150일 갈이, 사을고 근처에 150일 갈이를 준비해 두었으니 내년 봄부터 농사를 짓도록 하시오."

100일 갈이는 한 사람이 100일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할 넓이의 농토를 말한다.


태그:#소현세자, #심양, #사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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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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