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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와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조사연구팀이 지난 7월 약 2주에 걸쳐 남미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다녀왔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21세기형 사회주의'의 실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다. 좌파 경제학자의 눈에 그들의 실험은 어떻게 비쳤을까. 김 교수의 남미 기행문을 2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말]
[7월 24일] 노조 정파 사이에 노동운동 자율성에 대한 이견 존재

오전에는 UNT(National Union of Workers)의 대표인 치리노(Orland Chirino)와 간부 10여 명과 함께 노동조합 전반에 관해 토론했다. UNT는 차베스 지지자들이 2003년 새로 만든 노동조합연맹인데, 이 연맹에는 다섯 개의 정파가 가입하고 있다. 가장 큰 정파는 치리노가 이끄는 C-CURA(Class Unity Revolutionary and Autonomous Current)인데, 이 정파가 다른 4개의 소수정파를 합한 것보다 수적으로 많다. 그러나 아직도 의견 통일이 되지 않아 7월 10일의 제2차 총회가 무산되었다고 한다.

1936년 창립된 다른 노동조합연맹인 CTV(Confederation of Venezuelan Workers)가 2002년 4월의 군사쿠데타에도 가담하고, 2002년 12월에서 2003년 3월까지 벌인 자본파업에도 참가해 차베스 정권을 타도하려 한 이유를 물었다. CTV는 '노동귀족 노동조합(bosses' union)'으로서 경영진과 집권정당과 가까이 지내면서, 예컨대 석유회사의 막대한 이윤을 서로 갈라 먹고 있었는데, 차베스가 석유회사를 국영화하고 이익금의 대부분을 정부로 이전하라고 하니까 노동조합의 상층부나 하층부 모두 큰 수입원천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 만든 노동조합연맹인 UNT는 미조직된 비공식부문의 노동자를 많이 흡수하면서 진정한 노동운동을 시작했지만, 차베스 정부에 대한 태도에서 정파들 사이에 의견이 달랐다. 소수의 4개 정파는 무조건 차베스 정부를 지지하지만, 치리노 정파는, 노동운동은 차베스 정부에 대해서도 자율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치리노 정파는 차베스 정부가 공동경영과 노동자 자주관리에 대해 취하는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오후에는 볼리바르 서클의 전국 책임자를 만나 볼리바르 서클의 과거와 현재를 들었고, 그 뒤에는 토지개혁을 추적하면서 www.venezuelanalysis.com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윌퍼트(Gregory Wilpert)를 만났다. 윌퍼트는 카라카스의 토지가 몇몇의 거대 토지소유자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상황과, 자본통제로 말미암아 화폐자본이 해외로 유출되기 어렵기 때문에 부동산(토지와 아파트)의 값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했다. 또한 차베스 정부가 농촌 대지주의 땅을 몰수하지 않는 이유는, 농업의 비중이 낮아 땅을 전부 몰수하더라도 그것을 경작할 수 없다는 점과, 대지주들이 경작하고 있는 땅까지도 몰수하면 농업생산이 감소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7월 25일] 공동경영의 세 가지 형태

이날은 하루 종일 기업의 공동경영이나 노동자 자주관리를 조사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에는 UNT 대표로서 마르크스주의자인 치리노를 만나고, 오후에는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해 공동경영을 요구하고 있는 현장(Sanitaria Maracai)과, 공동경영을 하고 있는 국영전력회사(CADAFE)의 노동조합(치리노 정파)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국영석유회사인 페데베사 이사회에 노동조합 대표가 참여함으로써 '공동경영'의 한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 페데베사 본사 건물 국영석유회사인 페데베사 이사회에 노동조합 대표가 참여함으로써 '공동경영'의 한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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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치리노를 만나 공동경영이나 노동자의 자주관리에 관해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했다. 첫째로 국영석유회사(페데베사)와 국영전력회사(CADAFE) 등의 노동자들이 2002년 12월 이후의 자본파업에 반대하면서 생산을 계속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차베스 정부가 각 회사의 이사회에 두 명의 노동조합 대표를 참석하게 했는데, 이것이 공동경영(cogestionㆍco-management)의 한 형태이다.

노동조합이 자기의 대표 두 사람을 국영회사의 운영에 참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와 노동조합의 공동경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공동경영에서는 노동조합이 경영자 측(정부가 임명한 다수의 이사들)과 다른 의견을 가질 경우에는 노동조합의 의견이 이사회를 통과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카다페에서는 노동조합 대표 한 명이 이사회에 참석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경영자 측은 노동조합 대표들이 과거의 관행(노동자들의 이기주의, 취업을 알선하고 금품을 받는 것 등)을 계속하고, 경영진에게 온갖 경영상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경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등 경영진을 압박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정부는 석유와 전력과 같은 '전략적인' 기업에서는 위와 같은 공동경영까지도 이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 치리노는 이런 형태의 정부-노동조합의 공동경영을 완전한 노동자 자주관리로 나아가는 이행형태로 간주하고, 정부가 점점 더 국영기업의 경영을 노동조합에 맡김으로써 관료주의적 국가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공동체적 사회주의적 생산관계로 전환시킬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지금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치리노는 우려했다.

협동조합의 '이기주의' 문제 노정

둘째 형태의 공동경영은 정부가 사기업을 국유화하면서 노동자들을 경영에 참여시킨 경우로서 인베팔(INVEPALㆍ종이 생산)과 인베발(INVEVALㆍ밸브 생산)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인베팔의 탄생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가진다. 사적 기업 베네팔(VENEPAL)이 1990년대 말부터 자금 사정이 어려웠는데 2002년 말의 자본파업에 동조함으로써 경영이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리하여 2004년 파산을 선고하고 90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는데, 그 중 350명이 이 기업을 인수하겠으니 정부가 지원하라고 요구했다.

2005년 1월 차베스 정부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그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공동경영하면서 이름을 인베팔(INVEPAL, Venezuelan Endogenous Paper Industry)로 바꿨는데, 그때까지 펄프를 칠레로부터 수입하던 것을 국내에서 조달함으로써 내생적 발전(desarrollo endogeno, endogenous development)이라는 국가계획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협동조합을 구성해 이 기업 주식의 49%(정부가 51%)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협동조합이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면서 모두를 임시직 계약노동자로 취급해 자기들의 협동조합에 참가시키지 않는 사건이 발생해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인베발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사적 기업 CNV가 2002년 12월 자본파업에 참가해 공장을 폐쇄하면서 330명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등을 보상하지 않았다. 약 65명의 노동자들은 기업주에게 보상을 요구하고 기업의 문을 열어 다시 고용하라고 노동법원과 노동부를 찾아다니면서 2003년부터 2005년 4월까지 투쟁했다.

달동네 '바리오'와는 달리 부유층 아파트는 담장을 세우고 그 위에 전기철조망을 쳐 놓았다.
▲ 베네수엘라의 부자동네 달동네 '바리오'와는 달리 부유층 아파트는 담장을 세우고 그 위에 전기철조망을 쳐 놓았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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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즈음에 차베스가 2005년 1월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서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화를 선언했고, 또 인베팔의 국유화도 이루어졌으므로, 정부는 기업주와 협의해 기업의 모든 채무를 정부가 떠안는다는 조건으로 2005년 4월 CNV를 국유화하고 이름을 인베발(INVEVAL, National Endogenous Valve Industry)로 바꾸면서 노동자들과 공동경영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도 정부가 주식의 51%를 소유하고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주식의 49%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베발은 밸브의 상당한 부분을 구입하던 국영석유회사 페데베사가 공개 입찰 방식으로 구매처를 정하는 바람에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치리노는 인베팔과 인베발의 공동경영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는데, 이 비판은 차베스 정부에서도 대체로 수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이 기업의 소유주가 되어 마치 자본가처럼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해고하고 있으며, 더욱이 기업의 수익은 사회 전체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기업의 협동조합만이 이익을 얻고 있다는 비판이다.

셋째 형태의 공동경영은 경영난에 빠진 기업에게 정부가 지원하면서 현재의 노동자를 계속 고용할 것과 그들에게 경영에 참여시킬 것을 요구한 결과로 생긴 것이다. 이리하여 노동조합이 제한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런 형태가 공동경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동경영이라 부를 수도 없다.

차베스 정권의 딜레마

오후에는 카라카스에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는 '유일한'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인 사니타리아 마라카이(Sanitaria Maracai)를 방문했다. 이 기업은 변기와 세면기를 제조하는 공장인데, 기업주가 노동자들을 해고하기 위해 위장 폐업을 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기업을 점령해 스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직도 기업주가 공장을 되찾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 출입구를 노동자들이 막고 일일이 방문객을 검색했다. 노동자들이 협동조합을 구성하면서 이 기업을 국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차베스 정부는 아직까지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널리 퍼져있는 풍문에 의하면, 차베스가 카스트로에게 이런 형태의 공동경영과 노동자 자주관리가 '사회주의적인가'를 물었고, 카스트로가 '아니다'고 했기 때문에, 차베스 정부는 이런 기업들에게 원료의 조달이나 제품의 판매에서 거의 도와주지 않으므로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차베스 정부는 지금의 시점에서는 공동경영이나 노동자 자주관리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은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사니타리아 마라카이 공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국영전기회사 카다페의 노동조합을 방문했다. 국영전기회사 이사회의 이사로 참가한 바 있는 노동조합 대표는 차베스 정권을 상당히 비판했다. 차베스 정권은 공동경영이나 자주관리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인데, 노동자들에게 전혀 기업운영권을 넘겨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참으로 답답한 딜레마에 차베스 정권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업을 노동조합에 맡기자니 노동조합이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면서 경제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노동조합을 무시하자니 기업의 운영은 물론 정권의 유지가 어려울 것 같다는 딜레마다. 사실상 이 딜레마는 차베스 정부가 아직까지 경제 전체를 계획적으로 운영할 종합 플랜을 세우지 못해 정부와 경영진과 노동조합 사이의 협력이 임기응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데 큰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7년 6월에 부통령이 의장이 되는 중앙계획위원회(Central Planning Committee)를 설립했다니 좀 더 장기적이고 종합적으로 21세기형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모색하리라 기대된다. 최근의 보도(9월 6일과 13일)에 따르면, 차베스는 주민자치위원회를 강화하고 몇 개의 주민자치위원회로 코뮌(Commune)을 형성해 이 코뮌이 지역사회를 총괄하게 하며, 기업들도 코뮌이 관리하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차베스는 1998년 12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빈민을 대변하겠다" "국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열어 헌법을 개정하겠다" "부패를 척결하겠다" "나라의 부를 더욱 균등하게 분배하겠다"고 공약했고, 이 공약은 상당히 잘 실천했다. 그러나 21세기형 사회주의가 공고한 기반을 가지면서 완성되기 위해서는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의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계획에 의해 자본가와 관료의 헤게모니를 빼앗아 민중이 헤게모니를 잡는 조건을 점점 더 구축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직도 차베스 혁명은 혼돈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7월 26일] 혁명기념일에 쿠바 아바나에 도착하다
          

아바나의 혁명광장
 아바나의 혁명광장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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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파나마항공을 타고 카라카스를 떠나 파나마시티를 거쳐 오후 1시에 쿠바 아바나에 도착했다. 아바나는 생각 이상으로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었고 공공질서가 잘 유지되고 있었다. 날씨가 무더워서 호텔에서도 24시간 에어컨을 틀지 않을 수 없었다. 카라카스에서는 덥지만 습기가 높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했으므로 밤에는 에어컨을 켤 필요가 없었는데, 아바나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쿠바에서는 26일부터 혁명기념일이라 우리의 초청기관인 이캅(ICAP)이 여러 사람들과의 면담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우리에게 통보한 바 있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가 8월 한 달 동안은 휴가기간이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일정을 잡다가 보니 쿠바에서는 중요한 면담은 거의 가질 수 없게 없었다.

[7월 27일] 카스트로와 게바라 사진이 잔뜩 걸린 인터내셔널 캠프

오전에 인터내셔널 캠프를 방문했다. 주로 외국대학생들을 받아 쿠바를 관광시키면서 쿠바 상황을 알리고 함께 농장에서 노동도 하는 캠프다.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사진이 잔뜩 걸려 있고,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에서 온 대학생들이 많았다.

이 캠프에서 근처에 있는 농업협동조합의 대표들을 만나 쿠바 농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지는 국유이고 공동노동하면서 노동량에 따라 수확물을 분배하며, 자기 집 주위의 채마밭에서 나온 채소 등은 자기들이 마음대로 처분한다는 것이다.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면 자녀들이 도시에 나가 좀 더 나은 직업을 얻을 기회가 정부관리나 기업 책임자의 자녀들이 가지는 기회보다 적은 것에 불만이 없느냐?"고 물어보니, "자녀들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도시에 나가 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고전적인' 대답이 나왔다.

쿠바 아파트 건물 벽에 체 게바라 초상이 설치돼 있다.
 쿠바 아파트 건물 벽에 체 게바라 초상이 설치돼 있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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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박물관을 들렀는데,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키게 된 동기나 혁명의 성과들을 잘 전시하고 있었으나 소련이 무너진 이후의 '특별한 시기'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었다. 사실 우리는 이 특별한 시기를 쿠바 정부가 어떻게 극복했는가에 더욱 큰 관심을 가졌는데 말이다. 과일과 농산물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장을 가보았는데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7월 28일] 바라데로 해변에서 수영을

아침 일찍 아바나를 떠나 동쪽으로 3시간 쯤 걸려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바라데로 해변에 가서 하루를 묵었다. 수영을 즐겼는데, 모래가 비단 같이 부드럽고 바닷물이 매우 깨끗했다. 숙박료를 내면 팔에 플라스틱 밴드를 매어주는데, 이것으로 술과 음식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럼주와 데킬라 등을 칵테일 하는 주류가 인기가 있었다. 호텔 앞의 수영장 주위에서 젊은 친구들이 노래와 춤으로 밤새도록 즐기고 있었다.

[7월 29일] 소련 패망 이후 녹슬어가는 사탕수수 가공시설

바라데로에서 2시간 쯤 남쪽으로 가니 1961년 미국의 케네디 정부가 쿠바를 침략한 피그만이 있었다. 플로리다로 망명한 쿠바 사람들이 국내의 쿠데타세력으로 변장해서 피그만에 상륙하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전투기가 폭격을 가한 지역이다. 지역 전체는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에버글레이드 국립공원처럼 늪지대였다. 곳곳에 어떤 전투가 벌어졌는가를 알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피그만을 찾아가는 도로 변은 모두 농장이었는데, 소련이 망한 뒤 사탕수수를 팔 수 없어 사탕수수 가공시설들이 녹슬고 있었다. 쿠바도 베네수엘라와 같이 쌀을 많이 먹고 있으므로 벼농사를 촉진하려고 중국 농업기술자들이 많이 와 있다고 여행가이드가 설명했다. 또한 농장에는 잡초가 너무 크게 자란 곳이 많았는데, 며칠 전의 혁명기념일에 카스트로의 동생 라울이 국민들에게 혁명 시기의 정열을 살려 좀 더 부지런히 농업을 경영하라고 경고했다고 가이드가 전해 주었다.  
      
[7월 30일] 쿠바는 어떻게 미국에 대항할 수 있었는가

아침 일찍 이캅에 가서 쿠바 노동조합 대표와 만나 노동조합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정부와 노동조합이 하나가 되어 있어서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는 ALBA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쿠바의 의술이 매우 높아 각국에서 치유하기 어려운 환자들을 이곳에 보내고 있었다. 호텔 형식으로 보호자와 환자가 함께 지내면서 주로 물리치료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쿠바 정부와 환자의 출신 정부가 비용을 분담한다고 말했다.

쿠바 해방운동의 아버지로 카스트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 호세 마르티 동상 쿠바 해방운동의 아버지로 카스트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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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이캅 대표가 우리를 위해 만찬을 제공했는데, 이 자리에서 "1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쿠바가 어떻게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이야기를 꺼내었는데, 답변의 요지는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미국의 무력에 쿠바는 대항할 수 없기 때문에 군비 지출은 사실상 포기했다. 쿠바는 군비 지출을 민생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국민들이 쿠바의 현재 체제가 미국 정부가 세울 괴뢰정부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더라도 괴뢰정부는 얼마가지 않아 붕괴할 것이다.

참으로 훌륭한 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도 이런 이치를 이제나마 터득해서 핵 개발을 중단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일 것이다. 우리 정부도 막대한 군사비를 줄이고 국민개병주의를 개정한다면 우리 사회는 복지국가가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7월 31일] 베네수엘라와 쿠바가 서로 배워야 할 점 

아침에 문맹퇴치박물관을 방문했다. 카스트로가 혁명을 성공시킨 뒤 전국에 걸쳐 "문맹을 없애자"고 호소하니까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아는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사람들이 문맹퇴치운동에 참여해서 몇 년 사이에 전국의 문맹을 완전히 없앴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혁명적 정열은 돈의 힘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오후에는 시내를 돌아보았는데,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유적이 가장 많았지만, 그 반대로 쿠바 해방운동의 아버지로서 카스트로가 가장 존경하는 호세 마르티에 관한 유적도 많았다.

쿠바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실천을 배울 필요가 있고,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사회복지프로그램을 배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카스트로가 혁명 뒤 평생을 지배하는 것이나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평생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오후 5시 멕시코항공을 타고 아바나를 떠나 멕시코시티에 9시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폭풍우가 치는 바람에 칸쿤에서 1시간 쯤 지체하다가 멕시코시티에 가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밤 12시 30분 대한항공으로 인천에 오게 되어 있었는데, 미국 입국수속을 하고 짐을 찾으니까 멕시코시티에서 아직 짐이 오지도 않았다. 8월 1일 새벽 3시가 되었으니까 대한항공은 이미 떠난 뒤였고, 멕시코항공은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사고이기 때문에 호텔비를 줄 수 없다고 해서 결국 낮 12시 30분 대한항공을 타기 위해 공항에서 자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8월 2일 오후 6시에 인천에 도착했다. 


태그:#베네수엘라, #쿠바, #차베스, #공동경영, #노동자 자주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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