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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거미의 사랑-강은교 저/창작과 비평사 강은교 시인의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
초록 거미의 사랑-강은교 저/창작과 비평사강은교 시인의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 ⓒ 창작과 비평사

오랜만에 동향(同鄕)의 시인을 만났다. 작가의 출생지는 이북(以北)이지만 작가가 부산 사람이 된 지는 오래다.

 

현재 시인이자, 부산 동아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로 있는 강은교 시인의 시집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시단(詩壇)에 꽤 알려진 익숙한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녀의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을 통해 그녀의 시심(詩心)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강은교 시인은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아주 소소한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관조와 감정이입 능력을 보여 주면서 일상과의 친밀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시는 곧 역사의식으로 인류애로 번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역사의식과 인류애마저도 그녀 특유의 감수성으로 새롭게 피어오른다.

 

“잡원고도 쓰고, 대학에도 나가고 하면서 돈을 벌죠”

라고 희미하게 말하는 어떤 시인 앞에서,

‘노동자’도 시를 쓸 수 있으며, ‘목수’도 시를 쓸 수 있

다고, 그러니 거짓말한 게 아니냐고, 그 시인 눈을 쏘아

보며 말한 북한군 병사.

아, 강은교(시인)여, 부끄러워라.

...

 

모 문학평론가, 오늘 아침 내 가슴을 밀치며 신경질적

으로 말했다네.

시는 넘쳐난다고.

무엇 때문이었냐고?

내가 그만 어제 감격에 겨워 금강산에서 ‘금강산 풀에게 돌에게……’하며

징을 울렸고

그 징소리에 관한 시를 오늘 아침 썼기 때문이지.

...

 

L.J.N. 저 소리가 들리는가.

저 후훗 숨죽이고 웃어대는 소리가.

크게는 못 웃고 숨죽이고 웃어대는 저 소리가.

(그때 홍천에는 여름 바람이 불고 있었지.) - 어떤 회의장에서 中

 

그녀의 시는 지식인들의 위선에 대한 경계심을 보여준다. 또 L.J.N이라는 첫사랑일지, 과거 친했던 동료일지 모를 인물을 시집에 등장시켜 그에 대해 추억하고 있다. 이는 강은교 시인의 추억속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 순수하게 써 내려갔던 맑은 시심(詩心)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일관된 정신으로 보인다.

 

그녀의 시심은 다음 싯구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시는 결코 잘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결코 아름답게 쓰는 것이 아니다.

시는 나무와 같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뿌리깊은 것이다.

시는 나무와 같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잎들 세상에

출렁이는 것이다.

 

강은교 시인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뿌리깊어지고 나뭇잎사귀처럼 출렁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러라. 이러한 그녀의 시심은 이번 시집 <초록 거미의 사랑>에서 초록 거미를 통해 자신의 분신이자 대리자이며 감정이입된 존재로서 표현되고 있다.

 

초록 거미 한 마리, 지나가는, 강가의 나를 뚫어지게 쳐

다보고 있었어. 예쁜, 예쁜, 초록의 배, 허공에 엎드려……

초록 거미 한 마리, 눈물 글썽이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

보고 있었어, 저 잠자리를 보아, 비단 흰 실로 뭉게뭉게

감긴 저 잠자리 한 마리를 보아, 잠자리를 그만 죽여버

렸네,

 

초록 거미 한 마리, 지나가는, 강가의 나를 뚫어지게 쳐

다보고 있었어. 잠자리를 그렇게도 사랑했던 초록 거미

한 마리…… 예쁜, 예쁜, 초록의 배, 허공에 엎드려……

 

이제 합치리, 없는 날개로 저 거대한 하늘가, 또는 강물

속 어디. - 초록 거미의 사랑

 

결국 강은교 시인 자신의 시적 삶은 초록 거미와 같이 천연(天然)의 삶을 꿈꾸고 있으며 현실 속에 일어나는 아픔들에 힘들어 하지만 다시금 자연 속으로 회귀하려는, 본연에 충실하고자 하는 초록 시심(詩心)을 보여 주고 있다.  


초록 거미의 사랑

강은교 지음, 창비(2006)


#초록 거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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