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심양황궁 정문에서 남쪽으로 500m 거리에 세자관이 있었다.
▲ 황궁거리. 심양황궁 정문에서 남쪽으로 500m 거리에 세자관이 있었다.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본국의 신하들이 심양까지 잡혀와 사형선고를 받고 구금되어 있는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무력감으로 빠져 들고 마비 증세를 보인 다리가 뼈 속 깊이 저려왔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빈마저 몸져눕고 말았다. 둘째 아들 석린을 낳고 몸이 허약해진 강빈에게 지아비의 아픔이 병이 된 것이다. 의관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세자에게 침을 놓고 뜸을 들이랴 세자빈에게 탕약을 끓여 올리랴 부산해졌다. 소현이 침을 맞고 있는데 정명수가 찾아왔다.

"동관에 머물고 있는 사신이 황제를 알현하여 직접 주(奏)를 올리고 김상헌에 대하여 진술하고자 하는데 세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본국에서 파견한 사신이오. 주를 가지고 왔다면 마땅히 황제께 올려야 하지 않겠소?"

"용장군이 무고에 얽히더라도 시비가 가려질 것이니 염려할 일은 못됩니다만 조선을 위한 계책이라고 해서 다 끝나가는 일에 시끄러운 문제를 야기해서는 조선을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입니다. 세자께서 사신을 달래어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협박의 냄새도 풍겼지만 부탁이다. 일찍이 없었던 태도변화다. 용골대의 복심 정명수가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보아 용골대가 떨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양심이 찔려서 일까? 용골대는 회은군이 가지고 온 주(奏)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진주사가 허무맹랑한 해명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지레 겁먹은 용골대, 그는 떨고 있었다

동관에 머물고 있는 사신에게 정명수를 보내 주를 보여줄 것을 요구했으나 회은군은 거절했다. 황제에게 올릴 주를 미리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협박과 회유가 뒤따랐으나 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그럴수록 용골대는 몸이 달았다.

"사신은 전하께서 파견했고 주는 조정에서 작성한 문서이니 여기에서 고칠 수 없소."

소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진주사는 매년 정기적으로 보내는 삼절사, 즉 성절사, 정조사, 동지사 하고는 다르다. 책문에 답하고 해명할 일이 있으면 보내는 임시 사신이다. 조정에서 진주사를 파견했을 때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정명수가 돌아간 뒤, 소현 역시 주가 궁금했다. 만주벌판의 늑대 용골대가 무슨 냄새를 맡았기에 이토록 저자세로 나올까? 그것이 알고 싶었다. 소현이 빈객 이행원을 불렀다.

"동관에 가서 회은군이 가지고 있는 주의 초본을 떠오도록 하라."

필사해오라는 것이다. 명을 받은 이행원은 난감했다. 동관에 머물고 있는 회은군은 청나라 군사들의 삼엄한 경계를 받으며 외부와의 접촉을 통제받고 있다. 그렇다고 세자의 명이 떨어졌으니 아니 갈 수 없다. 빈손으로 돌아올 것을 각오하고 동관으로 향했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무사통과네...

빈객 이행원이 동관에 도착했다. 청나라 군사들이 경계를 펴고 있는 동관 앞에 호화로운 가마 한 대가 멈추어 있었다. 빈객이 말에서 내려 정문으로 향하려는 순간, 대문이 열리며 여인이 대문 밖으로 나왔다. 청의를 걸쳤지만 눈매로 보아 조선 여인 같았다. 좌우를 살펴보던 여인이 가마에 오르자 시위하던 군사들이 넙죽 절을 하고 가마는 유유히 사라졌다. 이행원이 대문 앞으로 다가서며 별장인 듯한 청나라 군사에게 말했다.

"세자관에서 온 빈객이오. 동관에 머물고 있는 사신을 만나러 왔소."

"그러십니까? 안으로 드시지요."

의외였다. 대문을 확짝 열어젖히며 안내했다. 문전박대당하여 쫓겨날 것을 각오하고 찾아왔는데 뜻밖이었다. 회은군을 만난 이행원은 세자의 명을 전하고 주를 복사했다. 복사본을 손에 넣은 이행원은 세자관으로 말고삐를 당겼다.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는 이행원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정명수가 세워둔 망원이었다.

"어떻게 떠왔느냐?"
"회은군이 사람을 놓아 따님을 불러들였다 하옵니다."

"아문에 줄을 놓았다하더냐?"
"피파박시가 아문통사 하사남과 상통사 최흥남을 연결해주었다 하옵니다."
"다행한 일이로구나."

믿는 구석이 있어 배짱을 튀겼다

역시 그랬다. 회은군의 약발이 받기 시작하고 심양에 잡혀온 조선 여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회은군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용골대의 회유를 물리치고 주를 정명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주를 검토하고 있는데 정명수가 찾아왔다. 먹을 것이 없는데도 번질나게 드나드는 것으로 보아 몹시 다급한 모양이다.

"사신을 달래어 보셨습니까?"
"주를 보아하니 용장군을 침해한 말은 없는 것 같았소."

"김상헌에 대해서 사신이 하겠다는 말이 염려됩니다."
정명수의 눈초리는 회은군이 황제를 알현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만 제출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었다.

"사신 이덕인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려서 할 줄 아는 왕족이오. 내가 여기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할 수야 없지만 나는 회은군을 믿소."

"두 나라 사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정명수가 다소곳이 절을 하고 세자관을 빠져 나갔다. 예전에 없던 행동이다. 정명수가 볼일이 있어 세자관을 찾을 때면 거들먹거리며 들어왔고 휑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갔었다. 황궁과 세자관 그리고 동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데 황실에 뜻밖의 비극이 일어났다. 황제의 사위 차흘래가 죽은 것이다. 황궁에서 관원이 찾아왔다.

"황제의 사위 상(喪)에 왕 이하는 말과 은으로 부조했습니다. 세자관에서도 물품을 갖추어 부조하고 세자와 대군은 참석하도록 하시오."

세자관은 관중에서 쓰려고 비축해두었던 백면지 1천권, 상화지 50권, 단목 1백 근과 은 1백 냥을 부조했다. 물품을 접수받은 관아에서 관원이 쫓아왔다.

깍듯한 문상에 감복한 홍타이지

"황제께서 물품은 받고 돈이 궁한 세자관에 은을 돌려주라 명하시었소. 그리고 장례는 치러야 하는데 종이가 턱없이 부족하오. 황제께 아뢰었더니 세자관에서 구하라 하시었소. 급하니 관중에 종이가 있으면 파시오."

관원은 되돌려주는 은 1백 냥과 황금 13냥 9전을 내놓았다. 전쟁에 치중한 청나라는 물품부족에 시달렸다. 식량과 생필품은 물론 생산시설이 없는 종이가 제일 부족했다. 소현은 종이 2257권과 단목 60근을 내주라 명했다.

봉림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 소현은 조선식으로 예를 갖추어 조의를 표했다. 만주벌판을 휘젓고 다니던 청나라 사람들로서는 보기 드문 정중한 문상이었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경탄했다. 먼발치에 있던 황제와 소현의 눈길이 마주쳤다. 홍타이지가 따뜻한 눈길을 보내왔다.

장례식이 끝난 후, 범문정이 용골대, 피파박시, 가린박시를 대동하고 세자관을 찾아왔다. 청나라의 실력자 범문정이 세자관을 찾아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들은 피팍박시를 제외하고 이번 일에 대하여 강경론을 펴던 인물들이었다.

"김상헌과 죄인들에 대해 형부(刑部)에서 사형으로 결정하고 황제께 아뢰었더니 황제께서 '조선이 전부터 일을 그르친 것은 모두 이러한 무리들의 사리에 어긋난 의견에서 비롯되었으니 그 죄는 만반 죽어도 부족하지 않다. 허나, 조선이 모든 일을 자복하고 죄인들을 잡아 보냈으니 끝가지 명을 어긴 것이 아니다'하시며 조선의 이전 잘못은 모두 덮어두고 이 사람들의 죄도 헤아려서 처리하라 하셨습니다."

"황은이 망극할 따름입니다."

황제지보라는 글이 한자와 만주어로 새겨져 있다. 심양황궁 소장.
▲ 황제 패. 황제지보라는 글이 한자와 만주어로 새겨져 있다. 심양황궁 소장.
ⓒ 이정근

관련사진보기


한 가닥 서광이 비치는 희소식이었다. 황제를 알현한 회은군이 용골대의 우려와는 달리 김상헌을 선처해달라고 곡진하게 청했고 상가(喪家)에 예를 다하여 조의를 표한 것이 황제의 마음을 움직였다. 뿐만 아니라 심양에 있는 조선 여인들의 막후 활약이 주효했다. 회은군의 딸은 피바박시를 동원하여 황제에게 직소했고 연실이는 전장에 나가있는 도르곤에게 밀사를 보내 긴급 구원을 요청했던 것이다.

당시 홍타이지는 왕과 신임하는 문무 신하들에게 황제 패를 하사했다. 가족을 두고 멀리 나가있는 신하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징표다. 전장에 나간 장수들은 이 패를 집에 두고 전쟁터로 떠났다. 긴급한 일이 있으면 사용하라는 것이다. 연실이는 이 패를 이용하여 밀사를 보냈고 도른곤은 즉시 전령을 통하여 황제에게 구명의 서찰을 띄웠던 것이다. 

"박황에게도 물어볼 일이 있으니 바로 들여보내도록 하고 의주 부윤·평양 서윤·창주 첨사·청성 첨사의 범죄는 조선에서 경중에 따라 처리토록 하시오."

"본국에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긴히 할 예기가 있으니 사신과 재신만 남기고 좌우를 물리쳐 주시오."
회은군과 신경진 그리고 빈객 이행원 보덕 정치화만 남고 물러났다.

"기마병 1천명과 포차를 끌고갈 사람 5백 명을 다음 달 20일까지 보내시오."

주는 것이 있으니 받는 것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청나라가 추구하는 목적이었는지 모른다. 사형을 면한 김상헌은 감옥에 수감되어 기약 없는 수형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후, 명나라와 밀통했다는 혐의로 조선에서 잡혀온 최명길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 감옥에 있게 되었으니 운명의 장난인지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태그:#소현세자, #용골대, #도르곤, #회은군, #심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