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최금희씨(왼쪽)와 강영숙 작가(오른쪽) <리나>의 작가 강영숙씨가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 <리나>의 집필에 도움을 준 최금희씨가 함께 했다.
▲ 최금희씨(왼쪽)와 강영숙 작가(오른쪽) <리나>의 작가 강영숙씨가 독자와 만나는 자리에 <리나>의 집필에 도움을 준 최금희씨가 함께 했다.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새터민 최금희씨(24)를 만났다. 소설가 강영숙씨가 북한이탈 청소년을 주제로 쓴 성장소설 <리나>를 가지고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였다.

최금희씨를 보며 여러 가지 감동을 받았다. 가장 큰 감동은 그의 표정이 한없이 밝고 투명하다는 것이었다. 유년의 꿈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을 하루아침에 떠나 수년간 생명을 담보로 이곳저곳을 헤매다 겨우 들어온 대한민국에서 느꼈을 이질감과 실망감 또한 적지 않았을 텐데…. 그는 참 꿋꿋하게도 자신의 길을 개척해 북한 이탈 청소년들에게 모범적인 삶의 지표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가 강영숙씨는 <리나>를 집필하기 전 금희씨를 8번 정도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했다. 참으로 인상적인 것은 강씨가 독자들과 만나는 자리에 금희씨가 밝은 얼굴로 찾아와 또렷한 목소리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뒤풀이 자리까지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녀가 건강하게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유년의 기억이 북한에 살았다고 다를까?

최금희씨는 꿈 많은 사춘기인 15살 나이에 친구들과 학교․고향을 등지고 북한 땅을 떠나왔다. 불과 서너 시간이면 족했을 한국을 오기 위해 중국, 버마, 태국을 떠돌다 7000Km를 돌고 돌아 4년이란 긴 세월을 거쳐야만 했다. 그녀가 북한 땅을 떠나 온 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고 금희씨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금희의 여행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4년에 걸친 긴 여정과 북한에서의 유년을
일기체로 풀어 낸 탈북청소년 최금희씨의 책이다.
▲ 금희의 여행 아오지에서 서울까지 4년에 걸친 긴 여정과 북한에서의 유년을 일기체로 풀어 낸 탈북청소년 최금희씨의 책이다.
ⓒ 민들레 출판사

관련사진보기

금희씨는 2007년 길고 험난했던 여정과 북한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을 엮어 <금희의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그 책은 동화처럼 아주 쉽고 간결한 문체지만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 읽는 이들에게 주는 '울림'과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책에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친구들과 '쌔감지'(소꿉놀이)를 하고, 딱지치기를 하고, 도랑에 둑을 만들며 놀던 소중한 유년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사람들은 굶어죽는 곳에서 나와 배불리 먹고 자유도 누리니 당연히 이곳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북한에서 배고프고 먹고 살기는 힘들었지만 내가 뛰놀던 산이 있고, 친구가 있고, 학교가 있고, 15년이나 살았던 곳인데 한 순간에 잊힐 수야 없지요."

인간의 삶이 결코 '먹을 것' 만으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바라던 '희망의 땅'은 아니지만..."

금희씨는 처음에는 배고픈 북한 땅을 떠나 온 것이 100%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영영 이별해야 한다는 말 대신 사탕을 친구들의 손에 건네주고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작별 인사를 대신한 어린 소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고향을 떠나야 하고 더군다나 잡히면 감옥에 가거나  버마, 태국 등지로 추방당하는 현실을 이해하기 상당히 힘들었다.

금희씨 가족은 어디서나 마음을 졸이며 살아야 했고 죽음의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난파의 위험 속에 목숨을 포기하다시피한 적도 있었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데 배에 물이 들어왔어요. 가족이 교대로 물을 퍼내는데 계속 하다 보니까 팔에 힘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물을 퍼서 들어다가 내 머리에 붓고 있는 거예요. 밤에는 그냥 쓰러졌죠. 물이 차니까 엔진이 멎고… 퍼내고 또 퍼내고… 또 퍼내고…."

기적적으로 중국어선에게 구출된 금희씨 가족은 중국에서 1년을 살았다. 북한 국적을 속이고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고 버마로 갔다 잡혀서 40일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꿈 많은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일들이었다. 그렇게 힘든 여정 끝에 태국을 거쳐 한국 땅에 온 것이 2003년이었지만 한국은 바라던 '희망의 땅'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금희씨는 늘 외롭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한국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 탈북자라고 하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어른들의 비뚤어진 시선이었다. 대학을 가려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지만 자기 너무 다른 한국의 아이들을 보고 두 달만에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2003년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똘배학교'와 '셋넷 학교'에서 박상영 선생님을 비롯해 좋은 선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은 검정고시를 거쳐 남동생과 나란히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밝은 미소를 짓는 최금희씨
▲ 밝은 미소를 짓는 최금희씨 
ⓒ 이명옥

관련사진보기

이제 금희씨는 여느 발랄한 대학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이 탈북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산다. 자신에게 힘이 되었던 '셋넷학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며 자원봉사를 하기도 하고 그 나이 또래가 지닌 꿈과 고민을 친구들과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하지만 금희씨에게 북한은 여전히 악의 축이 아닌, 친구들과 쌔감지 놀이를 하며 뛰어다니던 '유년의 뜨락'일뿐이며 언젠가 다시 밞고 싶은 고향땅일 것이다.

배를 곯아 본 적이 없고, 황태자처럼 떠받들어 키워진 우리 아이들과 무조건 북한 이탈주민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의식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금희의 여행>은 탈북 청소년 최금희씨가 쓴 논픽션으로 민들레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리나 - 개정판

강영숙 지음, 문학동네(2011)


#금희의 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