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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는 노래를 정말 호소력 있게 부르지요.”

 

배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듣는 평가다. 1971년 11월 7일 만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가수 배호. 잘생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최저음에서 최고음까지 자유롭게 넘나든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듯이 밀고 당기는 창법을 구사한다.

 

나훈아, 남진과 더불어 가요 순위 남자가수 부문 1, 2, 3위를 다투던 시절이 있었다. 배호가 만 29세에 요절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렀다면 가요계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배호는 1942년, 남진은 1945년, 나훈아는 1947년생이다)

 

남녀노소 나눌 것 없이 폭넓게 사랑을 받았던 배호의 노래… 더 노래를 할 수 있었다면 배호는 창법에서 어떤 실험을 구사했을지도 모른다. 배호의 데뷔 초창기 노래와 전성기 노래를 비교해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창법 실험에 몰두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호소력 넘치는 노래를 들으면 마치 한(恨)의 살풀이라도 하는 느낌이 든다.

 

인기가수들에게는 팬클럽이 있게 마련이다. 배호는 안타깝게도 요절했지만, 배호 사후 30년쯤 뒤인 2000년대 들어 생겨난 팬클럽들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가수 배호의 노래를 함께 듣고 배호의 노래를 부르는 모임이 여럿 있는데, 그 중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은 지난해에 종로구민회관에서 배호가요제를 열었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모임을 찾아가 보았다.

 

함께 모여서 배호를 추억한다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정기모임이 있었다. 일시는 2월 16일(토) 오후 6시, 장소는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라이브카페 ‘검은나비’. 마침 배호의 노래 가운데 ‘검은나비’가 있기 때문에 라이브카페 ‘검은나비’가 모임 장소이니까 궁합이 맞는다.

 

나는 인천 만수동 하이웨이 주유소 맞은편에서 9100번 광역버스를 타고 양재역에서 내린 다음 지하철로 갈아 타고 대치역까지 간다. 먼 길이지만 배호의 예술혼을 느끼러 가는 길이라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가는 동안에 배호의 ‘검은나비’ 노랫말을 떠올린다.

 

대치역에서 빠져나와, 물어물어 모임 장소를 찾는다. 지하 1층에 자리한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각 테이블에는 잡채나 녹두전 등 모임을 위해 카페에서 직접 만든 음식이 정성껏 장만되어 있다. 아직 저녁식사 전이라 뼈해장국과 공기밥도 마련되어 있다. 배호 팬들을 위하여 특별히 장만한 음식들이란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이자 모임이 시작된다. 제2회 배호가요제 준비 상황이 공지되고, 배호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배호가 불렀던 노래들은 역시 노랫말이 맛있다. 배호는 작곡가들이 악보를 보여주면 노랫말을 먼저 살펴보았다고 한다.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에는 김두수씨와 추석민씨와 이병식씨 등, 특히 배호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는 회원들이 있다. 배호 노래라면 거의 다 부를 줄 아는 김두수씨는 노래방 기기에 올라 있지 않은 배호의 노래를 경음악에 따라 부르는데, ‘영월애가’를 부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모임을 알차게 이끌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박두태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중앙회장은 배호의 ‘비겁한 맹세’를 불렀다.

 

 

‘당신’의 가수 김정수씨의 동생인 김혜정씨가 ‘검은나비’를 운영하는 가수인데, 그녀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그녀 특유의 창법으로 부른다. 특별한 맛이 느껴진다.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배호의 노래를 부르며 배호의 예술혼을 느낀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배호의 노래에 흠뻑 젖어보는 일, 배호의 예술혼을 기리는 매우 소중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노래비 건립 준비중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지부 모임이 2월 19일(화)에 부평에 있는 ‘밀레니엄’에서 있었다. 오후 7시라 오후 6시쯤 집을 나선다. 구월시장 앞에서 34번 시내버스에 올라 부평시장 앞에서 내린 뒤 거기서부터 걸어간다.

 

지하에 있는 모임 장소에서는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경로위안잔치가 있었다. 매월 셋째 주 화요일은 이곳에서 경로위안잔치를 가진다. 노인정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회원들이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대접하며 배호 홍보가수들이 노래를 들려드리는 것이다.    

 

꾸준히 할머니 할아버지 위안잔치를 열고 있는 김종구씨와 인사를 나눈다. 배호의 ‘영시의 이별’을 정말 그럴싸하게 부르는 남태풍씨가 환한 얼굴로 웃는다. ‘잃어버린 청춘인데’ 앨법을 낸 라성일씨도 와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노래를 들려드리기 위하여 진작부터 와 있었던 것이다.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모임’ 인천지부에서는 요즘 배호의 ‘비 내리는 인천항부두’ 노래비 건립을 추진중이다. 이점선 인천지부장이 현재의 노래비 건립 추진 상황을 알린다. 

 

이어서 배호 노래자랑 시간이다. 모두들 한 노래 하지만 특히 남태풍씨의 노래가 인기를 끈다. 배호의 오랜 팬인 남명선씨는 여자들이 부르기 어려운 배호의 노래를 구성지게 소화해낸다.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무대 위에 섰다가 쓰러지곤 했던 가수 배호… 그의 예술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배호의 인천 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배호의 노래를 부르는 한편, 배호의 ‘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노래비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세월이 30년쯤 흐른 뒤에는?

 

이렇게 매달 빠짐없이 열리는 배호 모임처럼, 배호의 노래는 많은 팬들이 사후 36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즐겨 듣고 부른다. 그만큼 노래가 뛰어난 것이다.

 

하지만 세월은 흘러가게 마련이고 배호의 팬들도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 40대 중반(배호가 1971년인 만 29세에 요절할 때 초등학교 1학년생들이었던 사람들이 1964년, 1965년생들이다) 이상의 사람들은 배호의 노래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배호의 노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월이 30년쯤 흐른 뒤에는, 배호의 노래가 세상에서 얼마나 애청(愛聽)되고 불리어지고 있을까? 명화(名畵)처럼, 몇 백 년 후에도 뛰어난 배호의 노래는 세대와 관계없이 그 명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두 군데 배호 모임에 다녀오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태그:#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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