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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아니 '짜장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그것에 얽힌 사연이야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이여 봤자 대개는 어둡고 어수선하던 시절의 애잔한 추억일 수밖에 없다.

해마다 이맘 때쯤 되면 곶감 말리기 위해 건조장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진노랑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리기 쉽지 않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으로는 논산 양촌리, 좀더 정확히는 임화리가 그러한 곳인데, 그곳은 노란 감과 더불어 마을 한가운데 있는 빨래터, 아침햇살에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밭을 보너스로 볼 수 있어 우리 가슴 저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던 귀소본능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http://yonseidc.com/2005_12/gam.html )

그러나 올해는 때가 좀 늦어서인가 감나무의 감은 까치밥만 볼 수 있고 마을 한가운데 빨래터는 재작년보다 흐려진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기만 하다.

곶감을 말리기 위해 건조장에 널어놓은 감. 진노랑의 세계로 빠져든다. 올해는 좀 늦게 가서 감나무에 달린 감을 풍성히 보질 못했다. 올해 곶감축제는 11월17~18일이다.
 곶감을 말리기 위해 건조장에 널어놓은 감. 진노랑의 세계로 빠져든다. 올해는 좀 늦게 가서 감나무에 달린 감을 풍성히 보질 못했다. 올해 곶감축제는 11월17~18일이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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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을 5일장이 열리는 익산으로 돌린다. 물어물어 찾아간 익산장(북부시장 4일, 9일)은 길가에 세워진 울긋불긋한 천막과 대봉감을 하나씩 매달아 놓은 묘목, 단감들로 오늘이 장날임을 알려준다. 장날답게 장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곳에는 밭에서 뜯어온 나물과 채소를 늘어놓은 시골아낙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밭에서 뽑아 온 채소류를 다듬고 있는 시골 아낙들. 장날에만 장터를 차지하는지라 주로 응달진 골목길에 장사치고 있다.
 밭에서 뽑아 온 채소류를 다듬고 있는 시골 아낙들. 장날에만 장터를 차지하는지라 주로 응달진 골목길에 장사치고 있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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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더기에 5천 원 하는 단감, 아무렇게나 생긴 홍당무, 살이 연할 것 같은 생강, 볶지 않은 땅콩…. 땅콩을 하나 사들고 주전부리로 하나씩 먹어가며 장을 둘러본다. 전라도식 짙은 양념을 한 각종 반찬과 김치가 있는 반찬가게에서 집사람은 하나 건진다. 알타리 무와 쪽파로 만든 동치미. 예전에 한번 먹어 본 맛을 잊지 못하던 것인데 오랜 고향친구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것처럼 반갑다. 곁들여 전라도식 배추김치도 한 포기 더 산다.

알타리 무로 담근 동치미 맛을 잊지 않고 있던 집사람은 발걸음을 다시 돌려서 동치미를 산다. 전라도식으로 속을 넣은 배추김치도 더 산다.
 알타리 무로 담근 동치미 맛을 잊지 않고 있던 집사람은 발걸음을 다시 돌려서 동치미를 산다. 전라도식으로 속을 넣은 배추김치도 더 산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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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밀려오는 시장기를 어디서 해결할까 하던 중 임시로 쳐놓은 천막 아래 식탁과 간이의자를 갖다 놓고 커다란 솥에서 김이 솟아오르는 주막집 같은 곳이 눈에 띄인다. '최씨네 짜장'. 혹시나 하고 들어갔더니 맞다. 여산장에서 '똥짜장'으로 불리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다는 그 짜장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똥짜장이라는 애칭(?)은 즉석에서 빚는 밀가루 반죽에 소다 넣어서 쫄깃한 색깔 누런 국수와 춘장을 남들보다 덜 섞어 짜장이 누렇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는데, 지금은 소다도 덜 넣고 짜장도 새까맣다.

원래 여산장에서 이름을 떨쳤던 '똥짜장'. 소다를 넣어 국수발이 누렇고 춘장을 적게 넣어 짜장소스 색깔이 누렇다 하여 붙여진 '애칭?'
임시로 천막을 쳐놓고 즉석에서 국수를 내어 담아 내온다. 한그릇 2천원.
 원래 여산장에서 이름을 떨쳤던 '똥짜장'. 소다를 넣어 국수발이 누렇고 춘장을 적게 넣어 짜장소스 색깔이 누렇다 하여 붙여진 '애칭?' 임시로 천막을 쳐놓고 즉석에서 국수를 내어 담아 내온다. 한그릇 2천원.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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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단 두가지 우동과 짜장.  단무지와 김치가 먼저 나오고 이윽고 기대되는 짜장면이 나온다. 장터음식답게 적지 않은 양의 국수에 짜장을 덮고 그 위에 파 썬 것과 고춧가루을 뿌려 생김새가 독특하다. 썩썩 비벼 한입 베어무니 울컥 어릴 적 생각이 밀려온다.

맞벌이를 하셨던 어머니는 막내의 성화에 못이겨 해보지도 않던 짜장면을 손수 만들어 주기로 하였다. 반죽에서부터 짜장까지. 지금 같으면 손쉽게 '레시피'를 구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나의 어머니는 사랑만 있었지 손에 쥐어진 '레시피'가 없었다. 설익은 짧고 투박한 국수가닥과 그 위에 얹은 춘장냄새가 풀풀나는 덜 볶인 짜장.

넉넉하게 담긴 국수와 이제는 까만 짜장 그리고 그위에 송송 썬 파와 빨간 고춧가루로 모양을 낸 '똥짜장'. 한입 베어물다 그 맛에 울컥 '안습'해진다.
 넉넉하게 담긴 국수와 이제는 까만 짜장 그리고 그위에 송송 썬 파와 빨간 고춧가루로 모양을 낸 '똥짜장'. 한입 베어물다 그 맛에 울컥 '안습'해진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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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똥짜장에서 느끼는 약간 덜 볶인 춘장맛이 '안습'(眼濕)을 유발하니 진노랑의 고상한 세계에서 느껴보려던 나의 시건방진 고향타령은 바로 이 똥짜장에서 제대로 카운터 펀치를 맞고 녹다운되고야 만다.

*논산 양촌리 곶감축제 2007. 11. 17 – 11. 18
*익산 5일장 (솜리 북부시장) 4일 9일
*근처 미륵사지에 들러 석탑을 보고 나면 산등성이의 고압선 철탑이 석탑처럼 보인다.
*더 많은 사진보기 http://yonseidc.com/2007/iksan.html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닥다리즈 포토갤러리 http://yonseidc.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익산장, #똥짜장, #최씨네짜장, #북부시장, #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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