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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 전 조지 로스라는 호주의 사진가가 찍은 조선의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집이다.
▲ 표지 100여년 전 조지 로스라는 호주의 사진가가 찍은 조선의 풍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집이다.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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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어느 전시회에서 금강산의 4대 사찰, 즉 표훈사, 유점사, 신계사, 장안사 등의 옛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일제시대쯤에 찍었을 법한 고색창연한 흑백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걸어 놓으니 참으로 아름다웠다. 사진의 출처로는 ‘조선고적도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책은 일제가 조선의 강토를 침략한 후 효과적인 식민통치와 문화재 약탈 등을 위해 기획된 ‘조선 국토 조사 프로젝트’의 보고서격이라 한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그 이전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거의 다 불타 없어져버려 이제는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의 사진마저도 일제의 보고서를 참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 사진집은 조지 로스(George Rose, 1861~1942)라는 호주인 사진작가가 일제의 침략이 한참 본격화되고 있던 1904년에 조선에 들어와 당시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찍은 것이다. 그는 회사까지 설립하고 자신의 사진을 대량인쇄해 팔았던 프로페셔널 사진작가였다고 한다. 그가 호주에서 찍은 사진들은 대체로 전형적이고 전범적인, 즉 기술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다소 딱딱하고 죽어있는 사진이었던데 반해 조선에서 찍은 사진들은 현지 주민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과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어 훨씬 더 역동적이고 좋은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고 자라서 익숙한 호주와는 달리 그에게 조선은 미지의 낯선 땅, 새로운 모험의 세계였으므로 호기심에 반짝이는 두 눈으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서의 퀄리티가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구경해본 적이 없어서 ‘입체사진’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의 사진은 스테레오스코프라는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 3D입체화면이라고 한다. 필름원판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100여년의 세월을 감안하면 이미지 상태는 최상급이라 할 만하다. 사진 예술적 측면에서 본다면 프로페셔널 작가가 찍은 아름다운 흑백사진인데다 캡션에다가 화면을 설명해 놓거나 때로는 역사적 사건까지 메모해 놓았으니 이 자체로 사료적 가치도 높다 할 것이다.

물론 그의 사진 설명에 약간의 오류도 있다. 남대문을 설명하면서 서울의 도성 성벽이 50마일(80km)에 걸쳐져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10마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강가의 나루터와 범선들을 찍을 때는 용산과 마포를 구별하지 못했고, 일본인들이 새로 지은 일본식 사찰을 조선의 귀족 사찰로 잘못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들은 먼 타국에서 온 이방인이 말도 통하지 않는 조선에서 좌충우돌 헤매고 다니는 과정에서 발생한 작은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화마에 소실된 숭례문의 100여년 전 옛 모습을 대하니 더욱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숭례문 최근 화마에 소실된 숭례문의 100여년 전 옛 모습을 대하니 더욱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조지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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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진이 참 많다. 이 이방인에게는 흰 옷이 매우 인상적이었던지 곳곳에 흰 옷에 대한 감상을 메모로 남기고 있다. 하기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흰 옷을 많이 입었고, 심지어 진흙뻘 논에서 가래질을 하는 농부들까지도 흰 옷을 입고 있으니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사극 드라마에는 항상 허여멀건 고운 얼굴들만 나오지만 그의 사진에는 단언코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들 햇빛에 심하게 그을려 오늘날의 베트남 사람들처럼 시커먼 얼굴을 하고 있다.

또 사극에는 양반이 주로 쓰는 검정색 넓은 갓과 하인이 사용하는 좁은 벙거지 갓이 전부였지만 사진이 말해주고 있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의 갓은 모양도 종류도 매우 다양했고, 심지어는 아랍인들이 쓰는 터어번 같은 두건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도성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숭례문, 흥인지문과 같은 성문을 지나야 했는데, 사진에 찍힌 모습을 보니 문이 닫힌 시간대에는 12미터나 되는 높은 성벽을 넘어 다니기도 했던 모양이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읽으며 대동강가에 있다는 ‘부벽루’, ‘을밀대’, ‘연광정’ 등의 경치가 참으로 궁금했었다. 그런데 문득 펼쳐든 이 사진집에서 1904년의 대동강변 사진을 발견하고 무릎을 쳤다. 강가에는 돛을 내린 강배들이 촘촘히 들어차 있고, 언덕 위에는 고색창연한 기와지붕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한양 도성 내외와 제물포, 부산의 옛 모습, 그리고 당분간은 가보기 힘든 북녘 땅 평양과 진남포의 옛 모습까지 이렇게 담겨 있으니 이 자체로 소중한 문화재급이다. 가뜩이나 전란으로 인해 옛 자료들이 턱없이 부족한 판에 이렇게 아름답고 잘 보존된 사진이 우리에게 전해졌으니 참으로 반가울 따름이다.


호주 사진가의 눈을 통해 본 한국 1904

조지 로스 지음, 교보문고(교재)(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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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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