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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기세가 대단하다. 무더웠던 여름을 간단하게 내친 비는 보름 동안이나 이어졌다. 사람이나 곡식이나 햇볕 한줌이 그리운 요즘, 며칠 반짝 해가 뜨더니 간밤 다시 세찬 비를 뿌렸다.

 

불어난 계곡 물은 제 흥을 가누지 못하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 시린 물이 만들어낸 안개는 산 허리에 걸려 있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바람은 스며들고 '도암댐 해체를 위해 영화가 밀려온다'라는 문구를 적은 탑차가 정선 읍내를 느릿느릿 지나간다.

 

동강은 죽어가는 데 딴 일에 정신 파는 지자체

 

탑차는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에서 준비한 영화제 홍보 차량이다. 거리엔 현수막이 하늘을 덮을 듯 걸려 있지만 그 내용이 다들 동계올림픽에 관한 것들이다. 동계올림픽 관련 현수막이 아니면 제 아무리 용을 써도 거리 게시를 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정선군의 법이다.

 

현수막 가로 게시가 엄연히 불법이지만 정선군은 법을 스스로 어기면서까지 현수막 가로 게시를 지시했다. 지역의 사회단체들은 정선군의 지엄한 명을 받들어 단체명이 적힌 동계올림픽 관련 현수막을 앞다투어 걸었다.

 

지역의 시민단체는 동계올림픽보다 죽어가는 동강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정선군의 생각은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에 가 있었다. 사람들은 다시 들뜨기 시작했고, 동계올림픽은 유치된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 되고 있었다.

 

마술의 세계가 따로 없는 정선읍내에선 술에 취하지 않고서는 마술에서 깨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다들 마술에 걸린 것은 아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이들이 아직은 더 많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희망적이다.

 

영화제 홍보 문구를 담은 탑차가 읍내 거리를 천천히 돈다. 영화제가 열리는 곳엔 노란 손수건을 걸어 놓았다. 빗물을 머금은 손수건은 물기를 털어내느라 바쁘다. 거리에 걸리지 못한 펼침막은 행사장 인근에 붙여진 채 역시 비에 젖었다.

 

길가에 붙어 있는 '맑은 동강을 보고 싶어요'라는 펼침막은 지난 주말 정선을 찾았던 어린이들이 만든 것을 게시용으로 다시 제작했다. 어린이들은 오염천국으로 변한 동강과 동강을 죽이고 있는 도암댐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정선에 왔다.

 

어린이들이 만드는 어린이 신문 '여럿이 함께' 국토순례단은 그동안 새만금 갯벌과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 어린이들이 정선을 찾은 것은 동강의 아픔을 확인하고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죽어가는 동강 앞에서 아이들은 절망, 어른들은 외면

 

아이들은 싯누렇게 변한 동강을 보며 경악했다. 동강이 왜 저 지경이 되었느냐며 질문이 쏟아졌다. 도암댐이 저렇게 했노라고 대답했다.

 

도암댐에 도착한 아이들은 동강에서보다 더 많은 질문을 했다. 거대한 하수물을 뿜어내는 도암댐 앞에서 할 말조차 나오지 않는데, 역시 아이들은 달랐다. 아이들이 물었다. 도암댐을 왜 지었느냐고.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도암댐을 해체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 또 물었다. 그 역시 자연을 배려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할 말이 없었다.

 

동강을 가기 위해서 우리는 버스를 8시간이나 타며

서너 번의 엄청난 고비를 넘기고 먼저 동강을 보았다.

동강은 듣기로는 3~4급수 정도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5급수 정도 된다고 하셨다.

동강에는 더러운 도암댐에서 나온 찌꺼기가 두둥실 떠다녔다.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다.

동강의 첫인상은 별로 안 좋았다.

도암댐에서 나온 찌꺼기가 동강을 더럽혔다.

동강 근처에는 약 700살이나 먹은 느티나무와

약 500살 먹은 뽕나무와 여러 나무가 있다고 하셨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가 보니 도암댐이 나왔다.

이 곳 사정도 말이 아니었다.

이 도암댐의 물이 한강을 타고 흘러 우리가 이 물을 쓴다니

기분이 더러웠다.(별로 안좋았다.) 찝찝했다.

과연 도암댐을 만든 계기는 무엇일까?

예전에는 수력 발전용으로 썼겠지만 지금은 거의 쓸모가 없게 되었다.

도암댐을 없애면 동강을 살릴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람의 편의 때문에 자연을 파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도암댐을 파괴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언젠가는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빨리 깨끗이 해서 맑은물에서 다시 놀고 싶다!

- 어린이 신문 '여럿이 함께' 국토순례단 이지선(고양 가좌초5)

 

동강과 도암댐을 둘러 본 어린이들은 각자의 소망을 담은 글을 적어 운동본부에 전했다. 운동본부는 아이들에게 동강을 살려내겠다고 약속했다. 어린이들에게 물려줄 동강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서는 큰 죄인이 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어른들.

 

동강 살리기로 한 아이들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해

 

운동본부는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동강을 살려내야 했다. 이번에 준비하는 '2007가을, 정선동강살리기영화제'를 준비하는 이유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걸음이다.

 

영화제는 사흘간(9.17~19) 진행되며 상영작은 <밀양> <천년학> <호로비츠를 위하여> <아들> <눈부신 날에> <디스터비아> 등 여섯 편이다. 영화제 개막식 날인 17일엔 가수 손병휘의 작은 콘서트도 열린다.

 

운동본부는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뿐 아니라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품도 상영할 계획이라 환경의식도 일깨우는 일도 함께 한다. 자연의 황폐화는 인간의 황폐화를 만든다. 인간의 황폐화는 삶의 근본을 흔든다.

 

운동본부는 영화제를 통해 동강이 왜 살아나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던진다. 가을빛 속에서 치러지는 동강살리기 영화제가 주목되는 이유다. 동강을 살리지 못하면 우리네 삶도 끝이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이며 도암댐 해체를 통한 범국민동강살리기운동본부 상임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제 문의는 016-380-1141 이다.


태그:#동강, #도암댐, #영화제, #정선,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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