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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지도 등산로 주변의 도로망 및 임도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아 지도를 믿고 등산하는 산악인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 가지산지도 등산로 주변의 도로망 및 임도가 제대로 표기되지 않아 지도를 믿고 등산하는 산악인들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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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에서 시작한 한반도의 정기는 백두대간을 타고 남으로 태백까지 달리다가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속리, 덕유를 지나 남은 모든 기를 모아 지리산을 솟구쳤다.

한편, 태백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은 동해안을 끼고 남으로 달리다가 언양 일대에 1000m가 넘는 고헌, 가지, 운문, 신월, 천황, 재약, 간월, 취서 등 영남알프스라 일컫는 대 산군을 이루고 기를 다한다. 1240m 고지인 가지산은 울산시, 밀양시와 청도군의 경계선에 걸친 산이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장 높고 나무가 별로 없고 군데군데 돌출된 바위들은 일품의 전망을 제공한다.

운문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 대학이 있는 사찰에 어울리게 경내는 너무도 청결하고 모든 곳에서 여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 운문사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비구니 승가 대학이 있는 사찰에 어울리게 경내는 너무도 청결하고 모든 곳에서 여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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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원거리 등산인지라 약간 무리한 등반 계획을 세웠다. 운문사-천문지골-딱밭재-운문산 정상-아랫재-가지산 정상-쌀바위-학소대-운문사로 연결되는 원점회기 산행이다. 지도에서 측정 해보니 20km가 넘은 거리이다. 우리는 출발한 곳에 차가 있으므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겨울철 10시간 이상의 산행시간을 예상해야 하는 거리이다. 무리다 싶었지만 언제 또 가지산을 오랴 싶어 오전 6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5시에 산행을 마치는 10시간 산행과 1시간의 예비시간으로 산행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출발 시간부터 2시간가량 지체되고 있다.

딱밭재 입구를 지나치다

요즈음은 도로공사도 많고 산에는 임도도 많아 지도에 미처 표기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는 길을 잘못 들기 십상이다. 나의 지도에 좁은 등산로는 넓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되어있다. 딱밭재로 오른다는 것이 등산로 입구를 지나쳐 아랫재로 올라버리고 말았다.

능선의 안부에 이르자, 10여명의 파르라니 깍은 머리의 어린 예비 비구니 스님들이 대피소로 보이는 움막을 들랑거리며 음식공양이 한창이다. 스님이 되기 위한 과정 중인지 동안거 중이지만 체력단련을 위해 산에 오른 모양이다.

불교에 관한 책들도 많이 읽고 특히 선불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이들과 불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특별히 누구를 지칭한 것도 아니고 그들을 향해 "이곳이 딱밭재" 이지요? 하고 물으면서 말을 건넨다.

대피소 아저씨로 보이는 사내가 나서며 "딱밭재는 저기 운문산 너머에 있고 이곳은 아랫재 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사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운문산이 개구쟁이 몸짓을 보내온다. 지도에서 현 위치를 확인해 본다. 맥이 빠지나 코스가 단축되어 2시간 늦은 출발을 자연스럽게 조정하였다는 생각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어린 예비비구니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자 코끝이 찡하게 저려온다. 어린 비구니들 특히 나와 얘기를 나눈 예비비구니는 너무 예쁘고 귀여웠으며 청초한 수선화를 연상케 하였다.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산행코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이 무거워져 그 애들하고 대화를 더 이상 나눌 수 없었노라고 하자 집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랫재를 떠난 지 50여 분 되어 1060고지에 도착하였다. 1060고지에서 가지산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매우 훌륭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코스였다. 여기에 따사로운 햇볕이 곁들이니 더 없는 행복감에 집사람과 대화도 잃은 채 창조주의 걸작품 감상에 넋을 잃었다.

가지산 정상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으로 구분되는 가지산 주능선은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와 울산시의 경계이다.
영남알스프 산군 중 가장 높은 1240m 고도는 주변의 산군을 조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 가지산 정상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선으로 구분되는 가지산 주능선은 경북 청도군과 경남 밀양시와 울산시의 경계이다. 영남알스프 산군 중 가장 높은 1240m 고도는 주변의 산군을 조망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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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정상 전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느 곳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 가지산 정상 전국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느 곳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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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영남알프스라 일컫는 주위의 1000m 이상의 산군을 조망하노라니 작년에 힘들어 답사한 천황산, 재약산이 우측에서 안부를 전해온다. 오후 2시다. 지금까지 등반일정은  계획대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곳 가지산 정산에서 쌀바위에 이르는 길은 북사면이다. 눈이 녹아있을 리 없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슬며시 겁이 났다. 하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집사람이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를 찧는다. 집사람에게 미안한 생각이 절실하다. 등반시간은 두 배로 걸리고 등반한 거리는 반으로 줄어든다. 집사람과 나는 두서너 번씩 넘어지고 손바닥에 상처를 입고서야 겨우 쌀바위에 도착하였다.

쌀바위 새천년의 염원이 담긴 비석이 새롭다.
▲ 쌀바위 새천년의 염원이 담긴 비석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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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위에 오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해가 일찍 뜨는 곳"이라 새긴 바위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등산객 중 한 사람이 이곳 쌀바위의 전설에 대해 얘기한다. 옛날 바위 아래 암자가 있어 신도들이 찾아오면 이들이 먹을 만큼 바위 구멍에서 쌀이 나왔단다. 어느 날 욕심쟁이 승려가 더 많은 쌀을 얻고자 구멍을 더 크고 깊게 팠더니 그 후로는 물만 나왔다는 내용이다.

지도에 표기되지 않은 임도

쌀바위를 지나자마자 지도에 표기되어있지 않은 널따란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는 지도상의 등산로를 자주 끊어놓았다. 학소대 하산 코스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내려가니까 등산로는 임도와 합쳐지고 "등산로 아님", 규제간판이 군데군데 눈에 띤다. 지도에 선명히 나와 있는 학소대로 하산하는 코스를 도립공원 측에서 폐쇄하였다면 찾기 힘들 것이다.

집사람을 임도에 기다리게 하고 몇 곳을 따라 내려가 봤지만 이내 길이 끊긴다. 다시 임도로 되돌아 오곤한다. 집사람이 "당신의 평소 말대로 이리 가서 저리 내려가면 되겠네" 하면서 1114고지와 배바위 안부를 가리킨다. ‘산에서 길을 잃으면 능선을 따라 가장 가까운 봉우리로 올라라’, ‘능선의 안부에는 하산길이 있다’는 등산상식을 집사람은 실전에 활용하고 있다. 집사람의 순발력이 빛을 발한다. 학소대 입구를 찾지 못해 30분 이상 하산을 지체하고 있는 내가 작다고 느껴진다.

1114고지 앞에 이르자 임도와 등산로가 갈라지고 1114고지 좌측으로 횡단하는 길이 선명하게 나있다. 사리암 주차장을 떠난 지 7시간이 넘었다. 1060고지에서 가지산 정상까지 오르면서 느꼈던 자유와 행복감은 없어지고 엄습하는 피곤에 사리암까지의 하산거리가 겹쳐저 묵직한 무게로 기슴을 누른다.

안부를 만날 때까지 능선따라 걷다

묵묵히 1042고지를 지나 배바위로 내려가는 안부를 향해 걷는다. 경사가 급하고 미끄럽다. 다리가 많이 떨린다. 겨우 배바위 안부에 이르렀다. 5시이다. 이제 확실히 신뢰할 만한 이정표를 만났다. 학소대 계곡입구까지 2km, 여유 있게 잡아도 50분이면 족하다.

계곡입구에서 사리암까지는 조명구가 없어도 야간 산행이 가능한 넓은 외길이다. 사리암을 떠난 지 8시간이 넘었다. 많이 지친 집사람은 말없이 하산길을 재촉한다. 이제 운문사 뒤쪽에 펼쳐진 병풍모양의 모든 산들을 돌아 내려가고 있다. 떨리는 다리는 이제 무감각 상태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걸음을 멈추며 외친다.

“여보! 우리가 아침에 산행한 길이다!"

학소대와 아랫재의 갈림길에 이르렀다. 우리는 결국 학소대 윗 능선으로 하산한 것이다. 시간은 5시 30여분, 사리암을 떠난 지 9시간이 지나고 있다. 지친 그러나 웃고 있는 집사람을 껴안아본다. 날이 저문다. 여유롭게 걸으면서 학산온천과 저녁 메뉴에 관한 대화와 농담을 나누다 보니 사리암 주차장이다. 컴컴한 곳에 우리의 적토마 혼자서 덩그러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영남알프스는 명전허불이 아니다.



#가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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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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