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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못내 그리다가 추석이 되어 찾은 고향은 늘 그대로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아도 역시 그대로다. 고향이니 그런가 보다. 그대로인 고향에서 한 발 더 내디뎌 보면 새로운 고향의 모습이 보인다. 추석에 내 고향의 또 다른 여행지를 찾아가 보자.


전라북도에서 추석에 가볼만한 곳은 단연 '징게맹개 외얏밋 들'이다. 우리나라 가장 큰 평야지대의 명칭이다. 우리나라 땅이 넓지 않다고 하지만 지평선이 보이는 곳은 거의 없다. 지평선이 보이기 전에 산이 가로막아선다.

 

여기 김제 만경의 넓은 들이 있다. 이 김제 만경의 넓은 들은 일제강점기에 간척공사를 하여 생긴 들이다. 추석이 되면 광활한 황금 물결이 일어난다. 황금 물결은 출렁출렁 멀리 지평선까지 흘러간다. 보기만 하여도 배가 부른다는 누런 나락들이 고개를 숙이고 흔들흔들 풍요의 축제를 벌인다.

 

김제 만경 평야 황금물결 출렁출렁

 

19일 오후 4시 30분,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를 달려 추석과 보름달 만큼이나 풍요한 김제 평야를 찾았다. 추석에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야 하는데, 책상에 앉아 쓸 수는 없지 않은가? 태풍이 중국에 상륙하였다는데 하늘이 금방 어두워졌다가 또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김제 만경 평야는 보통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태인이나 정읍으로 들어간들 그 넓은 평야 어디엔 못 가랴.

 

가다가 전봉준 장군이 싸웠다는 황토현이나 전봉준 생가도 들려 봄직하다. 그것도 싫으면 아무 길이나 차를 몰고 지평선 끝까지 드라이브를 즐겨도 배부르다.

 

삼한시대 농경용 저수지로 유명한 벽골제도 찾아볼 만 하다. 벽골제는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둑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330년(백제 비류왕 27)에 쌓았고, 790년(원성왕 6)에 증축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무대도 바로 이 김제 만경평야이다. 소설 속의 일본인 하시모토도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였다. 아직도 하시모토가 사용했던 사무실이 죽산면에 있고, 김제 땅 곳곳에는 여전히 그의 공적비가 남아있다고 한다.


김제평야 이리저리 마음대로 차를 몰았다. 길도 잊어버렸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 구름 사이에 햇살이 눈부신데, 무르익어 고개 숙이고 있는 나락들의 출렁임이 마음 가득 파고든다. 지평선에서 해가 뜨고 지평선에서 해가 진다는 말처럼 조그마한 언덕도 보이지 않은 황금 들판에서 차를 멈추고 논두렁길을 걸어 보았다.

 

 

 

선운사 입구부터 깔린 붉은 양탄자

 

아니, 해가 벌써 넘어가려고 한다. 고향을 찾은 전북 사람들이 김제 만경 평야만 보아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선운사 꽃무릇을 놓치면 서운해진다. 급하게 차를 몰아 서해안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목포 쪽으로 달리다가 선운산 나들목으로 빠져나가 곧바로 선운사로 향했다.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자 숨이 멎는 듯하다. 개울 건너 나무 밑엔 꽃무릇이 수놓아진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다. 꽃잎 하나하나가 붉은 띠를 이루어 양탄자의 씨와 날이 되었고, 꽃술마저 붉은 실을 꼬아세워 놓은 듯 멎은 숨이 다시 터져나올 때까지 꽃무릇은 그대로 꿈이었다.

 

꽃무릇은 석산이라고 하는데 백합목 수선화과의 구근류로서 중국과 일본이 원산인 다년초이다. 꽃이 무리지어 핀다하여 '꽃무릇'이라고 하였는데 9월 중순이면 땅에서 꽃대가 솟아나와 무더기 지어 피어난다. 그리고 꽃잎이 모두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푸른 잎이 하나 둘 돋는다. 그 잎들은 추운 겨울을 나고 5월이면 시든다. 꼭 보리와 같은 생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은 꽃무릇을 '상사화(相思花)'라 부르기도 한다. 한 몸 한 뿌리에서 나서 잎과 꽃이 서로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형의 화려함과는 달리 슬픈 사랑과 그리움을 지닌 애절한 꽃이라고 많은 시인 묵객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꽃무릇 군락지는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등이다.

 

 

"옛날 어느 깊은 산속 아담한 산사에 속세를 떠나 오직 불도만 닦는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유난히 큰 비가 쏟아져 내리던 어느 여름날, 이 산사에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비 때문에 마을로 내려가지 못하고 사찰 마당의 나무 아래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그 여인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게 되고 그 때부터 스님의 혼자만의 짝사랑이 시작되었다.

 

날이 갈수록 수행도 하지 않고 식음도 전폐한 채, 오직 그 여인에 대한 연모에 시름시름 가슴앓이를 하던 스님은 급기야 석 달 열흘 만에 붉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결국 상사병으로 죽고 말았다. 함께 기거하던 노스님이 이를 불쌍히 여겨 양지쪽 언덕에 묻어 주었는데, 그 무덤에서 한포기의 풀이 자라났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긴 꽃줄기에서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다." - '꽃무릇 전설'에서

 

선운사 입구에서부터 펼쳐지기 시작한 꽃무릇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는 벌써 졌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선운사를 지나 진흥굴까지 계속 이어지는 꽃무릇의 붉은 물결은 선운사에서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시간이 있었다면 선운사 입구에 있는 풍천장어를 한 번 먹어보고 싶었다. 선운사 입구 풍천장어는 바다와 냇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잡은 장어를 구워준다. 장어가 이렇게 맛있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선운사를 찾는 날이면 반드시 풍천장어집을 찾아 장어를 맛보아야만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든다. 오늘은 들리지 못한 발걸음에 아쉬움만 남았다.

 

달은 아직 반달인데 소금뿌려 놓은 듯한 메밀밭

 

그렇게 날이 저물어 간다. 그래도 뛰어나와 고창에 있는 학원농장으로 차를 몰았다. 길도 잘 알 수 없어서 선운사에서 고창 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마음이 급하였다. 혼자만 보는 것이라면 반달이라도 비치는 메밀밭에서 소금처럼 흩어 뿌려진 꽃들을 감상할 것이지만 추석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더욱 급하였다.

 

학원농장은 4월과 5월에 열리는 청보리 축제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농장은 전국무총리 진의종씨와 부인인 이학씨가 1960년대 초반 고창군의 광활한 미개발 야산 33만㎢을 개간하여 설립하였다.

 

학원농장은 10월에 보리를 파종하여 이듬해 봄에 보리를 수확하고, 다시 메밀을 파종하여 10월 초에 수확한다. 봄철 푸른 보리밭이 장관을 이루고 9월 메밀꽃이 피어 또 한 번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지난 2004년 아름다운 농장풍경을 인정받아 전국 최초로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단다.

 

 

특히 학원농장은 꽃이 만드는 경관을 오래 보려면 밭을 몇 구획으로 나누어 시차를 두어 파종하면 꽃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점에 착안, 10일 간격으로 3회에 나누어 파종한다. 그래서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소금 뿌려놓은 듯한 하얀 메밀꽃을 계속 볼 수 있단다.

 

보통 농가에 있는 메밀밭들은 크지 않다. 그런데 이 학원농장의 메밀밭은 그 넓이가 끝이 없다. 흰 메밀꽃으로 된 지평선이 보인다. 장관이다. 청보리밭의 끝없는 푸름이 눈에 선한데, 그것이 하얀 메밀꽃으로 바뀌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 하얀 메밀꽃밭 가운데 서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날이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햇살이 가득했다면 소금 하나하나가 흩어져 튀어나왔을 것인데 흐릿하게 찍히는 사진이 아쉬웠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데 하늘 위에서 반달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 세계,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쉬운 세계, 나는 오랫동안 멈추어 서 있었다. 그대로. 이제는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기에.

 

덧붙이는 글 | * 찾아 가는 길 
김제 만경 평야는 호남고속도로 김제 나들목이나 태인 나들목이나 서해안고속도로 부안나들목으로 나가서 김제쪽으로 달려면 무한정 펼쳐져 있다.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 나들목으로 빠져 가서 곧바로 가면 금방 나온다. 

고창 학원농장은 찾아가기가 좀 어려울 수 있지만 고창으로 가다가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알려 준다. 


태그:#전라북도, #김제 만경 평야, #꽃무릇, #선운사, #학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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