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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에게 피어싱
ⓒ 문학동네
[차영진 기자]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익스트림 스포츠'가 유행하고 있다. 극한에 도전한다고 하여 '익스트림(Extreme)'이라 이름 붙여진 이 스포츠는 매끈한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스포츠들에 비해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 익스트림 스포츠 플레이어들은 화려한 묘기를 펼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불사하기도 한다. 그런 탓에 그들에게 교양이나 지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성세대가 제시하는 가치들은 그들에게는 껍데기일 뿐이다.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본능이다. 목숨을 건 줄타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품위 있는 몸짓은 하잘 데 없을 뿐이다. 교양과 지성은 그들을 만족시키지도, 지켜주지도 못한다. 그들은 오로지 본능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할 수 있고, 자신의 안전을 지켜낼 수 있다.

그들은 체인으로 온몸을 무장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눈썹과 입술에 철제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매달아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기도 한다. 보편적인 언어보다는 은어나 속어를 즐겨 쓰며 심지어 온갖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위험한 아이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다.

하라는 것은 도통 할 생각을 않고 엽기적인 행각에만 몰입해 있으니 안타까운 시선이 따라다니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리 보아도 보편적인 인간형과는 거리가 멀고, 심지어는 저러다가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심지어 그들이 스케이트보드 혹은 스노보드의 에지를 그랩하고 힘차게 나는 순간 우리는 경이로움을 체험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지성과 교양을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품위 유지를 위해 교육이 제공되고, 일련의 과정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소정의 결과를 거두었다고 판단될 경우 직업이 알선되기도 한다. 하지만 직업 전선으로 나가면 또 다른 소양이 요구된다. 이렇듯 우리는 엄숙한 축복을 받고 태어나 엄숙한 소년기를 보낸 후, 엄숙한 성인이 되어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엄숙한 길을 걸어간다. 그러니 보편적인 가치를 벗어난 모든 것들은 죄악일 따름이다.

익스트림 스포츠 플레이어들의 낯선 행각도 예외는 아니다. 안전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그것은 가급적 보지도 말아야 할 것들이다. 눈동자를 거치시킬 공간을 손가락 사이에 살짝 배려해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거부의 몸짓을 표출하게 만드는 공포영화처럼 말이다.

<뱀에게 피어싱(문학동네)>은 이러한 인간의 이중성을 겨냥한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내용들은 시종일관 껄끄럽기만 하다. 스플릿 텅(split tongue, 뱀이나 도마뱀처럼 양쪽으로 갈라진 혓바닥)을 가진 사내에게 반한 주인공 루이의 괴상한 취향은 물론이고, 그의 권유로 루이가 스플릿 텅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하는 모습도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또한 루이의 남자친구를 자처하는 스플릿 텅의 소유자 아마가 루이를 희롱한 건달들을 흠씬 두들겨 패준 후 사랑의 징표로 건달의 이빨 두 개를 뽑아 루이에게 넘겨주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기까지 하다. 이것도 모자라서 루이는 아마처럼 등에 문신을 새기기로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루이는 문신 제작의 대가로 피어싱 숍의 주인인 시바와 관계를 가지기도 하는데 이들은 가학과 피학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탐한다. 게다가 루이는 미성년자 임에도 불구하고 루이와 동거를 하고 있고, 알콜에 중독 되어 있기도 하다.

분명히 정상이 아닌 모습들이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려가면서도 이들의 모습을 줄곧 응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소설의 시작과 함께 동공이 잔뜩 부풀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버리게 되는 이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고려하더라도 이 작품이 가지는 시선장악력은 예사롭지 않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가지는 흡인력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결과가 가능한 것은 작품이 우리 내부의 은밀한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은 기성세대의 우려를 자아내게 할 만한 요소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기존의 질서를 부인하고 일탈을 꿈꾸던 시절을 지나왔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숙한 자아로 우뚝 선 그들은 현재 이성의 지시에 충실히 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진실함에 있어서 이성을 앞서는 것은 언제나 본능이다. 얼굴의 곳곳에 피어싱을 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것은 강렬한 욕망의 반어적 표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본능을 충분히 표출할 수 있었던 시기를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던 불만에서 기인하는 질투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만인이 혐오해마지 않는 사디즘과 마조히즘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 하지 않는가.

이 작품은 가네하라 히토미의 데뷔작이자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이다. 저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등교를 거부한 이색전력의 소유자로 이 작품을 통해 2003년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했고, 2004년 와타야 리사와 함께 아쿠타가와 상을 공동 수상하며 37년 만에 아쿠타가와 상 최연소 수상기록을 갱신했다.

독특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인지 저자의 문체는 매우 자유분방하다. 그러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언어의 치장 따위는 기대할 수조차 없다. 또한 젊은 작가 특유의 힘찬 필력도 돋보인다. 많은 작가들이 한 번쯤은 심리 저변의 은밀한 본성을 솔직하게 드러내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 가네하라 히토미의 등장은 문학이 차도르를 과감하게 벗어던진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그녀의 차기작이 가져다줄 또 다른 충격을 기대해본다.

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문학동네(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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