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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끈 것은 ‘혜성처럼 나타난 삐딱한 천재 소녀들’이었다. 모 포털 사이트를 통해 내 의식 속으로 파고든 천재소녀는 열아홉의 나이에 <뱀에게 피어싱>이란 책을 냈으며 일본의 스바루 문학상과(2003) 아쿠타가와상(2004)을 탔다.

 

사실 내게 등단이라는 말은 조금 식상하다. 문학에 기준이라는 것을 세우고 순위를 나눈다는 것이 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누구도 나의 이해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쉽게 닿을 수 없는 그 거대한 틀 속에서 견고하게 다져진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열아홉 소녀를 만난 것이다. 무라까미 류가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요시모토 바나나가 가장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던 그녀는 한 마디로 파격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강렬함에 반해 버렸다.


스플릿 텅이라고?

 

3년 전 쯤인가. 나는 친구 아기 돌잔치를 가던 길에 귀를 뚫었다. 돈암동의 젊은 거리에서 가장 넓고 근사한 액세서리 집을 골라 들어갔다. 귀에다 점을 찍고 알코올로 문지르고 뾰족한 것을 가지고 내 귀에다 구멍을 낼 때까지 내 몸의 모든 감각은 위축되고 손은 축축한 땀으로 흥건했다.


서른도 훌쩍 넘어 몸에 구멍을 뚫는 행위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나는 미니골드의 문을 열고  나오며 스스로가 대견해서 어쩔 줄 몰랐다.


<뱀에게 피어싱>의 이야기 속에서 귀를 뚫는다는 것 따위는 껌을 씹는 것만큼이나 하찮은 것이었다. 주인공 루이는 스플릿 텅을 한 아마라는 남자에게 매료돼 동거를 시작한다. 스플릿 텅이란 혓바닥에 피어싱을 한 후 구멍을 조금씩 확장해 마지막에 남은 끝부분을 절단하는 것으로 일명 신체 개조라고도 불린다.


끝이 두 갈래인 혓바닥이라니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모습이다. 루이는 피어싱과 문신을 전문으로 하는 시바를 소개받아 혀에 피어싱을 하고, 등에는 아마와 같은 용의 문신과 시바와 같은 기린 문신을 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시바와 마조히즘적인 관계를 이어간다.


루이는 아마가 자신을 향한 사랑이 커지고 시바와의 가학적인 섹스가 이어지는 것만큼 혀에 구멍의 크기를 늘리며 자신이 느끼는 공허와 허무를 고통으로 메우려 한다. 그것은 루이가 찾고자 하는 것이 진정한 욕정이나 욕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관계를 끊고 완전한 어둠을 꿈꾸지만 혼자도 되지 못하는 나약함의 표현인 것이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고통을 느낄 때뿐이다.”


자신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고통을 느낄 때뿐이라고 말하는 루이는 자신의 등에 용과 기린의 문신을 새겨 넣었지만 눈을 그리지 않으므로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의 소유라고 믿었던 아마가 실종되고, 그를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시바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진 채 얘기는 끝나버린다.


하지만 자신이 완전하게 소유하기를 원해서 그려 넣지 않았던 용과 기린에 눈을 그려 생명을 불어 넣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 삶의 의욕을 되찾게 된다.

 

존재감을 발하는 어둠

 

상식을 넘어선 신체개조, 가학증, 알코올 중독, 자살충동, 우울증….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의 행위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해야 한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빨려든 은밀한 어둠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다.

 

책장이 넘어가면 갈수록 직선적인 섬뜩함은 강도를 더해가고 그 안에서 독자는 고스란히 불편함과 마주서야 하며 현실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선 적당한 시간을 두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가네하라 히토미의 외로움은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몰았던 무라까미 하루끼가 드러내는 상실과는 다르다. 하루끼가 무채색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외로움을 그려냈다면 그녀는 어둠 속에서야 빛을 발하는 형광색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어둠을 바라보게 하므로 세상과 소통한다.


“어떻게든 태양의 빛이 와 닿지 않는 언더그라운드의 사람으로 있고 싶다. 아이의 웃음소리나 사랑의 세레나데가 들려오지 않는 장소는 없는 걸까?”

 

도발적으로 어둠 속을 탐닉했던 열아홉의 그녀는 천재적인 작가로 새롭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4년 전 일본의 문단은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낸 거침이 없는 열아홉 소녀의 편을 들어 주었다.

 

얇고 가벼운 책 속에 담긴 그녀의 글들은 직선적이고 섬뜩하며 간결하다. 젊은이들의 일탈의 끝에 선 그녀가 보여주는 것은 허무하고 공허하게 흩어지는 외로움과도 같다. 열아홉에 문단에 등단한 그녀가 준 충격은 그 당시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지만 이러한 현상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일본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히키고모리나 타인에 대한 소통의 단절, 부재 등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현상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하는 문제인 것이다.


<뱀에게 피어싱>을 쓸 때 작가는 열아홉 살이었다. 궁금했다. 적당히 순수하고 적절한 일탈을 꿈꾸고 숨 막히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일반적인 열아홉 살과 분명한 경계를 가진 작가에 대해서.

 

가네하라 히토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등교를 거부하고 중학교 때 손목을 그었고 고등학교 시절엔 동거를 시작한다. 대학교수이자 번역가인 아버지가 주는 책을 읽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한동안 빠징꼬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손으로 만져지는 외로움의 실체


갈색으로 물들인 머리, 귀에는 양쪽에 모두 여섯 개의 피어스, 앞뒤가 깊게 파인 갈색 니트, 검은 미니스커트와 무릎까지 오는 검은 스타킹. 도쿄 시부야 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차림으로 시상식장에 나타난 그녀는 말한다.


“밝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은 완전한 어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음울하게 눈에 띄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느니 신체개조로 무장해 존재감을 발하는 어둠이 되고 싶다.”


현대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소통방식을 가지고 세상과 소통을 시도한다. 하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어둠으로 무장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책의 어디에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슬픔이 있다면 독자는 이미 그것을 감지 한 것이다.


세상과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단절됐으며 단절됐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내 곁에서 머무는 것만 같다. 뜨거운 젊은 피를 가진 그들은 자신들만의 소통방식을 취하며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외롭다고 말하는 그들의 언어로 말이다.

 

마지막 장을 넘긴 독자의 손엔 잡혀지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루이의 슬픔을 타고 몰려온 외로움의 실체일지도 모르겠다.


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문학동네(2004)


태그:#스플릿 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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