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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조 할머니의 주거지 겸 가게. 하루 종일 방안에 갇혀 생활하다 보니 햇빛 볼 시간조차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외출복이 담배진열대 앞에 걸려 있다.
 최순조 할머니의 주거지 겸 가게. 하루 종일 방안에 갇혀 생활하다 보니 햇빛 볼 시간조차 없다고 한다. 할머니의 외출복이 담배진열대 앞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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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볼 때마다 ‘과연 하늘에는 자비가 있고, 이 땅에는 정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더욱이 한평생을 성실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삶의 여정이 상처투성이로 점철된 불행한 사람을 볼 때 그런 회의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지난 24일 필자가 최순조(76세)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몸이 안 좋다며 아침식사도 거른 채 네 평 남짓한 점포에 누워 계셨다. 이 점포가 유일한 보금자리이기에 이곳에서 먹고 자며 지낸 지가 오래 되었다고 한다. 처음 분양받을 때부터 보일러 설치가 되지 않아 한 겨울에도 전기장판을 깔고 지내지만 큰 불편은 없다고 한다. 최 할머니는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의 15대 종손의 맏딸이기도 하다.

"40년 넘게 한복을 만들어 애들 교육까지 시키고 집까지 장만해서 살 때가 참 행복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남편(94년 사망)과 다 키운 세 아들을 질병과 사고로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이렇게 살아요. 한복 일감이 많이 줄어 오래전부터 옷 수선과 담배판매를 같이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인근에 대형 할인매점이 들어서는 바람에 요즈음은 둘 다 합해도 월수입이 10만 원밖에 되지 않아요. 몸이 좋지 않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최순조 할머니, 네 평 점포에서 담배 팔아 생계 겨우 유지

"4년 전, 오랜 투병생활을 하다 끝내 사망한 막내아들 장례를 치르고 오니 가게 큰 유리창이 깨져 있고 가게 안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더군요. 도둑이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와 담배와 돈 되는 물건을 모두 훔쳐갔지요. 피해금액이 1천만원을 넘었지요. 10년 사이에 남편과 세 아들을 먼저 보내고 전 재산을 도둑맞고 나니 정말로 죽고 싶더군요. 요즈음도 나 혼자 점포에서 먹고 자는 것을 아는 술 취한 청년들이 심지어는 새벽 2시에도 창문을 두드리면서 담배를 달라고 행패를 부리곤 해요."

최 할머니는 대구시 동구 신천동에서 한복 삯바느질과 담배판매로 얻는 수입금에 의존하여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노인 혼자 살다보니 온갖 애꿎은 일을 많이 겪으며 산다고 한다.

"2007년 8월 1일에 경찰서에서 오라고 하여 갔더니 ‘7월에 청소년한테 담배를 팔았지요?‘ 라고  묻기에 나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어요. 잠시 후 경찰관이 청소년 1명(김모군)을 데리고 오더니 이 학생에게 담배를 팔지 않았냐 하더군요. 나는 팔지 않았다고 했지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이지요.

그걸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얼마 후 벌금 50만원 통지서와 담배영업정지처분(3개월) 통지서를 받았어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여러 번 담배를 도둑맞은 것만 생각해도 억울한데…. 그 때는 도둑도 안 잡아 주더니, 벌금 50만원을 내라고 하니…."

할머니의 형사기록에는 청소년 김모군이 과거에 할머니의 가게에 담배를 사러왔다가 할머니가 신분증을 요구하는 바람에 두세 번 그냥 돌아갔다고 되어 있고, 그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2007년 7월 7일 저녁에 담배를 살 수 있었다고 진술되어 있다. 이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셈이다.

최 할머니는 작년 11월 15일에 법률구조공단(이사장 허진호)을 찾아가서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고 무료변호사(부광득 법무관)의 도움을 받아 정식재판에서 결국 벌금 30만원이 감액된 20만원을 선고받았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다는 혐의로 벌금50만 원에 처하는 약식명령을 받고 최순조 할머니가 너무 억울하다며 적어낸 정식재판 청구서의 내용과 이유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다는 혐의로 벌금50만 원에 처하는 약식명령을 받고 최순조 할머니가 너무 억울하다며 적어낸 정식재판 청구서의 내용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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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담배 팔았다는 혐의로 벌금 50만원 부과돼

"큰아들(2002년 사망)이 어렸을 때부터 한복집을 운영했어요. 22년 전 아파트 재건축 때문에 한복집이 헐리면서 지금의 4평 점포를 분양 받았어요. 아파트가 한 채 있긴 했으나 막내아들(4년 전 사망)의 치료비에 충당하느라 그마저도 팔고 지금은 이 가게가 유일한 재산이지요.

손자 · 손녀의 학비 뒷바라지 하느라 점포를 담보로 대출 받아 쓰고, 카드빚을 쓰는 바람에 은행에 진 빚이 2300만 원가량 돼요. 이자부담이 너무 커서 이 점포를 팔아 빚을 갚으려고, 작년에 5천만 원에 복덕방에 내놓았지만 아예 문의하는 사람조차 없어요."

"할머니, 손자 · 손녀 외에 며느리나 다른 가족은 없으세요?"

"아들 한 명이 살아있긴 하나 그 애도 그동안 형제들 치료비 감당하느라 마음고생이 몹시 심했을 겁니다. 가족들 먹여 살리기도 바쁠 텐데 또 손을 벌릴 수는 없지요. 명절 때마다 용돈하라고 10만 원씩 가져오긴 하지만 그 애도 월급 받아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어렵다고 하더군요. 며느리(사망한 장남의 처)는 애들 두 명 키우며 서울서 월세로 살고 있고요.

이제는 관절도 안 좋고 눈도 침침해 예전처럼 일도 오래 할 수 없어요. 점점 생활이 어려워져 작년에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으나 4평짜리 점포가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내가 공짜를 좋아하지 않지만 워낙 형편이 어려워 수급자 신청을 했는데…." 

필자는 참담한 심정으로 "할머님, 법에도 눈물이 있다고 하잖아요. 제가 방법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할게요"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 할머니를 남겨둔 채 돌아오는 발걸음은 이 생각(벌금납부 건) 저 생각(기초생활수급자신청 건)으로 무겁기만 했다.

최 할머니가 한 달 동안 담배를 팔아 벌어들이는 수입(5만 원)과 한복 바느질해서 한 달 버는 돈(약 10만원)을 다 합해야 15만원이다. 이 중 7만 원 가량의 전기요금(전기장판 등 각종전열사용비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은 8만원뿐이다. 20만원의 벌금은 최 할머니에게는 두 달 치 수입인 셈이다. 할머니가 계속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벌금액수가 자신의 수입 면에서 볼 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네 평짜리 점포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자 안된다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가게 안에 걸어 둔 최순조 할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과 큰 아들의 사진. 아들은 육군장교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중소기업의 대표이사까지 지냈으나 희귀병에 걸려 6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2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최순조 할머니는 최영장군(고려말 충신) 15대 장손의 맏딸(16대손)이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했던가. 가게 안에 걸어 둔 최순조 할머니의 젊었을 때 사진과 큰 아들의 사진. 아들은 육군장교로 근무하다 퇴직한 후 중소기업의 대표이사까지 지냈으나 희귀병에 걸려 6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2002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최순조 할머니는 최영장군(고려말 충신) 15대 장손의 맏딸(16대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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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설령 최 할머니가 야간에 청소년을 식별하지 못하고 담배를 팔았다 손치더라도 몹시 궁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냉철한 법의 잣대보다는 배려차원에서 한 번 쯤 훈방조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할머니의 ‘기초생활수급자신청 건’에 대하여는 ‘내가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일종의 채무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유독 최 할머니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남편과 3명의 자식을 차례로 잃고 그 한을 가슴에 품고 사는 할머니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동정과 최영 장군의 직계손이 당하는 물질적 고통에 대한 상징적 의미가 아마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리라. 

최 할머니를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마음에 필자는 주말에 ‘법전’을 뒤적이고 난 다음 부산시의 한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친구는 할머니의 재정상태에 관한 설명을 듣더니 어지간하면 대상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필자는 기대감을 갖고 출근하여 해당 동사무소 담당직원한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한 가지 설명을 덧붙였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5조에 의할 때 최저생계비 46만3047원을 훨씬 밑도는 소득(월10만원)으로 살아가는 최 할머니의 경우, 담당공무원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점포에서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할머니의 수급자신청을 반려한 것은 아무래도 담당자님이 너무 엄격하게 법을 해석한 결과가 아닌가요?"

그러자 담당공무원은 "작년에는 제가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겠고요. 얼마 전에 할머니께서 찾아오셨기에 안 된단 말을 안 하고 ‘일단 점포와 사업체가 있으면 최소생활은 된다고 보기 때문에 점포를 정리하고 신청하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상세히 말씀드렸는데요"라고 친절하게 응대해줬다.

그래서 내가 "점포를 5천만 원에 팔려도 내놔도 안 팔리고, 사업체 수입이라 해봐야 10만원도 안되던 걸요"라고 말하니, 담당자는 "하기야 그 점포가 잘 팔리지는 않을 겁니다. 사정이 그렇다면 서류를 준비하여 신청을 하시면 정성껏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동사무소 직원, 최 할머니 도와주겠다고 답변

법률지식이 짧거나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충분한 법률적 배려나 복지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법체계나 복지제도들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을 제도의 희생양으로 짓밟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실질적 정의의 구현이라는 현대국가가 지향하는 법의 이념을 훼손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최 할머니의 경우 엄격한 잣대로 따지면 법을 어겼으므로 처벌(벌금형)을 받고, 행정처분(영업정지)을 받는 것이 맞다. 또한 조그만 점포라도 있으니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한 처분을 한 공무원의 행위는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하자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찰이 사건처리를 함에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배하지는 않았는지(보강증거 없이 김모군의 진술만을 토대로 입건한 점), 또한 등기된 점포가 있다는 표면상의 이유 때문에 그것을 처분한 후 신청하라고 한 공무원의 업무처리에 무사안일 내지는 소극적인 부작위의 문제는 없었는지(실태조사를 하여 도와주지 않은 점)를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덧붙이는 글 |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5조 1항: 수급권자는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이하인 자로 한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5조 2항: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수급권자에 해당하지 아니하여도 생활이 어려운 자로서 일정기간동안 이 법이 정하는 급여의 전부 또는 일부가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자는 수급권자로 본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5조 3항: 제1항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태그:#법에도 눈물이 있다, #기초생활보장법, #공무원의 과잉행위, #공무원의 무사안일, #관료사회의 병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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