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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절가수 배호(裵湖)의 팬이다. 팬도 보통 팬이 아니다. 노래방에 가도 배호 노래만 부르며, 노래방 기기에 올라 있는 배호 노래 가운데 26곡을 부를 줄 안다. 대학생 때는 ‘돌아가는 삼각지’에 빠져 있다가 30대에는 ‘누가 울어’를 주로 불렀으며, 중년이 된 이후에는 ‘오늘은 고백한다’와 ‘비겁한 맹세’를 비롯하여 이것저것 골고루 부른다.

배호보다 노래를 더 잘하는 가수는 없다고 믿고 있으며, 스스로 배호의 영향을 받은 소설가라고 생각하고 있다. 배호와 인연이 있는 분들을 만나고 취재하여 <배호평전>까지 썼으며, 속도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장편소설 <성(聖) 배호 코드>도 쓰고 있다.

배호는 누구인가? 1942년 4월 24일에 태어나 만 29세인 1971년 11월 7일에 숨진 요절가수다. 고 박시춘 선생을 비롯한 많은 작곡가와 작사가 또는 음악평론가들이 그를 가리켜 “100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최대의 가수”라고 찬사했다.

1963년 ‘굿바이’(김광빈 작곡)와 ‘사랑의 화살’을 발표하여 가수 데뷔. 1966년 신장염에 걸렸다가, 1967년 ‘돌아가는 삼각지’(배상태 작곡)를 발표하여 KBS 가요 베스트 전국 집계 20주 연속 1위를 차지한다. 또한 1967~1968년 사이에 MBC 10대 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등 각 매스미디어 주최 가요 행사에서 무려 29개 부문의 가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다가 1971년 11월 7일 신장염 투병 중 타계했다.

나는 동창 모임 같은 모임에 잘 안 나가는 사람인데, 딱 하나, 배호 모임에는 자주 나간다. 가수 배호와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이 짙은 동질성을 느끼며 하나가 되고 정(情)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서울에 배호(裵湖)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탄생하였다니, 배호 전문가인 내가 안 가볼 수가 없다. 공간의 이름이 ‘돌아온 배호’다. 그곳에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배호 모임을 갖는데, 이 달에는 사정이 있어 가지 못했고 지난달에는 다녀왔다. 1월 26일(토)이니까 좀 지나긴 했지만 기억을 되살려본다.  

오후 6시 30분, 6호선 대흥역 3번 출구로 빠져나오자 오른쪽으로 ‘돌아온 배호’라는 간판이 보인다.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는 배호의 얼굴도 보인다. 지하로 들어가는 계단에도 배호의 얼굴이 있다. 배호에 관한 설명도 곁들여 있다. 입구로 들어서자 ‘돌아온 배호’를 운영하는 정용호씨가 반갑게 맞으며 방명록을 내민다. 나는 ‘<배호평전> 저자 김선영’이라고 쓴다.

배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 '돌아온 배호' 배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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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배호' 입구에서는 커다란 배호의 모습이 찾는 이를 반긴다.
▲ 배호의 모습 '돌아온 배호' 입구에서는 커다란 배호의 모습이 찾는 이를 반긴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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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연구가인 정씨는 배호 팬들 사이에서 ‘배호 의제’로 통한다. 배호의 부친 배국민 독립운동가에 관하여 취재하기 위하여 배호 모친을 찾았다가 그녀를 어머니로 모시기로 하여 생겨난 인연이다. 배호의 모친도 누이동생도 배호의 곁으로 간 지금, 배호 유품도 정씨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돌아온 배호’ 공간의 벽면에는 데뷔 시절, 전성기, 그 이후로 나누어 배호의 역사를 사진과 글로 소개하고 있으며, 배호의 음악 스승이자 외숙부인 김광빈(MBC 초대 악단장) 옹에 관한 얘기도 곁들여져 있다.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에서는 배호가 노래하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흘러나오고 있으며 배호의 노래가 공간 안에 울려퍼진다. 가만히 서 있어도 배호의 느낌이 훈훈하게 전해져 온다. 배호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이처럼 배호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건 좋은 일이다.

배호의 사진과 역사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 배호의 역사 배호의 사진과 역사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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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배호의 모습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 배호의 모습 남산에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배호의 모습이 벽면에 장식되어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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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의 사연이 담긴 삼각지의 엣 모습이 벽면에 붙어 있다.
▲ 돌아가는 삼각지 배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의 사연이 담긴 삼각지의 엣 모습이 벽면에 붙어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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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연주를 맡고 있는 양정대씨가 반갑게 맞는다. 교통사고 이후에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한다. 공간을 가득 메운 배호 노래를 부르러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있다.     

배호 노래를 가장 비슷하게 부른다는 평을 받는 ‘꿈속의 가시내’의 가수 유비씨가 들어오고, 배호 모창가수 김호씨와 백상호씨가 들어온다. 종로 낙원동 밤무대에서 배호 모창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호씨가 할머니 두 분을 소개시켜 준다. 원로가수 양금희 여사와 김마리아 여사다. 양금희 여사는 배호와 한 무대에 섰던 추억을 떠올린다.

잠시 후, 배호 노래만 틀어놓고 운전하는 택시기사 한태섭씨가 배호의 스승이자 외숙부인 김광빈 옹과 안마미 여사 내외분을 모시고 들어온다. 댁에까지 찾아가서 모셔온 것이다.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자, 오랜만의 만남인지라 몹시 반가워하신다.     

배호를 가수로 키워낸 작곡가 김광빈옹(87세) 부부가 배호의 공간을 찾았다.
▲ 배호의 스승 김광빈옹 부부 배호를 가수로 키워낸 작곡가 김광빈옹(87세) 부부가 배호의 공간을 찾았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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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한 배호 관련 인사와 배호 팬들의 인사말이 오갔고, 양정대씨의 연주로 배호 노래자랑이 시작된다. 김광빈 옹이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힘이 넘치게 자신이 작곡한 ‘굿바이’를 불렀으며, 원로가수 양금희 여사와 김마리아 여사도 전성기 때 자신들이 부르던 노래들을 고운 목소리로 불러 노익장을 과시했다.

배호의 스승 김광빈옹이 자신이 작곡한 배호의 노래 '굿바이'를 불러 노익장을 과시했다.
▲ 노래하는 김광빈옹 배호의 스승 김광빈옹이 자신이 작곡한 배호의 노래 '굿바이'를 불러 노익장을 과시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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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 노래를 정말 비슷하게 부르는 가수 유비씨가 자신의 노래 '꿈속의 가시내'를 부르고 있다.
▲ 배호 노래를 가장 비슷하게 잘 부른다는 가수 유비씨 배호 노래를 정말 비슷하게 부르는 가수 유비씨가 자신의 노래 '꿈속의 가시내'를 부르고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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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 모창을 잘하는 백상호씨가 배호의 '당신'을 부르고 있다.
▲ 배호 홍보가수 백상호씨 배호 모창을 잘하는 백상호씨가 배호의 '당신'을 부르고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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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의 ‘울기는 왜 울어’를 정말 비슷하게 부르는 가수 유비씨는 자신의 발표곡 ‘꿈속의 가시내’(배상태 작사 작곡)를 멋들어지게 불렀으며, 김호씨와 백상호씨는 각각 배호의 ‘두메산골’과 ‘당신’을 불렀다. 훌륭한 모창 솜씨다.

그 밖에 노래방 기기에 들어가 있는 배호의 많은 노래들이 배호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듯한 아늑한 공간 속에서 배호 팬들에 의해 열창되었다.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 공원’, ‘파도’, ‘마지막 잎새’, ‘누가 울어’, ‘비 내리는 명동거리’…. 그랬다. 배호는 팬들의 가슴 속에 뜨거운 불꽃으로 살아 있었다.


태그:#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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