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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이다.

 

내가 사는 땅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다른 땅에 사는 사람과 마주칠 일이 드문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지구를 떠나지 않는 한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세상, 우리는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사는 곳의 일만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다.

 

5대양 6대주라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모든 바다가 호수인 것만 같고 모든 땅이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아시아에 속한 대한민국이 아시아를 '건너뛰고' 어딘가로 내뻗으려 한다는 게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

 

여러 민족과 나라가 모여 아시아를 만들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시아 안에서 각 민족과 나라를 생각하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대한민국이 먼저이고 아시아가 다음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아시아라는 이름 아래서 대한민국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세상이다.

 

우리는 어느덧 대한민국에 '이웃한' 아시아를 찾을 게 아니라 아시아 '안에 있는' 대한민국을 보아야 할 때를 맞이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보는 아시아가 아닌 아시아가 보는 대한민국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아시아를 발견할 수 있고 아시아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함께 이룬 아시아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 대한민국이기에 이런 관점은 더더욱 필요하다.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에서 우리는 아시아 '안에서' 살고 아시아와 '함께' 살아야 할 대한민국을 보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 아시아를 향하여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6년 6월부터 현재까지 계속 참여연대 누리집에 '아시아 생각'이라는 제목 아래 관련 기고문을 연재해왔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 38개 글을 추려내어 엮은 것이다.

 

'들어가며'와 '나가며'를 포함하여, 다양한 국적을 지닌 24명 필진에게서 나온 38개 글이 아시아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아시아 '안'에서 아시아와 '함께' 살아온 이들 글을 엮어 만들어 낸 책이니 '아시아가 모였다'고 말하는 게 참 자연스럽다.

 

그런데, 아시아 속 이야기들이 대한민국 '안'에서도 제 색깔을 온전히 내면서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을까. 24명의 필진들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은, 대한민국 사회가 '모두'를 뜻하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을 제외한 '우리'를 찾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시야에 변화를 줄 때 비로소 대한민국도 찾고 아시아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미 아시아는 한국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제라도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아시아인들은 누구이며, 아시아는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속의 그들과 우리가 더 크고 새로운 '우리'가 되어 어울려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위해서."(이 책, 17)

 

한국인들처럼 '우리' 의식이 강한 민족이 있을까. 아내도 '우리 아내'라고 부르고, 집도 '우리 집'이라고 부르는 한국인들에게 민족과 나라가 어찌 '나' 개인과 무관할까. 나라 경제가 어렵다는 말이 오고 갈 때 스스럼없이 '우리나라'를 살리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있을까. 그런 대한민국 사회가 '우리'의 의미를 알려주려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할까. 이미 '우리'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는 느끼는 '우리' 사회가 말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를 보면서 '우리'의 의미를 되새김질하지 않는다면 결코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거의 본능적으로 '우리'를 떠올리고 말하는 대한민국 사회는, '우리'가 아닌 '그들' 또는 '저들'이 '우리' 밖에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의외로 잘 모른다. 아니, 그런 모순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 '우리가 아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있을 때 바로 그렇다.

 

이쯤에서, 다양한 빛깔을 지닌 글들이 모여 3층 구조로 이루어낸 책 구성을 다시 살펴본다. '어제와 오늘'의 아시아 너머 '내일'의 아시아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 대한민국은 아시아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1부 아시아를 향한 성찰), '우리' 대한민국이 사는 아시아는 지금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는지(2부 오늘의 아시아),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 아시아를 찾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유념해야 하는지(3부 아시아 연대를 위하여)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 물을 것만 같다. 대한민국이 아시아 안에 있다는 게 아시아 안에만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우리 안에 이미 세계가 들어와 있다면 그 세계는 아시아 외에 다른 곳일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물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책이 품은 의도와 가치에 대해 끝없는 반문과 항의를 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24명이나 되는 필자 누구라도 이 책의 의도와 가치를 묻는 질문에 답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그들을 대신해 말하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시아를 제외하거나 애써 무시하고 아시아 너머 다른 곳을 먼저 보려 한다면, 그런 대한민국은 아시아에도 없고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거니와 현 단계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의 방안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의 아시아'를 재인식하고 그것을 진정한 '우리'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다. 아시아에 주목하고 아시아와 연대하는 것이 한국 시민사회의 자폐적인 '자기응시navel-gazing'에서 벗어나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이 책, '들어가며'에서)

 

전투적 아시아가 아닌 '사회적 아시아'를 향하여

 

이 책은, 역사 관계가 남다른 중국과 일본은 물론 베트남, 몽골, 동티모르, 티벳, 필리핀, 네팔 등등 아시아를 이루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서라도 생생한 목소리를 이끌어오려 했다. '그들' 이야기가 이제는 곧 '우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시아에 속한 대한민국에게 이제는 아시아가 곧 '우리'이다!

 

21세기 신생국 동티모르가 외부 강대국 틈바구니에 꿈틀거리는 모습이 남 이야기일 수 없다. 외모로만 보면 잘 구분되지 않는 몽골인이 이미 수 만명씩이나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우리나라 이야기이다. 국가 관계 또는 경제 문제로만 보면 '주고 받는 관계' 이상 이루기 어려운 아시아 각국 안에서 사람들은 모든 면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우리는 어느덧 물건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며 삶과 문화를 엮어가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신자유주의 기치 아래 내뻗는 신자본주의 지구촌 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진정 따뜻함이 배어나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의외로 '우리나라'를 벗어나 '우리 아시아'로 들어가야 한다. 지역 연대를 생각지 않는 '우리' 개념은 '자기응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은연중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우리'라는 말 자체가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 아시아'를 생각할 때 '우리' 대한민국은 오히려 더 빨리 자기 자리를 찾게 된다. 24인 필자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이 책에서 그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참고로, 24인 필자와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우리'는 '위로부터' 내려받는 '하사품'이 아니라 실제로 땅 위에서 살며 땀흘리는 '아래로부터'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작품'이다. 이것은 이념도 아니고 국가가 주도하는 무슨 특별정책도 아니다. 그저 '우리 아시아'에 사는 구성원 누구나 함께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우리' 삶 그 자체다.

 

"아시아에는 다양한 성격의 아시아주의가 존재한다. 중국의 중화中華주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상기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패권적' 아시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아시아', '사회적 아시아'를 지향하는 새로운 아시아주의가 필요할 수 있다. 한국 및 아시아의 민주진보세력이 지향해야 하는 아시아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아시아를 민주적 공동체와 사회적 공동체로 사고하는 것이어야 한다."(이 책, '나가며'에서)

 

이제 '우리'를 잠시 벗어나도 좋다. 아니, 예전에 알던 '우리'를 벗어나서 새롭고 넓은 곳에서 진정한 '우리'를 볼 때가 되었다. 한 가지 잊지 않아야 할 점은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아시아'를 다 알 수 있다고 생각지 말자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안에 있는 '우리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 두터워지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 안에서 '우리 아시아'를 놓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우리' 대한민국을 이제는 '우리 아시아'에서 찾아보자. '우리 안의 아시아'에서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를 그려보면서 차근차근 '우리의 아시아'를 찾고 이루어가는 길, 그 길 위에 바로 21세기 대한민국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엮음. 해피스토리, 2008.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엮음, 해피스토리(2008)


태그:#아시아, #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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