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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의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경제학)와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 조사연구팀이 지난 7월 약 2주에 걸쳐 남미 베네수엘라와 쿠바를 다녀왔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21세기형 사회주의'의 실험 현장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다. 좌파 경제학자의 눈에 그들의 실험은 어떻게 비쳤을까. 김 교수의 남미 기행문을 2회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말]
나는 2007년 7월 18일부터 26일까지 베네수엘라를 방문하고, 7월 26일부터 7월 31일까지는 쿠바를 방문했다.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동연구소'가 조직한 조사연구팀의 일원으로 간 것인데, 연구소에서 중요한 기관들의 방문을 현지 연락책임자를 통해 미리 약속해 두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이 글은 연구소의 공식 보고서가 아니라 나 혼자 느낀 것을 적은 것이다.

[7월 18일] 미국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작전'

18일 저녁 7시 인천에서 대한항공을 타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니 여전히 18일 오후 3시였다. 우리는 오후 5시 멕시코항공으로 멕시코시티를 거쳐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미국 국토안전부는 모든 환승객들에게 로스앤젤레스에서 미국 입국 수속을 밟아 짐을 찾았다가 다시 출국 수속을 하라고 요구했다.

입국 수속하는 사람들이 많아 멕시코 행 비행기를 놓칠까 큰 걱정을 했다. 왜 미국 정부는 이렇게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작전'을 펼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좀 다행스럽게 생각한 것은 공항 근무자 중에 한국말을 하는 동포들이 있어 우리의 출국 수속을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7월 19일] 베네수엘라의 달동네 '바리오'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는 19일 오전 7시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 한 복판에 있는 호텔로 가는 도중에 나는 깜짝 놀랐다. 산비탈에 거대한 달동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가 빈민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달동네를 그곳에서는 '바리오(barrio)'라고 부르는데, 1999년 12월 폭풍우로 산비탈이 무너지면서 약 2만 명이 죽고 10만 명이 집을 잃었던 적이 있었다.

석유의 매장량과 생산량에서 세계 5위에 있는 나라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인구가 바리오에서 빈민으로 살고 있단 말인가! 영일만에서 석유가 나올 것이라는 추측 기사만 들어도 "우리 모두 이제 곧 잘 살 수 있게 된다"고 좋아하던 우리나라 서민들을 생각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분명히 베네수엘라에는 석유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독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기득권 세력이 있으며, 1998년 12월 차베스가 대통령이 된 지 8년이 지나도록 그 기득권 세력을 진압하지 못해 빈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래놓고 무슨 '21세기형 사회주의'를 한다고 떠드는가 하는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는 빈민. 그들 가운데 다수는 '바리오'라 불리는 달동네에 산다.
▲ 달동네 바리오 베네수엘라 인구의 60-80%는 빈민. 그들 가운데 다수는 '바리오'라 불리는 달동네에 산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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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카티아(CATIA) 텔레비전 방송국을 방문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 방송국은 '카티아'라는 동네를 위한 지역방송인데, 미국의 CNN이나 국내의 RCTV 등과 같은 거대 방송의 상업주의·선정주의·폭력성·엘리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7명의 언론활동가가 만든 것이다. 사실상 차베스가 집권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신문과 방송은 여전히 외국과 국내의 언론자본가들이 운영하면서 차베스 정권을 축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카티아 방송국의 가장 중요한 점은 동네 사람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나서서 사진을 찍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네에다 방송한다는 것이다. 주민이 직접 참여해 주민들의 관심사를 자신들의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일하면서 배우는 과정(learning by doing)'이고 동네를 변화시킴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능력도 향상시키는 이른바 '혁명적 실천'이었다. 주민들의 민주역량이 향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방송국은 차베스 정부가 철도가의 허름한 양철집을 장기 대여해 주었고 다른 경비는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받은 프로젝트로 조달하고 있었다.

차베스는 어떤 인물?

저녁에는 '대중참여와 사회발전부(Ministry of Popular Participation and Social Development·이하 대중참여부)'의 장관 벨라스케스(David Velasquez)와, 같은 부에 있는 '볼리바르 대중참여학교'의 운영자인 카스트로(Ulises Castro)를 만났다.

앞서 몇 가지 기초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차베스(1954~)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지역부대를 지휘했고 육군사관학교의 교관(역사와 정치)을 지내다가 1992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해 2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을 연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독립운동가 볼리바르(Bolivar, 1783~1830), 교육운동가 로드리게스(Rodriguez, 1769~1852), 그리고 농민운동가 사모라(Zamora, 1817~1859)를 연구한 민족·민중운동가다.

그는 기득권층의 과두체제를 약화시켜야 베네수엘라가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민을 각성시켜 정치세력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통감했으며, 이 부처의 이름이 '대중참여'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중참여를 전국적으로 조직하는 기구로 볼리바르 서클(Bolivarian Circle)과 주민자치위원회(Communal Committee)가 있다.

볼리바르 서클의 회원들은 주로 달동네인 바리오에서 활동하면서 바리오의 수도·주택·의료·전기·노인복지·환경·생업·교육·범죄·질서유지·스포츠 운동장·문화시설 등의 문제를 공동체 주민들이 스스로 토론해 프로젝트를 세우게 하고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한 자금을 대중참여부로부터 받는 것을 도울 뿐 아니라 그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위에서 말한 볼리바르 대중참여학교가 바로 바리오에 있는 학교로서 공동체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을 제공하면서 함께 연구하고 토론한다.

그러나 볼리바르 서클은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2006년 4월에는 법적 근거를 가진 주민자치위원회를 새로 설치했고, 현재 주민자치위원회는 정부의 조세수입과 국영석유회사인 페데베사(PDVSA, 하루 300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하고 연간 650억 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회사)로부터 받는 정부 수입의 1/3을 사용하고 있다.

차베스 정권을 유지하는 볼리바르서클과 주민자치위원회, 그리고 빈민들

분과위원장 입후보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 주민자치위 선거 분과위원장 입후보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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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참여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서민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선거운동을 할 수도 없고, 투표를 한 뒤에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소환할 수도 없고 국정에 참여할 수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볼리바르 서클과 주민자치위원회가 빈민들을 단결시켜 차베스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빈민들의 지지에 의해, 차베스가 1998년 12월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뒤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국민투표와 혁명헌법(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 헌법)을 통과시키는 국민투표에서도 차베스가 이겼으며, 혁명헌법에 의해 2000년 7월 차베스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또한 차베스를 축출하려는 우익 군부쿠데타(차베스 혁명에 반대하는 정치인 경제인 노동조합 부자 언론 지식인 미국정부 등이 지원)가 2002년 4월 11일에 발생해 차베스를 감금했을 때, 이틀 만에 이 군부쿠데타를 실패하게 한 것도 이들 거대한 빈민들의 단결이었다.

그리고 2004년 8월 차베스가 탄핵 국민투표에서 살아남은 것이나, 2006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차베스가 또다시 당선된 것도 빈민들의 열렬한 지지 덕택이었다.

차베스는 지금 주민자치위원회를 권력의 하나의 축으로 격상시키는 헌법 개정을 국회에 제출했고 2007년 12월 2일에 개정 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7월 20일] '재미로' 일하는 협동조합... 병원은 모두 공짜
 
오전에 직물협동조합·구두협동조합·병원 및 슈퍼마켓이 있는 파브리치오 오제다(Fabricio Ojeda)를 방문했다. 이 협동조합은 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할 뿐 아니라 실업자의 자질과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공장인데, 현재 전국적으로 2만5000 개가 있다.

정부는 미션 부엘반 카라스(Mission Vuelvan Caras·미션은 '군사작전'을 가리키는데, 차베스는 사회지원 시스템의 구축 사업을 미션이라 불렀다)에서 실업자에게 직업교육을 시키고, 이 직업교육을 마친 사람들을 협동조합에서 일하게 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생산물의 대부분을 정부에 납품하고 있으며, 이윤을 얻기 위해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조합원들은 위계나 서열이 없고 '재미로' 일하고 있었다. 한번씩 모여 총회를 열어 어떻게 운영하면 모두가 기분좋게 일할 수 있는가를 토론하며, 특별히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병원은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sion Barrio Adentro)라고 부르는데, 전국적으로 1차·2차·3차 진료기관을 두고 있고 쿠바의 의사 약 2만 명을 초빙해 운영하고 있었으며, 모두 공짜였다. 차베스와 카스트로가 협정을 맺어 베네수엘라가 싼 값으로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고 그 대가로 쿠바가 의사를 파견한 것인데, 쿠바 의사는 베네수엘라에서 봉급을 받고 있었다.    

공산품과 식량을 세금 없는 가격으로 파는 슈퍼마켓
             

국내 중소기업의 공산품과 식량을 세금 없는 가격으로 싸게 팔고 있다.
▲ 바리오 상점 국내 중소기업의 공산품과 식량을 세금 없는 가격으로 싸게 팔고 있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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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은 미션 메르칼(Mission Mercal)이라고 부르는데, 역사가 있다. 차베스 정권을 경제적으로 몰락시키기 위해 국영석유회사(페데베사)의 경영진과 노동조합연맹(CTV) 상층부가 결탁해 2002년 12월 생산중단 등 '자본파업'을 단행했다. 다른 거대 자본들도 동조해 자본파업에 참가했으므로 생산 감소, 물가 상승 등 2003년 초까지 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이 때 대형 슈퍼마켓도 문을 닫았으므로, 정부는 생필품을 유통시켜 주민들의 삶을 보장하기 위해 미션 메르칼이라는 슈퍼마켓을, 특히 달동네마다 연 것이다. 미셜 메르칼은 국내 중소기업의 공산품과 식량을 세금 없는 가격으로 싸게 파는데, 달동네 주위의 중산층들도 많이 모여 들고 있었다.

오후에는 볼리바르대학을 방문했다. 정부가 빈민을 위해 세운 학교 중 가장 높은 단계의 무료 종합대학이다. 빈민을 위한 학교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미션 로빈슨(Robinson· 문맹퇴치와 초등교육) ▲미션 리바스(Ribas·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 중고등과정) ▲미션 수크레(Sucre·무료 전문대과정) ▲미션 구아이카이푸로(Guaicaipuro·원주민 교육).

저녁에는 카라카스 주변의 주민자치위원회를 방문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도시에서는 200~400 가구마다 하나가 있었다. 빈민들이 사는 빽빽한 아파트와 좁은 단칸방들 사이에서 농구장 하나와 핸드볼 운동장 하나를 만들어 내고 주민자치위원회를 열 수 있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치과 병원도 있었다.

위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가옥 교육 병원 미니은행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회의를 마치고 우리를 미니은행이 들어설 곳으로 인도했다. 빈민들로부터 예금을 받고 빈민들에게 소액의 대출을 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대중참여부에 신청했는데, 대중참여부의 전문가가 그 곳에 와서 서로 상의한 뒤 그 프로젝트가 승인이 나서 곧 은행 문을 연다는 것이다. 비품으로는 책상과 의자뿐이고 통장과 전표 등이 전부이지만 모두들 흥분해서 열성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상 차베스 반대세력은 이런 프로젝트에 부정과 부패가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대중참여부장관의 이야기로는 지원금의 80%가 제대로 사용되었고, 나머지도 어느 항목이나 계정에 넣어야 할지를 몰라 다른 계정에 잘못 넣은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민중이 스스로 사업을 하면서 귀한 교육·훈련을 받는 것이 부러울 뿐이었다.

[7월 21일] 도시 빈민들의 새 정착지, 산 속의 농업협동조합

오전에 카라카스 시내의 남쪽에 있는 생태정원(Organoponico)을 방문했다. 이 땅은 원래 큰 도로변에 있는 쓰레기 집하장이었는데, 생태운동가들이 이 땅을 정원으로 변경시키겠다고 프로젝트를 내어 쓰레기를 깨끗하게 정리한 뒤 꽃과 채소와 나무를 심은 것이다.

동네의 사람들이 와서 채소도 가꾸고 그곳의 책임자를 중심으로 정원을 어떻게 하면 더욱 아름답게 가꿀 것인가를 토론하고 있었다. 서민들이 시간이 나면 서로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베네수엘라에서 자주 보았다.     

오후에는 카라카스에서 세 시간이나 떨어진 산 속의 농업협동조합을 찾아갔다. 안데스산맥의 경치가 매우 좋았다. 산 속에 농업협동조합들이 있었는데, 정부는 도시빈민들이 농촌으로 간다고 하면 그들로 하여금 협동조합을 만들 것을 요구하며 그 협동조합에게 일정한 땅의 경작권(나중에는 소유권)을 주고 있었다.

2001년 차베스가 '대통령 특별입법권'에 의거해 제정한 토지개혁법에 의하면, 개인은 5000 헥타르 이상의 토지를 가질 수 없고, 오랫동안 내버려둔 토지는 정부가 수용해 재분배하며, 달동네에서도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은 그 토지의 소유자로 인정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2%에 불과하며 농업은 국민총생산의 6%를 차지할 뿐이다. 현재 차베스 정부는 농업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도시의 빈민들을 농촌으로 이주시키면서 경작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이 값싸게 대규모로 수입되면서 농업을 망치고 농지를 내팽개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옥수수 경작을 장려하고 옥수수 가공공장을 많이 짓고 있었다.

농촌에 온 협동조합원들은 일정한 장소에 집을 지어 이웃에 살면서 공동으로 노동해 옥수수나 채소 등을 수확하고 자녀들을 가까운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물론 경작에 필요한 도구나 비료 등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협동조합원들은 관리들이 경작품목이나 경작방법 등에 대해 여러 가지 간섭하면서 지원을 빨리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었다. 

저녁은 주로 호텔 근처에 있는 피자집에서 먹었는데, 피자를 먹든지 닭고기나 돼지고기에 쌀과 샐러드를 함께 주는 것을 먹었다. 포도주는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것이었는데, 매우 비싸 마실 수 없고 카라카스에서 만드는 맥주를 주로 마셨다.

[7월 22일] 달동네 축제와 선거를 참관하다

주로 아이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 바리오 축제 주로 아이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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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바리오 안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했다. 이것도 카티아 텔레비전처럼 동네 사람들에 의한 동네 사람들을 위한 동네 방송국이다. 대중참여부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동네 사람들이 만든 프로그램과 동네 사람들에게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를 방송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매우 큰 달동네 페타레(Petare)에서 축제를 한다고 해서 가보았다.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선 콘크리트 이층집들과 그 아래에 있는 부유층의 아파트가 큰 대조를 이루었다. 부유층 아파트는 담장을 세우고 그 위에 전기 철조망을 치고 있었다. 이곳 바리오에도 스타디움을 가진 큰 야구장이 있어 다른 동네 청년들과 야구시합을 하고 있었는데, 축제는 주로 아이들이 나와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 바리오에는 주민의 약 25%가 월세로 살고 있고 나머지 75%는 자기 집이라고 한다. 다른 곳의 동네에서 주민자치위원회 분과위원장 선거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는데, 주민들은 주택·건강·상하수도·교육·취업분과 등 여러 분과의 위원장이 되려는 입후보자들의 이름이 쓰인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하고 있고 입후보자들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행여나 문제가 생길까 봐 경찰도 와 있었다.

미국이 차베스정권을 두고 보는 까닭은?

저녁에는 마이클 리보위츠(Lebowitz) 교수와 부인인 마르타 하네커(Harnecker)를 카라카스 동부의 부자 동네에 있는 피자집에서 만났다. 리보위츠 교수는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학의 명예교수이고 부인은 칠레 출신의 남미 문제 전문가인데, 두 사람 모두 차베스 정부의 프로젝트를 받아 사회주의혁명을 어떻게 실행해야 하는가에 관한 책을 써서 차베스 정부와 주민들을 교육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리보위츠는 이미 아는 사이이고 또 차베스 혁명을 찬양한 <지금 21세기형 사회주의를 건설하라>는 그의 저서를 읽은 바 있기 때문에, 오직 마르타와 면담했다. "미국이 차베스 정권을 가만 두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고 물었다.

마르타는 "미국이 아직 차베스를 타도할 '구실'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는 "▲첫째로 미국이 이라크전쟁으로 정신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차베스가 모든 정책을 헌법과 법률에 따라 민주주의적으로 수립·실시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차베스가 거대한 빈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고 ▲넷째는 미국의 석유 수입의 15%를 베네수엘라에 의존하기 때문이며, ▲다섯째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도 차베스와 비슷한 철학을 가진 대통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기회를 봐서 정치적 경제적 불안을 조성하려고 차베스 반대세력에게 재정을 지원하고 적대적인 언론플레이를 계속하고 있으며, 군사쿠데타와 차베스 암살과 직접적인 군사적 침략을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미국정부는 1973년 9월 피노체트 장군으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켰고, 1980년대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게릴라정부를 무력으로 타도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차베스 정부는 폭력적이고 군사적인 방법으로 혁명을 추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7월 23일] '이윤 추구'가 아닌 '필요 충족'의 경제를 위하여

오전에 과학기술부장관 나바로(Hector Navarro)를 만났다. 그는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메자로스(Istvan Meszarosㆍ1930-, 현재 영국 서섹스대학교 명예교수)를 숭배한다고 말하면서 위계질서가 없는 사회와,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가 아니라 주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경제를 건설해야 한다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그는 또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해 기득권층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독점을 타파하려고 더욱 노력하겠다는 포부와, 앞으로 하루의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함으로써 노동자들로 하여금 주민자치위원회에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자기 개발에 힘쓰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펼쳤다.

그리고 미국이 제안하는 아메리카 자유무역지대(FTAA)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적 경제통합으로서 이익을 보는 측은 초국적기업과 국내 엘리트들이기 때문에 자기는 반대하며, 자기는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힘을 합쳐 빈곤과 실업과 외채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자고 알바(ALBA·Bolivarian Alliance of the Americas)를 제안했는데 지금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가 여기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연말까지는 IMF와 IBRD의 제국주의적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알바은행(Bank of ALBA)을 설립하려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에는 통합사회당(PSUV)을 건설하고 있는 국회의원 베라(Oswald Vera)를 면담했다. 차베스 혁명을 장기에 걸쳐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거대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차베스가 만든 정당(MVR·제5공화국운동당)과 이외의 좌파정당들이 하나로 뭉치면서 더 많은 당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를 천명하는 Podemos(For Social Democracy) 당, PPT(Fatherland for All)당과 베네수엘라공산당(PCV)은 통합사회당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이들 당의 상당수 당원은 통합사회당의 당원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2007년 말까지 당 강령을 확정해 당원들의 동의를 얻은 뒤 당을 완성한다는 계획을 보였다.


태그:#베네수엘라, #차베스, #사회주의, #주민자치, #김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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